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증식 > 한국사는 사람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한국사는 사람


 

무한증식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328회 작성일 10-11-22 00:14

본문

무한동력기관(영구기관)에 관한 출원은 특허를 받을 수 없다. 자연과학 법칙에 위배되는 실현 불가능한 가상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한동력기관에 대한 특허 출원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단다. 무한동력에 대한 환상을 가진 발명가들이 많아서다. 에너지가 투입되지 않고 무한히 운동하며 거기서 에너지까지 뽑아낼 수 있다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에너지를 유발한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상을 뒤바꾼 발명가들도 적지 않지만, 현실세계에서 ‘무한’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그건 착각이거나 자신이 뿌리 내리고 있는 생명체가 죽을 때까지 무한증식하는 암세포 정도다. 이 법칙은 정신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축을 뒤흔들 만큼 원대한 꿈이거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불굴의 의지조차도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막강한 경제권력이나 정치권력을 소유한 이들은 마치 자신이 무한의 영역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무한에 가까운 증식을 계속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존재와 자신을 암수 한몸으로 착각하는 재벌 회장이나,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치인들이 그렇다. 재벌 회장의 초법적인 행태나, 대한민국 전체라고 할 만큼의 모든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브리핑룸 통폐합 방침을 강행하는 최고 권력자의 과단성은 두렵기까지 하다.

무한대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숫자의 세계나, 권력이라는 끝없는 욕망에 자기를 동일시하기 시작하면 착각이 일상화된다. 전지전능감에 도취돼 무리수를 두기 십상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자기만 모른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이기적인 남자에게 이용만 당하는 여자에게 “저 남자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남들 눈에는 그게 다 보이는데 왜 당신만 그걸 못 봐요?”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해도 여자는 그 사실을 금방 깨닫지 못한다. 이별의 끝자락에서야 그 사실을 어렴풋하게 감지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전직 대통령은 자신이 물러난 뒤 상왕으로 군림하면서 후임 대통령을 허수아비처럼 부리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망신만 당했다. 현직에 있을 때는 무한에 가까운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영향력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이 또한 그만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깜빡했을 것이다.

지난 정권의 문제를 따지는 청문회 등을 통해 일반 국민의 처지에서는 의외의 일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시 최고 권력자의 측근에 있던 막후 실세들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 따위다.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헛웃음이 날 정도지만 당시 무한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했던 당사자들은 더없이 진지하고 과감했을 것이다.

죽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 선 연후에야 비로소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진정한 도약을 한단다. 자신의 유한성을 뼛속 깊이 깨닫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무한증식할 수 있는 존재로 착각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하거나 불필요한 걱정에 사로잡힌 존재쯤으로 매도한다. 자신의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피라미드 상술은 기본적으로 무한증식의 구조다. 몇 단계만 확장하면 이론적으론 60억 인구를 자신의 조직원으로 가입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무한동력기관처럼 실현 불가능한 꿈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경제 권력자들은 인간의 유한성을 외면한 채 자신을 무한증식의 존재로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답게 흔들리는 연등 앞에서 무심코 떠오르는 단상들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