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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포문제연구소 이구홍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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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275회 작성일 10-07-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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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유대인.교포-그들은 누구인가' 곧 출간

대학 4년 재학 중 교포연구소 설립..46년간 연구 매진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4년 해외교포문제연구소를 설립해 거의 반세기 가까이 재외동포문제에 천착해 온 이가 있다.

제4대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구홍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이사장이 바로 주인공.

그가 반세기를 바쳐 온 동포 문제 연구의 진수를 모아 최근 `화교.유대인.교포-그들은 누구인가'(성안당, 230쪽)라는 제목의 책을 곧 낸다.

21일 서울 종로에 있는 그의 연구소를 찾아 마지막 교정 작업을 보는 그로부터 동포 문제의 현주소와 과제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먼저 대학 재학 때 해외교포문제연구소를 설립한 동기가 궁금했다.

그는 "당시 국가적으로 가장 큰 이슈가 바로 한일국교정상화였고 한일협상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었다"면서 "그러나 한일 양국이 협상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는 판이하게 달랐는데 그 이유가 바로 해외교포 문제 연구가 미진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다니던 그는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도 앞장섰다.

특히 `재일교포 법적 지위'를 다루는 실무회담에서 일본 측은 몇 년 동안 이 문제를 다뤄 온 전문가가 나온 반면 한국 측은 저명한 변호사들이 매번 교체되면서 회담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당시 협상 대표의 한 사람이었던 이천상 변호사의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이 변호사는 재일교포 법적 지위 관련 회담을 하고 나서 "약자가 강자와 싸워 이기려면 논리라도 앞서야 하는데, 그나마도 일본 대표에게 밀렸다. 교포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본론으로 들어가 `화교.유태인.교포-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내게 된 동기를 물었다.

그는 "평생을 해외교포 문제에만 천착해온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면서 "역사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오늘날 중국과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정치.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데 화교와 유대인의 역할이 지대했던 만큼, 정부 당국자와 일반 국민들이 화교와 유대인에 비춰 한인 교포들에 중요성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화교가 동남아에 `또 하나의 중국'을 건설했고 유대인들이 미국 속에 `이스라엘의 충직한 보루'를 만들어 놓았듯이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이 각국에 `한국의 보루'를 만들고 세계를 망라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성을 인식해 주기를 바란다고 그는 강조했다.

저서 목차에 있는 `대만과 중국의 화교전쟁'에 대해 묻자 그는 "일본에서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민단과 북한이 지원하는 총련이 재일교포들을 사이에 놓고 치열하게 싸웠던 것처럼 중국과 대만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중국과 대만의 예도 그랬지만 재일교포 사회 역시 국력이 강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는 총련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지만 이후 한국이 북한을 앞서면서 총련 회원 수가 줄고 재일민단 가입자들이 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이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하고 1971년 유엔에 가입하면서 동남아에 흩어져 살던 화교들이 대거 중국 편에 섰다"면서 화교의 사례도 덧붙였다.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재외국민투표법이 통과되면서 관심이 높아진 재외동포 참정권 문제에 대해 이 이사장은 "외국 시민권자는 투표할 수 없고 영주권자만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치권과 일부 교포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일 뿐, 실질적으로 해외교포들의 권익 신장과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때 재외동포들의 참정권 부여에 단호히 반대했고 이를 놓고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정권인수위원회 위원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재외동포들의 권익을 위해서는 이스라엘처럼 이중국적을 허용해 다른 나라에서 국적을 취득한 한인들이 모국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하고, 교포들이 아무 때고 큰 비용 부담 없이 쉽게 모국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과정에서 `교포'와 `동포'를 섞어 이야기했다. 얼마 전부터 국내 언론 등이 `교포'라는 말 대신 `동포'라는 용어로 통일해 사용하는 데 대해 그는 "틀린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에 사는 이들과 한국에 사는 이들을 함께 포괄하는 말이 `동포'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부를 때는 교포라는 말이 맞다는 것. 동포가 문화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면 교포는 정치적ㆍ법적 용어로서 '동포법적 지위'라는 말은 어불성설이고 `교포법적 지위'라고 해야 정확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중국은 바다를 건너지 않으니 `해외동포'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재외동포'라고 해야 맞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독일에서 프랑스로 물건을 수출하면 `재외수출'이라고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웃었다.

또 1902년 당시 121명이 제물포에서 겔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떠나면서 시작된 우리 이민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해외교포'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책 속에는 또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이 경제발전에 매진하던 시기에 재일교포들이 기술과 자본을 들여오고 서울의 구로동과 마산 수출공단을 일궜으며 한국의 보릿고개를 없애는데 재일교포들이 기여한 이야기 등 그만이 아는 `해외교포 비사'들이 재미있게 서술돼 있다.

또 `백번을 참으면 금이 생긴다'는 뜻의 `백인성금'(百忍成金)과 `근면절약' 등 화교 사회의 10가지 가르침은 동포 문제의 문외한도 관심을 가질 만하며 미국 내 유대인들의 막강한 로비 실태 역시 동포 문제 시각에서 재음미해 볼만하다.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재일교포들이 100억 엔을 현찰로 내 놓은 것은 아는 이들은 다 안다"면서 "남북한 인구 대비 1할에 해당하는 700만 명을 넘어섰고,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을 중심으로 5대양 6대주에 골고루 분포된 해외교포의 엄청난 잠재력을 활용하면 한민족이 분단을 극복하고 대국으로 웅비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충남 부여 출생으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기 전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정책심의위원과 재외동포재단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재일한국인사회', '한국이민사'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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