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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전쟁이 끝난 후 겪은 정신적후유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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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3,782회 작성일 10-11-2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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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신의학자는 ‘전쟁을 겪은 인간은 전쟁 이전의 인간과 같은 인간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만큼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은 비할 수없이 강력하고 파괴적이다.
그 자신 베트남 참전용사였던 래리 하이네만(Larry Heinemann)의 소설 <파코이야기>에는 베트남전에서 집단강간과 살해사건에 연루될 당시의 심경을 토로하는 주인공의 다음과 같은 독백이 등장한다. “숨을 거듭 들이쉬면서 우리들은 그녀와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악의 순간이며 우리는 우리가 결코 예전처럼 살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전쟁의 광기와 폭력은 인간의 정신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전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관점이나 혹은 술자리에서의 무용담 수준에서만 다루어져 왔다. 민간인과 적군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전선이 따로 없었던 전쟁터, 그 지옥같은 곳에서 수 년을 보냈던 젊은 병사들이 그때의 경험들로 인해 그 이후의 삶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못한 채 30년이 흘렀다.

당연하고도 불행하게 베트남전 한국군 참전병사들의 이후의 삶에 관한 기록들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그들의 정신적 후유증에 관한 내용은 내가 직접 만나서 들은 그들의 육성과 실낱처럼 존재하는 참전군인들의 증언채록 그리고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병사들에 대한 연구결과 등에 기대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정신적 후유증에 관한 기록은 또다른 의미의 전사(戰史)이다. 외형적 전쟁은 30년전에 끝났지만 그 후 내내 지속되었던 그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의 내용에 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 전쟁의 기록은 끔찍하고 집요하다.

◆PTSD(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혹은 충격후 스트레스 증후군)
PTSD는 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파국적, 압도적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후에 나타나는 정신병리 현상을 말한다. ‘파국적, 압도적 스트레스’란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가장 극단의 스트레스다. 주로 전쟁, 고문, 강간, 목숨이 위협당하는 끔찍한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지 30년이 넘도록 참전군인들의 정신적인 상처와 그로인한 삶의 뒤틀림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PTSD의 ‘불가항력’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참전군인들이 겪는 우울, 불면, 정신적ㆍ감정적 마비상태, 알콜중독, 자살, 사회적응상의 어려움,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을 막연히 ‘정신력이 약해서 생기는 한 개인의 문제’로 여겨왔다. 당사자들도 사회의 일반적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게 자신들의 문제를 인식했으므로 자신들의 정신적 고통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런 증상들이 자신의 참여한 전쟁경험과 관련이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신의학에서 PTSD의 개념이 가장 먼저, 활발하게 연구된 미국에서도 베트남전이 끝난지 1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베트남 참전군인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보상치료를 해주기 시작했다.

1988년 미국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참전군인 중 30%가 PTSD를 경험했고 그중 15%는 그 증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정부당국의 적극적 대처로 무려 150만여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과 관련된 PTSD자료는 1996년 보훈병원 정신과에서 한국전 참전자 204명과 베트남전 참전자 1백명을 대상으로 한 PTSD유병율 조사가 거의 유일하다시피하다.

보훈병원에 추정에 의하면 2000년 현재 베트남전 참전군인 중 5-10%가 PTSD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전군인의 수가 30만명을 넘으니 최소로 잡아도 1만5천명 이상이다.
가슴에 총을 맞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실제로 생사의 경계를 수도없이 경험한 전쟁터의 병사들은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PTSD에 노출된다. PTSD는 전쟁의 역사적, 사회적 요인의 정당함 여부와는 관계없이 죽음에 노출된 한 개인이 입게되는 정신적 상흔이다.

얼마전 이라크에 파병되어 사체처리 작업을 주업무로 하다 귀향한 한 미국 청년이 집에서 총기난사를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이 죽고, 죽이고, 죽어나가는 현장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PTSD의 자장권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충격의 본질은 ‘죽음각인’이다. ‘죽음각인’은 죽음의 경험과 연합된, 지울 수 없는 이미지로 한 인간에게 “영구적인 내적폭력”으로 작용한다.

