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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없는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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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377회 작성일 10-11-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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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조업중이던 한국인 선원 4명이 무장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그로부터 2개월 후인 7월 19일 이번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교회신도 23명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됐다. 아프간 인질 사태가 43일만에 해결된 반면 소말리아 피랍 선원들은 아직도 풀려나지 못한 채 한국인 피랍 최장 기록을 세우며 납치 162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인질의 숫자만 다를 뿐 대한민국 국민이 무장 세력들에게 납치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두 사건은 본질적으로 같다.

그런데 두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대처는 전혀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국민들은 그러한 정부의 태도가 사건의 해결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다. 국회 외교통상위 위원장은 아프간 피랍 사건과 비교해 경제적 약자인 외항선원 납치 사건에 너무 소홀하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대다수 국민의 생각도 그와 비슷하다. 하지만 원칙과 절차를 강조하는 정부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해적과는 협상할 수 없다는 정부의 원칙, 각 나온다. 향후 선례를 남길 수 있어 석방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정부의 태도, 그럴 듯 해보인다. 관련 보도가 나갈수록 선원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가족들의 입을 막아온 정부의 일처리 방식, 깔끔하다. 하지만 정부의 그런 원칙적 태도로 인해 피랍 선원들은 지옥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해적들은 마약풀을 먹은 환각 상태에서 선원들에게 끔찍한 구타와 고문을 가하며 돈을 주지 않으면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 이빨이 부러지고 고막이 터졌다. 개, 돼지도 먹지 못할 모래쌀로 연명을 하며 선실에 갇힌 채 배에 기름이 없어 밤에는 암흑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162일 째다. 오죽하면 자신들이 갇혀 있는 배를 포격해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해적과 협상할 수 없다는 정부의 원칙이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원칙인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서는 정부가 고수해야 할 그 어떤 원칙보다 우선해 국민의 생명 그 자체가 최고의 원칙이어야 합당하다.
통상 해적과의 협상에서 정부가 선주 대신 몸값을 대신 지급한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는 피랍 선원들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심지어 외교부의 예산이 부족해서 협상금을 낼 수 없다는 발언에까지 이르면 국민의 처지에선 적개심마저 생겨난다.

혹여 ‘국가’라는 단어가 ‘국민의 가정’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면 소말리아 피랍 사태와 관련해서 우리에겐 국가가 없는 게 확실하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는 혹시 아이가 집으로 돌아올까봐 수 십년간 이사도 가지 않고 심지어 밤에 대문을 잠그지도 못한다. 자기 가족이 인질로 잡혀 고통 속에서 희미한 생명선을 이어가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반년 가까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방치하는 가정이란 ‘권순분여사 납치사건’같은 코미디영화가 아니라면, 단언컨대 존재할 수 없다. 국가의 가장 기초적 의무인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 등을 돌리는 국가란 이미 국가가 아니다.

힘은 없으나 부끄럽지 않은 시민들이 힘을 모아 ‘소말리아 피랍선원들을 위한 시민모임(소선모)’을 결성했다. ‘소선모’는 피랍선원 석방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여 순식간에 5억원을 모았다. 가슴이 답답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들이다.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간절히 바라는 ‘소선모’의 취지문 한 구절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정부마저 피랍자들에게 등을 돌린 지금, 피랍선원과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국민 뿐’이다. 그런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쓸쓸하고 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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