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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유언처럼 - 이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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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45회 작성일 10-11-2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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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숙영의 삶에서는 전투적인 도발성이 느껴진다. 그녀의 주위사람들은 그녀에게 ‘내일이 없는 여자’라고 한단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을 살아야만 용감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이숙영 행복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오늘을 유언처럼’ 생각하며 하루 하루 연소시키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인생에서 ‘유보’라는 단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머리카락을 뽑아가며 공부를 하면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말이 조금도 과장없이 들린다. 그녀의 전투적인 프로의식은 유명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전쟁과도 같은 생방송을 하면서 줄곧 1등을 하는지가 벌써 십수년이다. 실상 말이 쉽지 15년 넘게 매일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난다고 한번 생각해 보라. 숨이 턱턱 막히는 긴장감에 온몸이 조여드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도 그녀의 방송은 아슬아슬하되 열정적이다. 그녀의 방송을 듣고 자살할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청년이 있을만큼 감동적일 때도 있고, 개인택시를 하는 한 여성이 그녀의 집으로 선물꾸러미를 배달할만큼 정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며, 방송위의 심의에 가장 많이 걸리는 진행자의 한명일만큼 위험수위를 넘나들기도 한다. 출근길 직장 남성들에게 'No.1 DJ'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어릴 때 부터 그녀는 남앞에 서기를 즐겨했다고 한다. 아이들앞에서 책읽기, 졸업식장에서의 송사나 답사, 소풍가서 사회보기, 김추자 흉내내기, 대학에서 연극, 방송반하기등등..... 늘 자신이 ‘관심의 중심‘에 서는 것을 원했던 기질탓이다. 확실히 그녀는 자신이 ‘관심의 중심’에 서는 것을 즐기며 산다.

그녀는 저녁때 내일 입고나갈 옷을 머리맡에 걸어 놓고는 그 옷을 입을 생각에 마음설레면서 잠에 든다고 한다. TV브라운관이 아닌 라디오 부스안에서 늘 화려한 옷을 입고 앉아서 방송 진행을 하는 DJ. 하루는 하와이옷에 큰 꽃을 꼽고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차이나 풍의 옷을 또 어떤 날은 번쩍번쩍한 테크노 풍의 미니 스커트를 입기도 한다.

직업적인 특성도 있겠지만 그녀가 자신의 젊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독서, 영화감상, 음악감상, 쇼핑, 여행 등에 기울이는 노력은 다분히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지난 94년 서평전문지 “출판저널”에서 책방을 가장 자주 찾는 스타급 인사로 꼽히기도 했는데 시집과 에세이 등 베스트 셀러류가 그녀의 주요 구매목록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하나는 ‘정착하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면의 풍요로움이다. 내면이 황폐해지면 너무나 불행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여행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지적자극’과 ‘다양한 경험’은 그녀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문화지향적 성향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없다.

이숙영식 스타일에 대한 융의 분석에 따르면 이 유형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철학적인 사고, 학구적인 탐구에는 깊은 흥미를 갖지 않는다. 그들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의존한다. 즉각적으로 활용할 지식만 필요로 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세월을 앞서가며 퍼져 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항상 떠나는 듯한 이숙영식 삶은 우물물처럼 맑고 시원하다. 그러나 그녀는 감각적이기 위해서 지나치게 전투적이고 치열하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균형을 잃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글에서 보이는 자신의 감각적 성향에 대한 경계는 적지않이 반갑다.

“이게 아니야. 인생이 이런게 아닌데... 이렇게 싸구려 같은 감상과 감각적인 달콤함에 취해 지금 무얼하고 있나. 내가 주렁주렁 달고있는 액세서리나, 결국 변하고야 마는 이성간의 사랑에 대한 찬미나, 덧없는 인기처럼 감각적인 쪽이 내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방향성은 아니야. 사는데에 대해 자신감도 별로 없고, 그저 방송할때만 우당탕탕 난리 블루스다. 그건 내가 구축해 놓은 어쩔수 없는 이미지니까. 하지만 타인들 앞에서는 감쪽같이 위장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아내나 어머니 역할 등 현실적인 롤에 밀착되지 못하고 둥둥 떠 다니는 느낌들.

내 우울증의 성향은 자극적인 웃음과 도발적인 옷차림과 매일이 축제같은 화려함으로 역설적인 방향으로 표현된다. 잠들 시간에는 발 등을 찧으며 후회한다. 왜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가. 또 허접쓰레기같은 것들에 시간을 낭비했구나하는 괴로움들. 발악적으로 가벼운 삶의 유희에 탐닉하고 있는 나를 멈추고, 무거움으로 많은 것들이 진행됐으면 한다“
나는 40대 후반의 이 매력적이고 재능이 뛰어난 방송인이 나이가 더 먹으면서, 방송은 오직 ‘젊은 감각’만으로만 튈 수 있는 게 아니라, 세월의 연륜에 따른 ‘세련된 감각’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감각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지나치게 일상과 유리된 감각이나 문화적 성향이 조금만 절제되었으면 싶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고 마는 우리의 무뎌지는 마음을 벼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바로 삶의 균형감각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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