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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과 마술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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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140회 작성일 10-11-2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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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국회 이라크 현지조사단이 투숙하고 있는 바그다드 시내의 한 호텔이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같은날 휴가를 나온 현역 사병이 ‘이라크 파병 반대’를 선언하고 부대복귀를 거부한 채 농성에 돌입했다. 또 한차례 파병을 둘러싼 논란이 생길 조짐들이다. 군내 최하위 계급인 이등병이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통해 이라크 파병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착잡하다. ‘군과 나라의 기강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느냐’며 분노와 한숨을 토해내는 비분강개파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분노와 걱정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앞으로 자신이 겪게 될 혹독한 시련을 잘 알면서도 이라크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스물 두 살 난 이 청년의 마음에 절절하게 공감해서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의 행동을 소영웅주의나 감상주의로 매도하는 이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책결정권자들은 전쟁이 인간에게 가하는 구체적 참상은 애써 외면한 채 파병을 마치 국위선양을 위해 해외에 선수단을 파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감정적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전쟁이 인간의 육체와 영혼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 것일까.

장교 신분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온건한 아버지가 전쟁이 끝난 후에 예측 불가능하고 폭력적인 가장으로 돌변해 끔찍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우리나라의 한 신부님은 현재 이라크 반전 평화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91년 걸프전이 끝난 6개월 후 소아 심리학자들이 이라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전쟁 후유증을 조사했다. 면담 대상 어린이의 62%는 자신이 살아남아 어른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를 품었고 5명 중 4명은 죽거나 헤어지게 되어 가족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표현했다. 절반 이상이 계속해서 전쟁의 악몽에 시달렸으며, 66%는 그 기억 때문에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 어떤 어린이들은 자신은 살았고 친구들은 죽었다는 이유로 우울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생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03년 현재의 이라크 어린이들은 똑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전쟁의 참혹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파병 찬성파들에게 이런 류의 얘기들은 소모적 논쟁과 국론분열로 치부된다. 파병을 하지 않았을 때 미국이 한국에 취할 보복 즉 미군 감축이나 경제적 불이익 등에 대한 구체적 시나리오는 그들의 어김없는 단골 메뉴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공식적인 파병요청이 있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고 파병 논의가 활발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다. 하지만 2003년 4월 서희.제마 부대의 파병으로 우리는 파병과 한반도의 안전 그리고 경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베이징 6자 회담의 결과와 하이닉스 반도체 보복관세 부과 따위가 일단의 증거다.

나는 대미관계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마술적 사고’에 사로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마술적 사고란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이러한 알 수 없는 힘을 달래기 위해 동원하는 원시적 사고를 일컫는 정신과 용어다. 예를 들면 병에 걸려 죽어가는 엄마를 둔 아이는 ‘내가 하루에 책을 100페이지씩 읽으면 엄마가 죽지않을거야‘라고 생각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그 분량의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 자신의 불안은 감소되지만 엄마의 삶은 당연히 한 시간도 연장되지 않는다. 도저히 어찌할수 없을 것 같은 극단의 불안이 마술적 사고를 불러 오는 것이다. 마술적 사고는 미신의 최초 원료다.

‘우리가 파병을 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할 수 있을거야‘
정부가 지난 2003년 10월 18일 최종 확정한 이라크 추가 파병결정 원칙은 대미관계에서의 마술적 사고에서 비롯했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다면 추가 파병 결정은 정책 결정자들의 미신적, 마술적 사고에서 벗어나 본질부터 다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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