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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전쟁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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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654회 작성일 10-11-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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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경험이 없는 신세대들에게 영화 ‘람보’는 헐리우드 액션의 진수가 살아있는 ‘액션무비’일 뿐이다. 그러나 ‘람보’는 베트남 참전용사들에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아픔이며 지금도 재연되는 현실’이다.

그동안 소외됐던 참전용사들의 또 다른 아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한 진지한 담론의 장이 마련됐다.

베트남 종전 30주년을 맞아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7일 오후 2시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 세미나실에서 ‘베트남 전쟁과 한국사회-정신의학자가 본 전쟁의 상처’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을 개최한 것.

이날 첫 발제자로 나선 정혜신 심리분석연구소 대표는 “전쟁을 겪은 인간은 전쟁 이전의 인간과 같은 인간일 수 없다”는 한 정신의학자의 말을 인용해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은 비할 수 없이 강력하고 파괴적”이라고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외형적 전쟁은 30년 전에 끝났지만 그 후 지속된 그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끔찍하고 집요하게 계속돼 왔다”며 우리가 전쟁의 상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는 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파국적·압도적 스트레스’로 인한 병리 현상으로,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주로 전쟁, 고문, 강간, 목숨위협 등으로 나타나는 가장 극단적인 스트레스로 규정하고 있다.

정 대표는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넘도록 참전군인들의 정신적인 상처와 그로인한 삶의 뒤틀림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이유는 ‘PTSD'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우리사회는 이들의 어려움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돌려왔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전쟁의 또 다른 상처, PTSD

PTSD의 증상을 겪는 참전군인들은 우울증, 불면증, 정신적·감정적 마비상태, 알콜중독, 자살, 사회적응상의 어려움,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나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정신력이 약하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평가했다는 것이 정 대표의 지적.

정 대표는 “전쟁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참전용사들의 마음이 약하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죽음의 현장에서 체험했던 ‘죽음각인’에 의한 것”이라며 “이 문제를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인 입장차이로 볼 것이 아니라 ‘병’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0년 현재 참전군인 중 1만5000명 이상이 PTSD를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PTSD 판정을 받은 질환자는 단 2명의 불과하다.


정 대표는 PTSD의 증상을 겪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악몽과 환영, 정신적·정서적 마비 등으로 인격적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참전군인들에게 우리는 개인의 문제로 몰아붙이는 이중의 상처를 주고 있다”며 사회적 관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죽고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서의 경험은 가해자도 똑같이 인격적 붕괴를 경험하게 하고 이런 경험이 ‘내적인 폭력’으로 남게 된다”며 “참전용사들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술에 취해 극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싸움에 휘말리는 등의 자기처벌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인 생활 불가능, 가족마저 외면

정상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듣는 헬리콥터 소리, 팝콘튀기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참전군인들에게는 전쟁의 편린을 떠올리게 하는 고통이다.

정 대표는 “베트남전을 연상시키는 소리 등에 노출될 때 참전자들은 극도의 불안, 공포, 놀람 등의 반응을 보이고 이런 자극이 점점 일상으로 퍼져나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된다”며 환자들의 고통을 설명했다.

이런 결과는 참전군인들과 정상인들의 이혼률을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PTSD를 앓고 있는 참전군인들의 이혼률이 정상인에 비해 3배나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

이들의 고통은 이에 멈추지 않는다. 정 대표는 “우리사회는 베트남 참전군인들에게 무용담을 강권하게 만드는 등의 무의식적 자기 방어를 동원하게 만들고 있다”며 “끔찍하고 고통스런 살해의 기억조차 무용담으로 포장하게 하는 사회적 시선이 그들의 고통을 더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제발표를 마무리하면서 정 대표는 “이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정신적 고통과 후유증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진단해야 할 때”라며 “더 이상 전쟁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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