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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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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126회 작성일 10-11-2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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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우울증으로 상담실을 찾은 50대 초반의 A씨는 정치라면 그야말로 치를 떠는 사람이다. 그의 부인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정치란 시궁창 냄새 진동하는 요지경 속이며, 정치인이란 야바위꾼에 다름아니다. 평생 정치판 주변을 맴돌며 만석지기 재산을 탕진하여 결국에는 끼니마저 어렵게 했다는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한 번도 당선된 적은 없지만 각종 선거에 출마한 횟수만 10 번이 넘는다는데, 문제는 70이 넘은 지금까지도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TV를 보다가도 정치관련 뉴스가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채널을 휙 돌려 버린다는 그들 부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나는 가끔씩 남자들이 모두 A씨처럼 그런 건달 정치인을 아버지로 둔 게 아닌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치 얘기를 하는 남자들을 보는 순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정치란 ‘부조리하고 걸리적거리는 각종 문제들을 처리하는 쓰레기 하치장’이다. 분리수거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매도와 냉소와 혐오가 난무한다. 당연히 정치인에 대한 평가도 비슷한 톤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심한 경우 정치인을 무시하지 않으면 어처구니없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거나 의식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정치인이 되면 마치 인격 자체가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지 그들에 대한 인격모독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노무현 대통령은 92년 총선 당시를 회상하며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냉소를 가지고 정치인의 선거행위를 모욕한다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니까 고개를 딱 외면하고 멸시하는 눈으로 쳐다본다든지.....아주 견디기 힘들었어요. ’나는 정치를 불신한다, 그런데 당신은 정치인이고 선거운동을 하러 오니까 인격적인 모독을 줘도 된다’는 거죠. ”

김근태 의원도 TV토론 프로그램 출연시에 느꼈던 인간적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젊은이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얘기하면서, ‘메모하는 것도 쇼 아니냐’ 하는 말에 참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아마 사석에서 그랬다면 혼을 냈을텐데 내가 웃으면서 ‘앞으로 더 신뢰를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하고 넘어 갔는데 후회가 돼요. 야단을 쳤어야 하는데...”

도덕성이나 자질면에서 최정상급이라고 판단되는 노무현이나 김근태같은 사람들도 그런 정도니 다른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인의 행동을 감시하고 잘못을 질책하는 게 유권자의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이런 일방적인 매도나 냉소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정치인을 칭찬하면 안될 이유라도 있는가.

서울 장안에서 유명한 어느 설렁탕집의 전설같은 얘기다. 식당을 시작할 때 주방장과 주인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방장은 설렁탕에 들어가는 고기를 다른 집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이 넣어 식탁에 올렸단다. 주인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어디 한번 망해봐라’고 그런 짓을 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고기의 양이 푸짐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문전성시를 이룬 것이다. 주인은 너무 신이나서 주방장 칭찬에 열을 올렸고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주방장은 더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또 어쩔 수 없이(?) 그 설렁탕집은 더 잘되었다는 것이다.

거칠고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식당주인과 주방장의 관계를 국민과 정치인으로 환치하여 이런 심리적 매커니즘을 정치개혁의 한 도구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좋은 점을 찾아내어 격려해 주려고 안달(?)이 난 유권자를 앞에 두고 삐딱이만 고집하는 어리석은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좋은 옷을 입으면 자기도 모르게 행동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느 연말 김홍신 전 의원은 ‘국회의원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나흘동안 의원회관에서 농성을 벌였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분리법안과 관련하여 당론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6년 넘게 활동해온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배제되자 그에 대한 항의로 나홀로 농성을 벌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둘러싼 찬반논쟁에서 촉발됐지만 그 끝은 ‘국회의원 바로서기’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나는 재정통합의 찬반이나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김홍신이라는 한 정치인에게 성원을 보낼 마음이 충만하다.

지금 당장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의 좋은 점에 대해서 이메일이나 전화로 격려의 메시지를 날려보라. I'm OK, You're OK라는, 의례적일 수도 있는 말의 참뜻을 절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공익광고의 카피처럼 이 경우에도 사랑은 생각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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