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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CEO 신드롬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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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417회 작성일 10-11-2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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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람 문제에 관한 한 나는 회색분자다. ‘세상에 별사람 없다’는 노인들의 달관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으로 ‘한 개인의 품성이나 능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주장에도 흔쾌하게 동의한다. 엉거주춤한 상태에서나마 굳이 한쪽 손을 들라면 ‘특별한 사람이 있다’는 쪽이다.

하지만 나는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이명재 전 총장을 보면서 다시 양시론에 사로잡힌다. 이명재라는 ’특별한 사람‘이 수장으로 있는 검찰 조직에서 피의자가 검찰 수사관들의 구타에 의해 사망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 까닭이다. 어떤 검찰 총수 아래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총수가 이명재라는 사실에 이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검찰조직에서 후배 검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검사로 꼽는 사람이 이명재란다. ‘당대 최고의 검사’로 불리던 이명재의 탁월한 능력, 강직함과 공명정대함을 인정해서다. 그가 검찰총장에 취임하자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제 도입을 요구했던 한나라당은 이명재 총장이라면 굳이 인사청문회가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어느 기자의 표현처럼 ‘검찰 내 모든 인사들이 그의 인품과 능력을 인정하고, 청와대나 야당까지 수긍할 정도로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 그게 바로 이명재라는 사람이다. 그런 이명재 검찰에서 일어난 ‘있을 수 없는’ 사건. 그 사건을 단지 이명재의 리더십 부족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어느 때부턴가 우리는 ‘스타 CEO'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어떤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다. 히딩크처럼 드라마틱한 반전을 보여 주는 일부 ’스타 CEO'들을 보면서 환상은 현실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리더가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제도적 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도 필요하고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에 따른 심리적 갈등의 과정도 겪어야 한다. 그래도 될까 말까다. 고 정승화 장군이 육사 교장 시절, 선배들의 후배에 대한 심각한 구타 등 지나치게 엄격한 내무생활 규정을 바꾸려고 위원회를 구성하게 했는데, 몇 달 후 위원회가 가져온 결론은 ‘현재의 규정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다’였단다. 합리적 설득을 위해 재차 연구하라고 지시했지만 결국 그의 임기 중에 생도의 내무생활 규정은 바뀌지 않았다. 일사불란과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조직에서도 그런 일이 존재한다. 이런 경우 정승화 장군은 리더십이 부족한 것일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선을 앞두고 사람들이 대선 후보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기대는 너무 환상적인지도 모른다. 후보들을 흉보면서도 대통령직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리적 요구는 거의 슈퍼맨 수준이다. 이 세상에 대통령이 해결 못할 일은 없고 또 못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거 지도자들에 대한 좌절이 지나친 환상을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동전크기만 한 원을 그리라고 하면 가난한 아이일수록 실제보다 크게 그린다는 심리학 실험결과가 있다. 현실적 결핍감이 심할수록 환상이 커지게 되는, 가치의 과대평가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별놈 없다’는 냉소적 사고도 문제지만,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스타 CEO’만 있으면 한 방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도 그 못지않게 문제가 아닐까. 이명재의 쓸쓸한 퇴진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한 회색분자의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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