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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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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357회 작성일 10-11-2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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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업상 제3자가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외형적 조건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정된 경제력에 그럴듯한 직업에 공부 잘하는 자녀까지 둔 사람의 무기력과 우울은 이해할 수 없는 사치한 투정쯤으로 여겨진다.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심리적 착시 현상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재물이 넉넉하면 어지간한 다른 결핍들은 능히 견딜 수 있다는 환상에 가까운 믿음들이다. 성공이란 자기억압의 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이들이 따로 치러야 할 심리적 비용이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정신의학적 설명을 곁들여도 많은 이들은 ‘그래도 그런 고통 한번 겪어보았으면 좋겠다’고 부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성과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인간의 행동을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의사결정인 것처럼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이 횡행한다.

범여권 지지율 1위 대선 예비후보라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지난 3일 ‘광주 발언’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민주화 세력 정통성 논란과 관련된 여타의 발언과 공방은 논외로 하자. ‘올해 대선에서 광주정신을 실현하는 길은 한마디로 일자리’라는 손 전지사의 발언은, 한마디로 착잡하다. 아무리 일자리 창출이 손 전 지사가 중시하고 자신있는 정책과제라 해도 이 정도면 ‘천박한 광주인식’이라는 일부의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인간이 지닌 본래의 심성을 지키고자 했던 광주정신마저 궁극의 목표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성과로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이 너무 남루하지 않은가. 광주항쟁 당시 죽음을 예감하고도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던 이들의 행동은 얼핏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일생을 죽음보다 더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때의 합리적 의사결정이란 뜻을 함께했던 이들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은 겉으로 드러난 경제논리나 합리적 이유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와 관련된 한 연구에서, 수감자들은 목숨을 겨우 유지할 정도로 최소량의 식수만을 지급받았는데 어떤 이는 그걸 반만 먹고 반은 남겨서 자기 몸을 씻었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은 어리석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식수로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물로 몸을 씻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식수를 남겨서 자기 몸을 씻은 사람들의 생존율이 그러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높았다는 게 연구의 결과다. 우리 중 누군가는 생존에 필수적이라 여겨져온 양의 수분을 공급받는 것보다 인간으로서 자기 품위를 유지할 때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손 전 지사는 경기지사 시절 전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의 70%에 해당하는 7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경기도에서 연평균 7.5%의 경제 성장률을 이룩했단다. 그런 성과들이 있어서 오늘의 대선 예비후보 손학규가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그게 다일 수는 없다. 여러 중요한 사안 중 하나에 불과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손학규 정도의 인품과 학식을 갖춘 이가 어째서 광주정신까지도 일자리로 환치시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적 성과를 보여줄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사안을 경제논리 하나로만 밀어붙이며 미래의 경제 대통령을 자처하는 이는, 정말이지 한 사람이면 족하다. 우리는 사람이지 경제 동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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