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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물질은 죄가 없다 -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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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84회 작성일 10-11-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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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박지원 비서실장 임명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인사 때마다 어느 정도의 잡음은 늘 동반되는 법이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다른 듯하다. 야당에서는 국민과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인사라며 인사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오기와 오만을 질타한다.

박지원도 피곤하기는 하겠다. 얼마 전까지는 민주당 내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거론되며 구설수에 오르더니 이제는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대표적인 간신’이라며 집중포화를 퍼부어댄다. 마치 여당과 야당이 박지원 문제로 바톤 터치를 하는 형국이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여당과 야당의 공통적인 정치적 쟁점이 있다면, 그게 바로 ‘박지원 문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와중에 ‘DJ의 박지원 중독증’이라는 표현이 인구에 회자된다. 정가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익숙한 표현이란다. DJ가 박지원에게 중독이라도 된 것 같다는 말인데, 문제는 ‘중독’이란 표현이 단지 두 사람의 긴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어를 넘어선다는 데 있다. 박지원을 정책기획수석에 임명할 때 개각이 앞당겨진 것도 하루라도 빨리 박지원을 곁에 두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을 만큼 DJ의 특정인에 대한 신뢰와 의존이 병적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에서 분비되는 일종의 중독성 물질이 그들에게 남다른 흥분감이나 극치감을 맛보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긴 하지만 사회적 관계에 있는 특정한 인사에 대해 ‘중독’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건 확실히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중독이란 어떤 물질의 독성에 의해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의학적으로 더 정확한 표현은 의존이다. 약물이든 행위든 그것이 중독을 일으키려면 일단 한 번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그것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게 만들 요소가 있어야 한다. 마약은 짜릿한 쾌감과 생생한 환각을, 게임은 새로운 스테이지를 경험하게 하는 흥분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중독물질에는 누구나가 좋아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일단 중독자가 되면 여러 기능적인 면들(직장생활,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기능 등)에서 다양성을 잃고 대부분의 인지 과정과 행동이 중독행동에 종속되어 버린다. 강박적이거나 과도한 행동이 나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혹시 DJ가 박지원과의 관계에서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모르겠다. 박지원은 빠른 두뇌회전, 놀랄 만한 친화력, 똑같은 얘기라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요점을 정리하는 능력, 거기에다 하루에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움직이는 타고난 부지런함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일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를 위해 지극한 정성을 기울인다면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박지원은 DJ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반할 만한 중독물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만일 사람들의 말대로 DJ가 ‘박지원 중독증’이라면 먼저 중독자를 탓해야지 중독물질을 탓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아마 DJ는 박지원의 비서실장 임명을 두고 자신이 오기를 부리고 있다는 야당의 지적에 콧방귀를 낄지도 모른다. 더구나 ‘박지원 중독증’이라는 식의, 자신의 명석한 판단력을 의심하는 따위의 떠도는 말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독증이란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나타날 수 있는 의학적 현상이다.
약물중독이나 행위중독(쇼핑중독, 인터넷중독 등)자들은 상황을 부정하면서 자기 합리화에만 안간 힘을 쓴다.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마시기 위해 화를 내놓고 화가 나서 술을 마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중독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의 첫 단계는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면 이미 반 이상 치료가 끝난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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