전쟁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그 참전자가 마음이 약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며, 양민학살의 죄의식과 같은 사회적, 윤리적 이유때문만도 아니다. 정규군과의 치열한 접전에서 적군을 사살한 사람이건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옆에서 목격했던 사람이건, 지울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 중심에 죽음체험을 통한 ‘죽음각인’이 존재한다.

개인의 정신적 고통앞에서 사회적, 역사적 의미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어떤 면에서 무의미하다. 정신적 고통은 그 사람이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으로 어떤 입장인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PTSD는 ‘병’이다.

공식집계에 의하면 베트남전에 참전한 8년동안 한국군이 사살한 적군의 숫자는 4만명이다. 4만명을 죽이는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 그 와중에 적군의 총탄에 맞아 동료들이 죽어가던 바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PTSD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베트남전 관련 한 연구에서는 참전군인이 피해주민보다 PTSD 유병율이 더 높았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로 전쟁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의 정신적 상처는 크고 깊다. 전쟁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똑같이 인격적 붕괴를 경험케 한다. 고문자와 피고문자의 관계에서는 가해자인 고문자가 동일한 피해자라고 절대로 말할 수 없지만 전쟁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비슷한 정신적 상처를 받는다. 죽음에 대한 위협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는 병사들은 온몸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극단의 각성상태가 된다. 사람이 느낄수 있는 오감의 기능이 극단으로 활성화되는 상태다. 이러한 상태는 그 사람이 느껴왔던 현실감 중에 가장 생생한 현실감각으로 각인된다. 이런 극적 경험을 한 사람에게 그 순간은 일생에서 가장 절실한 리얼리티가 되고, 그 외의 다른 경험, 일상들은 멀리 떨어져있는 듯한 느낌으로 멀어지게 된다.

◆PTSD의 증상들
가장 흔한 증상의 하나는 전쟁이 끝난지 수년, 수십년이 지나도록 반복되는 1)악몽과 환영(flashback)들이다.

한 참전군인의 증언: “악몽에 시달렸어요. 내가 시체가 되어있고, 그 얼굴이 나에게 달려들더라고요. 폭탄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나기도 했어요”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악몽의 공통주제는 적에게 추격당함, 총에 맞음, 무기가 없이 전쟁터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총알이 나가지 않는 총을 가지고 위험에 직면하는 상황 등이다. 악몽이나 환영을 통한 flashback등의 현상이 1,2차 세계대전 귀향자들보다 베트남전 귀향자들에게서 더욱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Hendin, 1984).

반복되는 꿈/악몽 등은 자신이 겪은 가장 고통스런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 감정에 몰두하게 만들며 집중하게 만든다. 불면증도 겪는다. 참전자들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생생하고 집요한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시도로 자신의 감정을 무감각하게 만들어간다. 스스로를 2)정신적/정서적 마비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일상적인 즐거움, 슬픔 등을 잘 느끼지 못한다. 무감동하거나 서먹서먹하다. 매사에 흥미를 상실하고 미래에 대해 절망감을 가진다.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나무토막같다”거나 “로봇과 같은 느낌”이라는 표현들을 많이 한다. 한 참전자는 “마치 내 마음의 중심이 사라진 것 같다. 다시 그것을 되찾을 수 없다”고 울먹이기도 한다.
정신적 무감각은 매우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일상화되어 정상적인 슬픔이나 기쁨뿐아니라 친밀함, 부드러움, 성적인 느낌들을 잃게 만든다.

참전군인의 배우자들은 참전자들이 ‘차갑고, 감정이 메마르고, 배려를 하지못한다’고 증언한다. ‘정서적으로 죽어있다’는 의미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타인과 정서적인 밀착이 안돼 쉽게 고립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차가움이나 무감동, 무감각함을 그들이 겪고 있는 병, PTSD의 한 증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인간적으로 비난했고,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때론 ‘정신병적인, 폭력적인 이상성격자’로 보기도 했다. (군에서 월남갔다온 하사관들이 이상하다, 싸이코다, 폭력적이다...는 등등의 증언들)

그들은 점점 3)깊은 우울증으로 빠진다.
베트남 참전 미군이었던 50대의 우울증 환자의 고백.
“나는 베트남전에서 우수한 인재와 함께 하고 있고, 그들은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빗발치는 포격속에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다. 다음 순간에 적들은 나를 죽이려 할 것이고, 그러면 나도 죽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고 철저하게 무력했다. 기적이 일어나기만 바랬다. 도와달라고 외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나는 그리로 가지 못했다. 내 다리가 그쪽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나는 떨고 있었다. 두려움에 분노하면서... 나라는 인간은 그 당시 그 현장에서 이미 썩어 없어져 버렸다. 나는 거기서 드러 누워 버렸고, 그후 일어날 수 없었다.” -지금껏 활동 불능, 철저히 무능력한 모습으로 살아감.

