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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많아 고장난 ‘비만 조절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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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1,368회 작성일 15-06-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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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비만해지게끔 유전자조작을 한 쥐(ob/ob mouse 라고 한다. ob는 비만인 obesity의 약자이고 소문자로 쓴 건 열성유전자임을 의미)를 이용하여 비만연구를 해왔다. ob/ob mouse는 같은 형제 쥐에 비해 체중이 4배나 더 무겁다. 항상 배고파하고 먹는 것을 멈출 줄 몰라 체지방이 끊임없이 쌓인다. 인슐린과 코티솔 수치는 높고 갑상선호르몬 수치가 낮다. 체온이 낮아 신진대사가 떨어져 있고 생식기능은 거의 없으며 결국 당뇨병이나 심장병으로 일찍 죽는다.


과학자들은 ob/ob mouse의 경우 뇌 시상하부에 포만감을 자극하는 인자(호르몬)가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70년대에 미국의 더그 콜맨 박사는 조금 엽기적인 실험을 했다. 비만쥐인 ob/ob mouse와 일반쥐의 혈관을 수술로 접합하여 마치 샴쌍둥이처럼 혈액이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ob/ob mouse의 체중이 줄어든 것이다. 비만쥐에서는 없지만 정상 쥐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혈관을 통해 들어와 비만쥐에서 작동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물질을 ob protein이라 불렀다.

1994년, 드디어 미국 록펠러 대학의 제프리 프리드먼이 이 물질을 규명하고 그리스어로 날씬하다는 뜻인 leptos에서 따와 렙틴(leptin)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방세포에서 만들어져 분비되는 호르몬인 렙틴은 이제 화학적으로 합성하여 만들 수도 있다. ob/ob mouse에는 렙틴 호르몬이 결핍되어 있었고, 이 비만쥐에 렙틴을 주입하자 체중과 체지방이 빠졌다. 렙틴은 체중과 체지방을 조절하는 중요한 호르몬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지방조직도 단순히 에너지 저장창고가 아니라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기관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렙틴은 체중조절의 컨트롤러인 뇌와 체내 지방조직 사이에 긴밀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음식 섭취가 부족해지면 지방조직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면서 지방량이 줄어들고 따라서 렙틴 분비량도 감소한다. 그러면 뇌의 시상하부에서 이 신호를 받아들여 신진대사 속도를 떨어뜨리고 식욕을 더 높인다. 초근목피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식사량이 늘어 체내 지방량이 더 많아지면 렙틴 분비량이 증가하면서 신진대사 속도가 항진되고 식욕이 감소한다. 평소보다 적게 먹어도 배고픈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독감에 걸려 체중이 2~3킬로 빠져도 2주 이내에 원래 체중으로 돌아오고 휴가철에 여행가서 잘 먹고 2~3 킬로가 늘어서 와도 며칠 안에 원래 체중으로 돌아오는 건 바로 렙틴호르몬이 똑똑하게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렙틴호르몬이 발견되었을 때 학자들은 흥분했다. 이제 비만을 정복할 날도 멀지 않았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체중조절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바로 배고픔을 참는 것이다. 렙틴만 주입한다면 배고프지 않고 쉽게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비만인 사람들에게 렙틴이 효과를 발휘한 경우는 5~10%에 불과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뚱뚱한 사람들은 렙틴이 부족해서일꺼라 생각했는데, 왠걸 뚱뚱할수록 렙틴이 더 많았다. 렙틴호르몬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것이므로 당연한 결과다.

이 시점에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몸이 이렇게 정교한 조절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비만'이라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렙틴 분비량이 많아지면 식욕이 없어져야 하고 따라서 체중이 줄어야 한다. 그런데 뚱뚱한 사람들은 렙틴 수치가 정상보다 더 높은데다 렙틴을 주입해도 체중감소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을 "렙틴저항성"이라고 한다. 렙틴호르몬과 수용체의 작동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렙틴호르몬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생존에 꼭 필요한 호르몬이었다. 굶어서 지방량이 줄어들면 어떻게든 지방의 형태로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 굶주림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단돈 1천원만 있어도 먹을 것을 사먹을 수 있는 21세기에 살고 있음에도 렙틴호르몬은 본능적으로 지방을 축적해두는 것이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기아상태에 대비해서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유전자와 환경의 부조화가 비만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우리 몸의 식욕조절에 관여하는 회로는 엉킨 실타래처럼 점점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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