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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356회 작성일 10-11-2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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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직후 보수 언론들이 보여 주는 칭찬 릴레이는 느닷없다. 몇년 전, 노무현 정부에 대해 좀더 우호적일 수 없느냐는 질문에 “거대 신문사의 논조는 항공모함과 비슷해서 금방 진로를 바꾸기 어렵다”고 답했던 한 신문은 이번 협상 체결을 새마을운동과 서울올림픽에 버금가는 건국 뒤 ‘최대의 치적’으로 추어 세운다. 급기야 대통령이 이런 결심을 했다는 자체가 ‘복받은 나라’의 증거라는 언론까지 등장한다.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국민의 절반 정도가 긍정적이며 그 때문에 국정수행 지지도가 10퍼센트 이상 올랐다니 취임 이래 가장 긍정적인 언론 보도를 접하고 적지 않게 고무됐다는 노 대통령의 심경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을 비합리적이고 편협한 집단처럼 몰아붙이는 보수 언론과 노 대통령의 주장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닐 것이다.

특히 자유무역협정으로 ‘일부’는 고통받을 수 있다며 전체를 강조하는 시각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한 신문은 이젠 개인도 아마추어는 소멸할 수 밖에 없다고 훈계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프로 의식을 걷어내고 소박하게 살고 싶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김언수의 소설 한 대목처럼 “병원에서 일한다고 모두가 의사는 아니며, 공군에 근무한다고 모두가 조종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더 잘 알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은 정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라며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하지만, 조금 덜 먹더라도 어떻게 먹고 사는 게 옳은 길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런 당부는 부적절하다.

협상 타결 직후 노 대통령은 그동안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반대 논리를 물었지만 아무도 분명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며 앞으론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토론하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이나 부동산 정책, 개헌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런 식의 표현을 적지 않게 사용했다.

얼마 전에는 사회복지 정책과 관련해 전문가와 한 시간 정도만 토론하면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적도 있다. 한 토론회에서 젊은 영화 배우에게 “한국 영화 그렇게 자신이 없냐”고 물어놓고 그것을 근거로 영화 시장 개방과 관련해 “분명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답답해 하면 그걸 보는 사람은 더한 갑갑증이 생긴다.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 반대 논리를 폈던 수많은 이들의 주장이 노 대통령의 주장처럼 그렇게 다 근거없고 비합리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내 세상’ 논리로 재단하니까 그럴 뿐이다.

자동차 매니아인 한 직장인이 몇 년 동안 돈을 모아 외제차를 샀는데, 운전을 할 때마다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단다. 새 차의 브레이크 성능이 너무 좋아 ‘내 차는 브레이크를 밟으면 잘 서는데 뒷차의 브레이크가 밀려 내 차를 들이박을까봐’ 자꾸만 뒷거울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차 안에 있을 때, 그는 내 앞에 훨씬 더 민감한 브레이크를 장착한 차가 내 차의 브레이크 성능을 걱정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할 수 있다. ‘내 세상’ 논리에 빠지면 그렇다.

자유무역협정이 정식으로 발효되면 무려 백 가지가 넘는 국내법을 고쳐야 할 정도로 국가 운영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공화국의 어떤 시민들은 노 대통령이 그런 것처럼 ‘개인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어도’ 줄기차게 절차와 합의, 점검과 보완을 주장하는 것이다.

협상타결의 수고로움과는 별개로, 반대자의 논리가 정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고통받을 ‘일부’에 대해서 좀더 진지한 성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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