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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힘 -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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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55회 작성일 10-11-2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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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고도 돈을 받으니 좋겠다”는 농반진반의 얘기를 가끔 듣는다. 그러나 ‘용한’ 정신과 의사가 내담자의 얘기를 들을 때 그 듣는다는 것의 품질은 일반적으로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르다. 공감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다. 정신과 의사의 가장 핵심적 능력을 ‘공감력’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대 관객을 동원하는 신기록을 세웠다지만 그 숫자라야 겨우 1만 명을 넘겼을 뿐이다. 하지만 2003년 9월초 150석의 소극장 한 곳에서 개봉된 영화가 다큐로는 최초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상영관을 확대한 사실은 놀랍다. <영매>는 무당들의 인생역정과 굿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작품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젊은 아들의 말을 전하는 무당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는 어머니의 모습, 평생 무당으로 살다 간 언니의 굿을 준비하는 동생 무당의 늙은 얼굴은 가슴에 꽂힌다. 이 영화의 대중적(?) 성공은 자극적 소재나 치밀한 연출에 있지 않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감독의 놀라운 공감력에 그 비밀의 열쇠가 있다. 그것은 ‘사실’에 충실한 다큐물의 본질적 특성과는 다른 차원의 ‘힘‘이다.

어느 네티즌의 말처럼 《영매》를 상영하는 극장 안은 슬픔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보는 내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이 아파서 그냥 내장을 다 끌어 올리는 것처럼 울었다는 사람,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영화관에서 운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는 젊은이. 심지어 어떤 평론가는 ‘최소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비평가’의 직무를 잊은 채 수없이 몸을 떨며 한없이 울었고, 나중에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꺽꺽 흐느꼈단다. 나는 이런 현상이 《영매》의 박기복 감독이 무당이라는 직업이나 인간의 삶 자체에 완벽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그림이 되는 장면을 담고 싶은 욕심이나 영화적 테크닉을 펼치고 유혹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박감독은 평론가 하재봉의 평가처럼 무당들의 한 맺힌 내적 독백이나 화려한 외형적 동작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완전히 그들 속으로 스며들어 일체가 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박감독은 전국의 무당들을 찾아 어렵게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과 뒤섞여 3년을 보낸 뒤 그 공감의 결과물을 《영매》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정신과에서는 공감력을 키우기 위한 한 방편으로 ‘상담시 정신과 의사는 말을 줄여야 한다’는 지침을 전수한다.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상대에 대한 공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매》라는 영화의 공감력이 섬뜩할 만큼 생생한 것은 아마도 감독이 그 같은 정신과적 지침에 충실했던 까닭이 아닐까. 궁금하다면 <영매>라는 비디오를 직접 빌려다 보면서 그 공감력의 실체를 확인해 보시길 권한다. 박감독의 말처럼 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아놓은 굿만 보아도 뒤늦은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 들인 노력이나 대여료가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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