우울증은 ‘상실(Loss)'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전쟁은 동료의 상실(죽음), 자신의 젊음과 순수에 대한 감각의 상실, 세상은 비교적 안전하고 좋은 곳이라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의 상실, 자신에 대한 행동/정서 통제력의 상실 등으로 인해 깊은 우울증을 유발한다. 이처럼 자기와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개념이 뿌리째 손상되고 인격이 급속하게 붕괴되기 시작한다.

알콜남용이나 자기파괴적 행동, 자기처벌적인 행동(질것이 뻔한 싸움에 끼어들어 매맞기 등), 자살 등의 극단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행동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베트남 참전 미군 중 전쟁이 끝난 후 자살한 사람의 수는 2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통계는 없다. 베트남전 귀향자들에게는 항상 자살의 가능성이 있다(Goodwin 1980)는 연구가 있을 정도도 참전군인과 자살은 깊은 관련이 있다.

베트남전을 연상시키는 상황, 소리 등에 노출될 때 참전자들은 극도의 불안, 공포, 놀람 등의 반응을 보이고, 이런 자극이 점점 일상적 자극으로까지 번져나가게 되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렵게 된다.
-->헬리콥터 소리, 소변냄새(동료가 죽을 때 오줌을 쌌던 기억),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적의 움직임을 의미), 팝콘 튀기는 소리(멀리있는 사격소리와 유사), 비오는 소리(베트남의 우기에는 몇 달씩 비가 옴)

◆참전자 가족들의 고통
식구 중에 치매 환자가 있으면 가족들까지 심한 고통을 겪는 것처럼 PTSD를 앓는 환자가 있을 때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은 배우자와 자녀와의 정서적 공감능력의 결여, 정서적 고립 또는 소외, 아버지/남편으로서의 역할수행이 실패한 데 따른 절망이나 스스로에 대한 무능감으로 한없이 위축된다. 그러다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폭력적 행동이나 알콜중독 등의 형태로 폭발하기도 한다. 빈약한 자기개념, 충동통제에 대한 무능함이 그 원인이다.

전쟁터에서 분노를 제외한 모든 감정을 억압당하던 병사가 가족과 일터로 돌아와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BBC방송에 따르면 지난 3년 간 미 육군 병사들의 이혼율이 3배로 증가했는데 그것 또한 이라크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PTSD를 앓는 참전자의 아내들이 주로 경험하는 문제는 정서적, 언어적, 신체적 학대이다.

거기에 재정적, 정서적으로 자신이 부양의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삶 자체를 버거워한다. 한 참전자는 PTSD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에 가족들을 괴롭혔고 결국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현재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혼자 살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 참전군인들은 전투에서의 무용담을 힘주어 이야기하는 등의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동원하거나 반대세력에 대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극단적인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곤 했다. 그런 과정 중에 진짜로 얘기해야 할, 자신들이 겪는 인간적인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전쟁의 기억이 끔찍해서 ‘훈장과 보훈연금도 거부한 참전자가 부인에게는 계속 사람죽인 얘기’를 하는 경우처럼 그들은 자신의 고통스런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내가 얼마나 집요하고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 왔는지를 말하고싶어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를 몰랐던 것 뿐이다.

한 군사(軍史)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국가는 전쟁을 치르면서 돈이 얼마나 들었고, 사상자가 몇 명 생겼는가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병사 개개인이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해선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질타한다. ‘인간’을 기준으로 전쟁비용을 계산한다면, 전쟁이 남긴 정신적 상흔이 가장 비싼 비용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정신적 고통과 후유증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 말의 의미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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