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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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170회 작성일 10-11-2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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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마다 드라마틱한 광경을 목격한다. 당선자의 환호와 낙선자의 눈물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선거의 비정한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목이 멘 채 정계은퇴선언을 하는 이회창 후보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숙연하게 만든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정치속설이 새삼스럽다. 정치인들이 선거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마음을 이해할 법 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런 ‘사생결단’식 심리구조가 정치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는 사실이다. 2002년 대선에서도 그런 현상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나의 이웃 중에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화가 한 사람이 있다. 한 마디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으로 마당에 꽃을 가꾸고, 음악을 듣고, 비디오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는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나는 지금껏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일이 없고, 화를 낼 법한 일에도 격하게 목소리 한번 높이는 일조차 없다. 이번 대선에서 공교롭게도 그와 나는 지지 후보가 달랐는데,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가 몹시 흥분하는 모습을 보았다. 과장하자면 그의 눈빛이나 말투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의 일상에서 비슷한 종류의 사례들을 열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도대체 정치의 그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돌변하게 만드는 것일까.
정치가 모든 것에 우선하고 정치가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이런 일들이 비롯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란 우리에게 ‘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치와 연관된 에피소드에서는 수단이 목적을 뒤덮는 듯한 주객전도 현상이 적지 않게 목격된다.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을 당해 수술대에 올랐을 때, 그 상황에서도 집도의에게 “자네는 공화당원인가?”라고 물었다지만, 그 일화는 그야말로 유머가 ‘생활화’된 듯한 레이건의 우스갯소리일 따름이다. 인간의 정신은 놀랄 만큼 분화가 잘 되어 있다. 특정한 정치성향의 잣대 하나로 한 사람의 의식수준이나 삶의 태도, 직업적 가치관 등을 예단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
이번 대선 기간 중 나는 상담실에서 나와 지지 후보가 다른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에 소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들 역시 의사로서의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의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이 정치적 성향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 같은가.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성향으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하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낚시를 즐긴다고 말하는 사람의 모든 행동을 ‘무언가를 낚으려는 의도’ 쪽으로만 해석하는 것처럼 거칠고 유치한 일이다.
정치는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기능할 때만 모든 것에 우선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정치가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고정관념이나 편견 혹은 뜬구름 같은 감상일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런 ‘사생결단’식 심리구조가 정치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는 사실이다. 2002년 대선에서도 그런 현상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나의 이웃 중에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화가 한 사람이 있다. 한 마디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으로 마당에 꽃을 가꾸고, 음악을 듣고, 비디오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는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나는 지금껏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일이 없고, 화를 낼 법한 일에도 격하게 목소리 한번 높이는 일조차 없다. 이번 대선에서 공교롭게도 그와 나는 지지 후보가 달랐는데,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가 몹시 흥분하는 모습을 보았다. 과장하자면 그의 눈빛이나 말투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의 일상에서 비슷한 종류의 사례들을 열거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도대체 정치의 그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돌변하게 만드는 것일까.
정치가 모든 것에 우선하고 정치가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이런 일들이 비롯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란 우리에게 ‘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정치와 연관된 에피소드에서는 수단이 목적을 뒤덮는 듯한 주객전도 현상이 적지 않게 목격된다.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을 당해 수술대에 올랐을 때, 그 상황에서도 집도의에게 “자네는 공화당원인가?”라고 물었다지만, 그 일화는 그야말로 유머가 ‘생활화’된 듯한 레이건의 우스갯소리일 따름이다. 인간의 정신은 놀랄 만큼 분화가 잘 되어 있다. 특정한 정치성향의 잣대 하나로 한 사람의 의식수준이나 삶의 태도, 직업적 가치관 등을 예단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
이번 대선 기간 중 나는 상담실에서 나와 지지 후보가 다른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에 소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들 역시 의사로서의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의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이 정치적 성향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 같은가.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성향으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규정하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낚시를 즐긴다고 말하는 사람의 모든 행동을 ‘무언가를 낚으려는 의도’ 쪽으로만 해석하는 것처럼 거칠고 유치한 일이다.
정치는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기능할 때만 모든 것에 우선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정치가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고정관념이나 편견 혹은 뜬구름 같은 감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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