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기도를 화폭에 담으며 성서백주간 봉사자로 활동 펼쳐
|
▲ '예수 아기 봉헌' 김정자 작 |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서울 혜화동 가톨릭교리신학원 강의실에 학생 20여 명이 모였다. 교양강좌 '신앙과 미술' 시간. 한국화가 김정자(마리스텔라, 74, 명동본당) 화백이 교단에 섰다. 스크린에는 김 화백이 그린 십자가의 길 5처(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지다)가 띄워져 있다.
"이때 시몬이 왜 하필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하냐고 불평했다면 어땠을까요?"
기도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기도하는 김 화백의 수업 시간은 특별하다. 신앙으로 그린 그림은 다시 성경구절로 살아나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다. 그의 성화를 슥슥 따라그리는 학생도 눈에 띈다.
소림(昭林) 김정자 화백. '밝은 숲에는 많은 생명이 산다'는 뜻으로 붙여진 그의 아호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붓길이 지나가는 곳에는 살아있는 것들이 숨쉰다. 서양화와 수묵화를 두루 섭렵한 그는 고 운보 김기창(베드로) 화백의 애제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성경은 '먹'과 같다. 화선지에 붓끝이 닿기 전 그는 성경을 읽고 오랜시간 묵상한다. 이미 그의 붓을 성경에 푹 담궜다 빼는 셈이다. 그리고 기도로는 색을 입힌다. 그러니 그의 붓길이 닿는 곳엔 하느님의 사랑이 번진다.
그는 지금까지 성경의 세계를 그림으로 펼쳐냈다. 그의 작품에는 성경구절이 따라붙는다. '예수의 일생'을 테마로 예수의 공생활을 그렸고, 또 그의 작품 중 150여 점은 차동엽(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신부의 베스트 셀러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 「여기에 물이 있다」 등 삽화로 실렸다.
그는 붓을 든 말씀의 봉사자다. 그에게 그림은 말씀을 전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명동본당(주임 박신언 몬시뇰)에서 9년간 성서백주간 책임 봉사자를 맡다가 최근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0년 처음 1개 반으로 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17개 반을 맡았다. 현재는 6개반을 맡아 하루에 반나절은 성서를 읽고 준비하는데 힘을 쏟는다.
말씀의 봉사자로 첫발을 내딛기 전까지 그는 35년간 교직생활을 했다. 정년퇴임 후 그는 말 그대로 성경과 붓으로만 살았다.
"하루종일 성서백주간 모임을 하고 밤늦게 집에 가는 길에는 얼마나 지치는지 몰라요. 고등학교 담임 시절보다 더 힘들더라구요."
그는 특히 성서백주간과 인연이 깊다. 1992년 장익(춘천교구장) 주교가 일본에서 성서백주간을 들여온 후, 김 화백에게 일본에서 성서백주간 연수를 받고 올 것을 권유했다. 당시 성서백주간이 한국교회에 잘 자리잡지 못하던 시절, 일본어가 유창한 김 화백은 구원투수로 일본에 다녀왔고 돌아오자마자 성서백주간 봉사자로 투입됐다.
"말씀의 봉사자는 하느님의 협력자입니다. 말씀으로 매일 새롭게 살 수 있는 봉사입니다. 하느님이 매일 열어주시는 그 길을 기쁘게 가는 것뿐이죠."
그는 새벽마다 성체조배와 매일미사로 새 아침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10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1명만 남았던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는 그 한 명이야말로 '소중한 밀알'이라고 믿었다. 단둘이 앉아 공부하면서도 지치지 않게 해주신 하느님의 수확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의 봉사자는 주님의 협력자로, 기쁜 소식과 영광을 위해 선택받은 이들"이라고 말했다. 이는 성서주간 담화문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그는 봉사자들에게 스스로 복음을 살아야 함은 더없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봉사자를 양성하며 또 다른 자신을 보낸다. 척박한 토양에 떨어져도 썩지 않는 밀알로 많은 씨앗을 퍼뜨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와 5년간 함께한 제자는 "우리는 아직 목적을 위한 신앙에 치우쳐 있지만 선생님은 하루 세끼 밥 챙겨드시듯 성서 말씀대로 사시는 분"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그가 수녀회에 입회하기로 마음먹던 시절 그는 친척오빠가 갸우뚱하며 한 말을 기억한다.
"난 네가 시, 수필, 그림, 자연을 좋아해서 진로를 성경으로 잡을 줄 몰랐다"고 한 말이다. 당시 사춘기였던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다 하느님 일이거든."
살포시 웃던 소녀는 어느덧 고희를 넘겼고, 그는 아직도 하느님 일을 한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