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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경계와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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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168회 작성일 10-11-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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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노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를 보면서 나는 그 토론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나 사회적 파장과는 별개로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대화 첫머리부터 화(?)를 낸 노대통령의 행동이 무척 인상깊었다. 한 검사가 노대통령을 토론의 달인이라고 지칭하면서, 토론의 재주로 자신들을 압도하려 들지 말라는 요지의 말을 한 직후 노대통령은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럴 때 대개의 사람은 그러마고, 너무 염려하지 말고 오늘은 마음껏 얘기하라고, 이 자리가 그런 자리가 아니겠느냐며 겸양의 미덕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자신이 잘못 규정당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부당한 심리적 침입을 받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그래서 화를 냈다.

필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화를 낼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화 다스리는 법을 설파하는 틱낫한 스님에게 열광하는 시기에 턱없는 이설일 수도 있고 노대통령에 대한 일방적 옹호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내 나름의 심리적 근거가 있기는 하다. 화라는 것은 타인의 심리적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최일선의 자기방어책이며, 최소한의 으르렁거림이다. 화를 낸다는 것은 자기 중심이 명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심리적으로 나와 남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한 사람만이 화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지지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해 내진耐震설계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나와 타인의 ‘경계’ 의식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남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대통령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특히나 그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자 동시에 간절한 소망이다. 그 소망과 믿음은 그의 참모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의 측근 중 몇 명에게서 ‘경계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우려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애정어린 우려는 ‘코드’라는 단어와 맞물려 더욱 증폭된다.

노무현정부가 들어선 이후 ‘코드가 맞는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표현이지만 요즘은 유행처럼 일상에서도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와 교감이 가능한 대상이 있다는 혹은 그런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의 또다른 표현이다.

코드가 ‘딱’ 맞아 ‘완벽한’ 교감이 이루어질 수 있는 대상을 만날 수 있다면 그건 그대로 삶의 축복이다. 그 순간-자신과 외부세계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합일의 경지에 이르면서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오토바이 매니아가 바람을 가르며 최고 속도로 질주할 때 오토바이와 나 사이에는 그 어떤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사람은 정신적 오르가즘을 느낀다. 하물며 그 대상이 인간일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오르가즘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충만한 합일감으로 나와 대상 사이의 경계가 불명확해 지기 시작하면서 크든 작든 부작용이 동반된다는 사실이다. 밤하늘을 비행하는 전투기 조종사의 흔한 사고 중 한가지는 우주와 하나된 것같은 황홀경에 빠져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여 바닷속으로 돌진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와 대상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 졌을 때 생기는 판단력 상실의 한 사례다.

한 조사에 의하면 기혼남녀들은 ‘결혼하면 제일 먼저 포기해야 하는 것’ 으로 사생활을 꼽았단다. 코드가 맞는 혹은 맞아야 하는 대상과는 그 어떤 경계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산물이다. 그러나 대부분 결혼생활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지나친 사생활의 포기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나와 남사이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나의 사랑이 상대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고 사적인 관계에서 대수롭지 않다고 믿었던 행동이 공적인 영역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코드’ 문제를 거론할 때 반드시 잊지말아야 할 대전제는 어떤 경우에도 나와 남의 경계를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코드가 맞고 안맞고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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