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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식의 기준 -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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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75회 작성일 10-11-2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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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자기감정이 곧 현실인 경우가 적지 않다. 자기 현실을 인식하는데 있어 객관적 사실보다는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말이다. 정신의학에서도 인간은 지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정서적인 깨달음에 의해서 변화하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나는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아‘하는 류의 지적인 깨달음은 사람을 한치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자기 모습에 대해 “맞아 맞아 그렇지”하는 정서적 깨달음을 경험한 사람은 迷妄이나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서의 주관성이 객관적 지식을 압도한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기감정이 현실’이라는 명제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연스럽게 상식적인 잣대와 비상식적인 잣대를 드러낸다.

2003년 5월 한 신문에 국회의원 7명이 불우이웃을 도왔다는 선행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그 기사의 논조는 비아냥에 가깝다. 그 불우이웃이 다름아닌 김영삼 전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돈이 모자란다’며 생활고를 호소하는 YS를 위해서 그의 비서출신 의원 7명이 1차로 3천만원을 전달하고 향후 계속해서 지원키로 했단다. 선행의 당사자인 한 의원은 “(YS가) 정치자금 안받겠다고 약속한 만큼 실제 쓸 돈이 없다”며 “마음이 ”찡할 정도“라고 말한다. YS가 대통령시절 월급의 95%를 연금으로 받고 있고 국고지원으로 비서관을 3명까지 둘 수 있지만 비서관 7명에 가정부, 운전기사, 주방장까지 고용하고 있어 돈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30대 중반 이상의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고등학교시절 영어 참고서에 등장했던 전설적인 예문 하나가 연상될 것이다. ”우리집은 가난하다. 가정부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하고 운전기사도 가난하다“ 그 예문에 등장하는 아이의 처지에서 본다면 YS와 그 측근들의 ‘돈이 모자란다’는 하소연도 이해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감정이 곧 현실이라 해도 YS와 그 측근들의 잣대가 비상식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강남 부근에 큼지막한 상가건물을 세 채 소유하고 있는 어떤 사람은 세입자들에게 임대료를 거둘 때마다 “명동에 빌딩을 가지고 있는 부자에 비하면 나는 가난하다”고 말한다. 말인즉슨 옳지만 매월 임대료 걱정을 하는 세입자에게 할 말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명동 부자는 재벌회장에 비교해 자신을 구멍가게 주인 정도로 인식해야 하고 재벌회장은 빌게이츠의 재력을 능가할 수 없는 자신의 초라함에 대해 하소연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감정을 현실 그 자체로 생각하기 쉬운 우리네 일상에서 ‘상식의 객관적 기준’을 정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전 이용섭 국세청장은 재임중 골프를 안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는 골프를 하려면 자신이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데 현재 봉급수준으로는 남의 신세를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전직 대통령 YS처럼 국세청장이 느낄법한 일종의 생활고를 토로한 말이지만 ‘내 상식의 기준’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그의 결론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어느 해 4월초 한 대학에서 행한 YS의 시국특강 제목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단다. 그 제목을 차용해서 YS에게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 측근들에게도 ‘내 상식의 기준’이 상식적인 잣대에 합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상식의 복원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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