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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적 변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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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07회 작성일 10-11-2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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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에나 꼭 그런 사람이 한두 명 있었던지 여고 동창모임에서는 ‘변태’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체육시간 중의 모욕적인 체벌이라든가 예비숙녀의 두발을 무자비하게 가위질하면서 웃음을 짓던 선생님 등이 주로 입방아에 오른다. 지나고 보면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의 오해였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그때 그 선생님들을 ‘실제의 변태’와 단지 ‘애칭으로의 변태’로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신의학에서 ‘변태’와 ‘정상’을 구분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변태성욕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우연히 누군가 엿보는 듯한 상황에서의 섹스를 통해 극도의 성적 쾌락을 경험한 사람은 그런 상황을 의도적으로라도 다시 경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실제 배우자의 이런 행동을 ‘변태’라고 단정하여 정신과 상담실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남에게 보여지는 섹스를 통해서만’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명백한 변태다. 그러나 다른 성행위를 통해서 만족을 느끼면서도 이따금씩 그런 충동을 느낀다면 그건 다양한 성적 취향의 한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장화에 채찍이 등장하는 피학성이나 가학성 섹스를 상상하며 이따금 실행에 옮길 수는 있지만 ‘매번 말장화와 채찍이 있어야만’ 성적 흥분이 가능하다면 그건 변태다. 그러니까 변태란 ‘매번 그런 상황이 되어야만’ 만족과 심리적 안정을 얻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다른 상황’이란 상상할 수도 없고 견딜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철새 정치인’이라는 해묵은 소동을 볼 때마다 ‘변태’의 그와 같은 정신의학적 개념을 다시 생각한다. 한 신문은 사설을 통해 “명분이야 뭐라고 내걸든 선거를 앞두고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는 정치꾼들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탈당과 당적이탈의 명분이야 그럴 듯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다음 총선에서 자신이 당선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모아진다. 정권교체 후 야당에서 집권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다시 집권 가능성이 큰 야당이나 혹시 집권할지도 모르는 제3의 정당을 기웃거리는 이들의 행태에 이르면 보는 사람이 절로 참담한 기분이 된다.

때마다 철새정치인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일군의 정치인들은 당시의 시점에서 충분히 힘이 ‘센’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쎈’ 권력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는 것처럼 보인다. 진보정당 한 후보의 말처럼 ‘인격적 권력’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반드시 가장 ‘쎈’ 권력을 가진 정치집단이 되어야만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명백한 ‘정치적 변태’다.

이상우가 연출한 연극 《거기》에는 ‘변태귀신’에 관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여자만 보면 집적거리다 마을에서 쫓겨난 남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자신의 무덤을 파던 산역꾼 앞에 귀신으로 나타나 자기 무덤을 새로 생긴 여자 무덤 옆으로 옮기도록 부추긴다는 내용이다. 산역꾼은 죽어서까지 여자 옆에 묻히려는 ‘변태’의 집요함이 ‘끔찍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변태’들의 집착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쎈’ 권력에만 집착하는 정치인에게 ‘변태정치꾼’이라는 오명을 안겨도 무방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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