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 오버하지 말자 > 똑 소리나는 사람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똑 소리나는 사람


 

세대갈등 오버하지 말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264회 작성일 10-11-21 23:29

본문

‘맞고 말할래, 말하고 맞을래?’

이런 농담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는 게 나에게 유리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도대체 내가 왜 맞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의문은 건너뛴 채 방법론에 집중하다보면 ‘어차피 나는 맞는다’는 타인의 전제에 동의하는 셈이다.

2002년 대선 이후 일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세대갈등이 바로 그런 사례의 하나다. 세대갈등이 지극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는 결론은 이미 내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50대 주부는 대선에서 ‘세대별 대결이 두드러졌다’는 언론의 분석을 호들갑이라고 표현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일부 언론이 제기하는 ‘세대갈등’론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세대갈등이 세대배척으로 번져갈 가능성이 있다는 염려는 기본이고, 20~30대가 강하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됐다는 분석까지 등장한다. “대선 한 달이 지난 후 5060세대들이 갑자기 늙은 느낌이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실리고 ‘기성세대여 기죽지 말라’는 격려성 칼럼도 줄을 잇는다. 그들의 말 속에는 세대갈등이 세대전쟁으로 이어져온 나라가 금방이라도 결딴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원래 세대갈등은 통시대적이며 정서적인 문제다. 어느 시대에 이슈화를 해도 말발이 먹힌다는 말이다.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에서는 기성세대의 상실이나 허탈, 소외감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나는 개인적으로 몇 년 전부터 중견남성을 위한 정신건강 클리닉을 운영할 만큼 ‘청춘을 지나온 남성’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는 까닭에 더욱 그렇다. ‘(50~60대들이) 단순한 세대갈등을 넘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전문가의 진단에도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기성세대의 좌절과 한탄이 왜곡된 언로(言路)로 인해 필요 이상 부풀려지고 증폭된다는 데 있다. 강준만 교수의 지적처럼 일부 신문들이 지속적으로 생산해온 뒤틀린 정치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중독된 유권자들에게는 선거 결과가 충격적이고, 나라의 앞날이 걱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충동적으로 말하고 결정하는 정치인이나, 충동적으로 따라가는 젊은 세대나 똑같다”며 혀를 차는 기성세대의 걱정은 혹시 심리적 갈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가 입력되지 않아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기성세대의 인식 수준을 얕잡아보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어떤 목사의 푸념을 들어보자. “요즘 서울에는 한 집 건너 교회다. 포화상태라 더 이상 서울에서는 교회 설립이 어렵다.” 이게 1950년대 얘기라면 믿어지는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얘기다. 그렇다. 때로 인간의 인식이나 판단은 어이없을 만큼 허술하고 근시안적이다.

소설의 본질은 갈등이라고 한다. 갈등이 없으면 사건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학자는 세대 간 갈등과 충돌을 사회발전 및 변화에 꼭 필요한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규정한다. 지난 대선에서 20~30대의 32.8%는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고, 50대 이상의 39.8%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동조하는 정도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인데 ‘세대전쟁’ 운운하는 건 명백한 오버다.

한 강연회에서 “지금 이 사회에 대해 우려하지도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는 유권자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큰 몫을 한 20대와 30대의 젊은이들뿐”이라며 그들을 ‘사회적 철부지’이며 ‘대형사고칠 공범’으로 질타한 송복 교수가 오래전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아주 멀쩡한 말을 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다. 한국사회만이 유독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 우리가 사는 산업사회는 갈등이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이다. 우리는 아직도 ‘갈등’에 너무 약하고 ‘갈등의 반응’에 너무 서투르다. 무엇보다 갈등을 병리로 생각한다. 그러나 갈등은 병리가 아니라 정상이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