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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그릇부터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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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48회 작성일 10-11-2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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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때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비단 목욕탕 주인만 아니다. 정권 교체기에는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들에겐 자신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청탁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어떤 이들의 행태는 ‘때가 왔다’고 맹신하는 사이비 광신도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란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말했다는 인사청탁시의 ‘패가망신’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은밀한 청탁의 과정을 거쳐 무사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난 후 벌어질지 모를 그런 이들의 망신살을 걱정한다.

사람에게는 모두 그만한 ‘심리적 그릇’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말이 아니다. ‘심리적 그릇’이란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자기책임 하에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내면의 크기이다. 가수 조영남은 “사람은 죽기 전에 반드시 자기 패를 까 보이는 운명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백 번 공감하지만 그건 운명이 아니라 심리적 그릇에 좌우되는 문제다.

살다보면 그동안 감추어 왔던 자신의 쭉정이 패를 훌러덩 보여주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목격한다. 대선을 2시간 앞두고 공조파기를 선언해 세인을 경악케 한 어느 정치인이나 ‘새됐다’는 유행어의 주인공이 될 만큼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젊은 정치인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소설 『검은 고양이』에는 사체를 지하실 벽에 숨기고 시멘트로 봉한 범인이 가택 수색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형사에게 벽에 아무것도 숨겨져 있지 않다고 두드리다가 범행이 발각 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과 같다. 누가 그들에게 패를 보여달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매달린 적도 없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쭉정이패를 까보였다. 한두 번 잘못된 정치적 선택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반론은 적절치 못하다. 그것은 정치적 판단 미숙에 대한 매도와는 좀 다르다. 그것은 그대로 그들의 심리적 그릇이다.

남들에게 자신이 가진 ‘꽃놀이패’만 보여주면서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단순히 외형적인 노력이나 운만으로 쭉정이패를 숨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치명적인 쭉정이패를 숨긴 채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도 있고, 쭉정이패를 다 내보이고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수십 년을 버텨온 정치인도 있지만 이제 그런 일은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할 것이다. 인사청문회 같은 제도는 결국 한 사람의 패를 다 까 보이게 하는 공식절차에 다름 아니며,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조차 꽃놀이패에만 현혹되지 않을 만큼 급격하게 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비서나 운전기사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는 속설이 있다. 한 인간이 패를 쉽게 드러내는 장소에 있는 사람, 그래서 그의 심리적 그릇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평가는 그 무엇보다 정확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 공인된 이는 무수히 많은 비서와 운전기사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인이길 자처하거나 공인의 길을 제의받은 사람은 자신의 심리적 그릇을 찬찬히 따져 혹여 본의 아니게 쭉정이패를 까발려 망신살이 뻗치지 않도록 청탁과 수락에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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