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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여성잔혹사 - 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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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65회 작성일 10-11-2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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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의 특별한 경험을 아주 쉽게 일반화해 버리는 사람들이 미덥지 않다. 아침 4시 이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거나 진짜로 고기 잘 먹는 사람은 고기 껍질을 먹는다는 식의 개인적 가치관을 조금의 주저도 없이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개인적 경험에 객관과 통찰이 더해지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세상의 모든 진보는 ‘경험적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의 ‘밝은 눈’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그런 유형의 대표적 인물이다. 아유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은 남은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토대로 ‘의미치료(Logotherapy)’라는 새로운 치료이론을 창안했다. 그의 ‘경험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의미치료’는 수십년 동안 많은 사람의 정신적 고통을 덜어 주었다.

시사저널 편집장을 역임하고 오마이뉴스 편집장으로 있는 서명숙의 책 <흡연여성 잔혹사>를 보면서 나는 문득 빅터 프랭클을 떠올린다. 27년동안의 개인적 흡연 경험을 중심축으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통제와 여성문제를 읽어낸’ 그녀의 책은 누군가의 말처럼 흡연을 통해 페미니즘을 해석한 최초의 ‘문화사 서적’이다. 한 독자는 그 책이 어느 면에서는 ‘서명숙 자서전’ 비슷하게 흐른 점이 있다고 아쉬워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책에 애정과 신뢰가 생긴다. 그녀의 촘촘한 개인사에 대한 흥미가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편견이라는 거대 담론을 부담없이 수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흡연여성 잔혹사>는 ‘한 남자의 유년기라는 私的인 기록을 통해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과 나아가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조명’했던 전인권 교수의 명저 <남자의 탄생>에 비견할 만하다. 그들의 개인적 경험담은 객관과 통찰의 힘을 담보로 ‘한국 사회의 여성사와 남성사’로 확대된다.

한 기자의 평처럼 <흡연여성 잔혹사>는 개인의 흡연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흡연 여성 전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 하다. 나는 <흡연여성 잔혹사>를 읽으며 이제 본격적인 독립작가의 길에 들어선 서명숙의 내공에 감탄한다. 원래는 체험에 기초한 금연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과거 흡연지사를 기술하다가 <흡연여성 잔혹사>되었다는 그녀의 고백, 특히 할 말이 자꾸 목구멍으로 넘어 왔다는 말을 실감한다. 얼마나 생생하고 설득력이 있는지 아직도 담배피우는 여자는 이 사회에서 ‘죄인이고 마녀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내가 비흡연 여성이라는 사실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난 해 한 행사에 참석했을 때 “담배를 피운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나를 모욕하고 질타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것 같더라”는 그녀의 육성은 우울하다. 한 중년의 남자는 대학 때 담배피우는 여학생을 보면 ‘왠지 쉽게 (몸을) 대줄 것같은’ 느낌을 가졌다고 말한다. 담배피우는 남학생을 보면서 이런 종류의 얼토당토않은 느낌을 가지는 사람은 절대 없다. 그것은 천부적 평등의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자비한 편견의 극명한 사례다. 하물며 원숭이도 차별받으면 화낸단다. 같은 일에 보상이 다르면 항의한다는 것이다. 평등의식은 유전된다는 증거다. 서명숙의 입을 통해 우리는 여성이라는 한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평등의식이 어떻게 짓밟혀 왔는가를 생생하게 목격한다. 그것은 어느 남성독자의 “흡연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강한 의지가 다분히 넘쳐 흐르는, 흡연여성들에 대한 사회의 냉소적인 시각을 바꾸려 드는, 교묘하게 흡연여성을 합리화시키려 드는 책”이라는 비판과는 별개의 문제다. 남녀를 불문하고 흡연 그 자체만으로 흡연은 절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합리화되어선 안된다는 금연주의자의 지향점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말이다.

