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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독심술을 신봉하는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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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128회 작성일 1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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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나 정치인, 고위공직자와 관련된 기사 중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말은 ‘진노(震怒)’다. ‘진노’의 사전적 의미가 ‘존엄한 사람의 분노’라는 걸 알려 주려고 그러는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화를 낸다. 개인적으로 더없이 부드럽고 상냥한 성격의 사람들도 권력을 가진 자리에 오르면 대부분 ‘진노’의 대열에 합류한다. 나는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윗사람의 마음읽기에 골몰하는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꼽는다. 권력자의 입장에서야 모든 사람이 자기 눈치만 살피는데 기세등등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권위주의라는 게 멀리 있지 않다. 맹목적 혹은 습관적으로 윗사람의 마음읽기에 골몰하는 것, 그게 바로 권위주의의 시작이다.

어느 대기업 임원으로부터 회장님 여비서에게는 임원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권력자의 비서들이 직위에 비해서 영향력이 막강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권력자의 마음을 읽으려는 이들이 줄을 잇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우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독심술사의 경지에 이르러야 성공의 문턱에라도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2002년 대선 패배 후 미국에 머물던 이회창씨가 일시 귀국하자 매스컴에서는 “昌心”이란 단어가 다시 등장한다. 당대표 경선 때문에 ‘창심’에 촉각을 기울이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는 자상한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행여 오해없기를 바란다. 이씨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정치재개 여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나는 다만 그의 주위에서 다시 또 독심술에 목을 거는 이들의 행태에 어이가 없다. 국회의원은 그 자체로 한 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자신 또한 권력자이면서 거의 습관적으로 더 ‘쎈’ 권력자의 마음읽기에 골몰하는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처신은 보기에도 딱하다. ‘이회창’이란 고유명사를 다른 권력자의 이름으로 대치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의 소비자가 존재하는 한 그 단어는 생명력을 유지한다.

명확한 의사표현을 거의 안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면서 본격화된 ‘노심’이란 말은 그후 ‘김심’이란 말로 대치되면서 정치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동안 언론의 정치면 상당부분은 ‘노심’ ‘김심’이라고 지칭되는 이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에 할애되었다.

사람들이 기를 쓰고 고위 공직에 오르려는 이유를 운전기사가 딸린 자동차와 비서, 판공비로 분석한 이도 있지만 나는 거기에 높은 자리에 오를 경우 자기중심성의 극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심리적 요인을 추가하고 싶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속마음을 읽으려고, 혹시라도 심기를 거스리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하는데 신나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대인관계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의 시작이며, 상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그에 맞는 예우를 하는 일은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지만 ‘이도령없는 방자‘인양 특정인을 통하지않고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는 권력자들이 많다는 건 확실히 심각한 문제다. 그렇게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같은 독심술발휘로 인해 권력자는 더욱 권위적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노무현 정부의 초대 내각이 구성되었다. 나는 행여 이 정부에서도 권력자의 마음읽기를 상징하는 노무현의 ‘무심(武心)’같은 단어가 횡행할까 걱정이다. 살다보면 때론 무심(無心)하게 사는 게 긴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서로의 서열에 따라 ‘마음읽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행태를 보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언론에서도 정작 마음을 헤아리고 보살펴 할 사람들은 제쳐놓고 흥미롭다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권력자들의 마음읽기를 조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진노하셨다’는 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제는 보고 있는 사람들마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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