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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 교수의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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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1,459회 작성일 10-06-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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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 경인여대 겸임교수(46. 식품영양조리), 그녀가 10일 美 국무부가 수여하는 올해의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Award for International Women of Courage)’을 수상했다.
이 상은 미 국무부가 매년 세계여성의 날(3월8일)을 전후해, 전 세계 여성지도자들 중에서 여성인권 정의실현에 공로가 큰 여성을 선정 수상하는 상이다. 이 같은 상을 받은 이교수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그녀의 인생역전이 감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녀의 인생은 질곡의 연속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월남자가족’이란 이유로 자유 없는 삶을 선고받았다.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6.25동란 때 조부모가 월남(越南)했다는 이유로 부모와 함께 양강도라는 오지로 유배당했다. 그래서 그녀에겐 꿈도 희망도 허락되지 않았다.
성분차별의 높은 장벽을 뚫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월남자가족이란 이유로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북한사회에 염증을 느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북한의 부당한 차별을 피해 1997년 10월, 4개월 된 아들과 탈북해 서울에 정착했지만, 남한의 삶은 더 혹독했다.
남한에서 그녀는 월 50만원의 호텔청소부로 시작했다. 그러나 생활은커녕 아들의 분유 값도 안됐다. 그래서 보험설계사로 전업했다가 웰빙식당을 열었다.
그곳에서 탈북여성에 대한 논문을 쓰던 이화여대 학생을 만났다. 그 여대생이 그녀의 높은 향학열과 영특함을 발견,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이종미 교수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장학금 2천만 원을 확보하고 그녀에게 석사과정 등록을 권했다.
처음에 이 교수는 “받을 자격이 안 된다”고 고사했다. 아이를 양육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는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녀는 당시 “억만 보화를 얻는다 한들 내 새끼를 제대로 못 키우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측의 적극적인 권유와 도움으로 학교측의 제의를 수락했다. 그리고 이화여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학교수인 그녀는 탈북 청소년·여성생활 지원사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녀는 북한에서는 ‘나쁜 성분계급’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았고, 남한에서는 본의 아니게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달고 다녔다. 그러나 그녀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딛고 일어나 인생을 역전시켰다. 이런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국제적으로 인정과 갈채를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이 그녀의 인생역전이 한 편의 영화처럼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녀의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현재 탈북자는 2만여 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 중 성공적인 삶을 이뤄낸 탈북인사들은 이 교수 외에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하다. 실제로 이 교수는 “남한에 와서 사실 특별히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북한에서보다 심적·육체적으로 피곤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새터민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다”면서 “어른사회도 새터민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데 어린아이들은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지금 탈북자라는 이유로 취업과정에서 거절하고, 임금(賃金)에 차별을 두고, 탈북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동급생들이 왕따 시키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마치 북한에서 월남자가족이라고 부당한 차별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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