천년전 로마시대의 가장에게는 마음에 안드는 자식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서명숙은 자신이 담배와 함께 겪어온 세월이 천년전 로마와 다르지 않음을 증언한다.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형사들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서명숙이 제일 먼저 감춘 것은 이념서적이나 노동관련 팜플렛이 아니라 담배와 라이터와 재떨이같은 흡연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씁쓸해 하지만, 70년대 시국사건으로 경찰서에 붙들려 가서 가방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담배나 피워대는 갈보같은 년”이라는 욕설과 함께 따귀를 맞았던 서명숙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흡연 여성은 피해의식이 있는 게 아니라 피해경험이 있다. 관념의 세계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공포와 폭력의 경험이 있는 것이다. 피해경험이 내면화하면 피해의식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

피해의식은 객관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남편에게 계속적으로 구타를 당하다 보면 ‘정말 내가 맞을 짓을 한 것은 아닐까. 맞지않도록 내가 더 조심해야겠다’ 따위의, 제 3자가 보기엔 비현실적인 생각에도 당사자는 무감각해 진다. ‘흡연여성잔혹사’에는 근래에 서명숙이 만난 20대 여성 3명이 여자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범죄에 해당된다고 굳게 믿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찰관한테 직접 들었다며 그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을 집안일이라며 나몰라라하는 경찰관이 있고,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1살짜리 아들을 호주로 내세워야 하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미 중앙정보국에서 피의자들을 신문할 때 쓰이는 기법 중에 비현실적인 질문법이 있단다. 처음에 터무니없는 질문들을 피의자에게 퍼부어대 황당한 혐의를 씌우면서 ‘비현실적’인 환경을 충분히 조성한 다음에 ‘현실적인’ 질문을 하나씩 던지면, 피의자들은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며 답을 하기 때문에 쉽게 자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조적 편견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에 저항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미 식민지화된 정서적 상태때문이다. 그래서 <흡연여성 잔혹사>를 읽은 한 20대 여성의 다음과 같은 소감은 반갑다.

“나는 소망한다. 우리에게 금지되었던 황당한 것들을!!!(왜 소망하게 만드는가! 원래 나의 것이었던 것을)” 그렇다. 그 모든 것은 원래 나의 것이었다. 비현실적인 환경에 현혹되어 답하지 말아야 할 현실적인 질문에 덜컥 말려 들어서는 안된다.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길가던 남자에게 따귀를 맞고 쌍욕을 듣고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담뱃불로 린치를 당하는 어이없는 현실. 서명숙은 여자가 이 땅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떤 대가를 받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여성이라는 한 평등한 인격체에 대한 편견의 역사다.

사람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인식조사를 하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동성애가 정신병이 아니고 하나의 취향이라는 정신의학적 정보를 알려 주기 전과 후의 반응이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정보를 제공받기 전에는 7할정도가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면 정보 제공 후에는 3할 정도로 줄어든다. 편견은 대부분 뿌리가 없는 믿음이며 맞서 싸우면 해결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는 한 증거다.

그런 점에서 서명숙이 언급한 언론인 유숙렬씨의 ‘정치적 흡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숙렬씨는 흡연 여성들이 사회의 편견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비겁한 흡연’을 자청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녀는 남북정상회담장에서 후배 흡연여성들을 위해 일부러 담배를 꺼내물었다.

서명숙은 자신의 27년 골초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점이 한 선배 언론인의 경험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전에는 담배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온갖 의학적 경고에 저항감까지 느꼈는데, 똑같은 내용인데도 경험에 근거한 선배의 말은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나도 <흡연여성 잔혹사>를 읽으며 서명숙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녀의 ‘경험적 문제의식’은 여성, 더 나아가 인간의 평등의식의 본질을 곱씹어 보게 한다. 그 앞에서 정신과적 이론으로 흡연여성의 심리운운은 어줍잖은 일이다. 정신분석학의 거두로 평가받는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정신분석을 통하여 힘들게 얻어낸 것들을 당신의 문학은 보다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는 극찬을 보낸 바 있다. 내가 서명숙의 <흡연여성 잔혹사>를 읽은 소감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말에 의심이 가는 이들은 꼭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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