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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무의식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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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169회 작성일 10-11-2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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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대통령의 육성에는 착잡함과 답답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국민들에 대해 답답함을 넘어서 억울함이나 분노까지 생긴 듯했다. 그의 정확한 어법뿐 아니라 비언어적 요소까지를 포함한 시청소감이 그렇다. 내가 보기에 근래 노대통령의 속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발언은 그의 민심론이다. 그는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을 읽는 것과 국민들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조작된 민심, 위험한 민심도 있는 법이니 단면적으로 봤을 때 민중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요지다. 역사인식의 한 관점에서는 수긍할 수 있는 말이지만, 최근 국민에 대한 ‘과감한 거역’을 표방하며 민심을 재정의하는 듯한 대통령 노무현의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정신분석학은 ‘환자는 항상 옳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의식 수준에서는 엉뚱하고 비논리적인 환자의 말이나 행동들도 무의식 수준에서는 그 사람의 핵심동기를 드러내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나타난 말만으로 헛소리라고 무가치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말하는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시장에서 말하는 고객만족은 지극히 의식적 수준의 개념인데 반해 정신분석학은 철저하게 대상의 무의식 차원에 주목한다. 의도를 가진 특정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명징한 의식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봐야 하지만 민심이란 본질적으로 민중의 무의식이 투사된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민심은 언제나 옳다, 고 나는 생각한다.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이란 비판에 대한 노대통령의 반응은 ‘알고 있지만 거역할 수밖에 없다’이다. 요즘 들어 빈번하게 ‘내가 국민의 여론과 동떨어진 느낌’이라거나 ‘뜬금없다고 느낄 것이다’는 식의 표현을 쏟아내면서 대통령 자신과 국민 사이의 ‘생각의 괴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네가 좋아’라고 말할 때,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무한대에 가깝다. 마주치기만 해도 머리칼이 쭈뼛거릴 만큼 맹렬한 사랑의 감정이 있음에도 표현상으로는 ‘나는 네가 좋아’ 정도로 그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향해 ‘네가 나를 약간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이라고 말하면 듣는 이는 절망스럽다. 알고는 있지만 실체적 진실과 정도의 차이가 심하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과 같다. 내가 보기에 노대통령의 ‘잘 알고 있다’는 인식은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 진짜 민심을 알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다.

나는 대통령 노무현의 진정성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민심을 정확하게 읽는 일과 진정성은 별개다. 소신과 배짱을 굽히지 않아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그런 개인적 성공 경험이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만능의 법칙일 수는 없다.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이란 비판에 대해 ‘역사적 책무’ 같은 비장한 멘트로만 대응할 게 아니라 혹시 내 인식이나 사실판단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심사숙고해주길 청한다. 노대통령의 자기인식은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노무현의 ‘선구자적 모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지금 국민들의 눈에 비친 노대통령은 선구자가 아닌 계몽군주에 가깝다. 특정 사안과 관련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많은 고민을 한 대통령의 눈에는 자신과 현격한 견해차를 보이는 국민들의 반응이 어리석은 감정적 대응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무의식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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