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알몰리의 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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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2,934회 작성일 10-11-05 20:39본문
솔로몬 알몰리를 따로 떼어서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너무나 독특하고 중세 때의 꿈 연구이지만 현대의 꿈 연구와 본질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배울 것이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알몰리가 본 꿈이다.
내가 꿈에 대한 고귀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정말로 값진 일이다. 금을 파내는 것 보다 더 귀한 일로 여긴다. 꿈은 누구나 다 꾼다. 그리고 누구나 다 선명한 꿈을 원한다. 꿈의 뜻을 더 잘 알기 위해서이다. 내가 이 책을 다 써서 발간하게 되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얻기를 바란다.
우리 인간들은 항상 진리를 추구한다. 인생살이에는 좋은 일 궂은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생기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선지자적인 계시를 통해서나 꿈을 통해서 그 뜻을 알려주신다. 실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뜻 모르는 일을 보내주시지 않는다.
알몰리는 다음의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다시 일깨워 준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은 그 종 선지자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 3 : 7)
알몰리는 꿈을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했다.
첫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꿈들이 있다.
둘째,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꿈에 대하여 연구를 제대로 한 후에는, 꿈이 어떤 뜻을 갖고있는지 알게되는 꿈들이 있다.
셋째, 상당히 많은 꿈들이 뜻이 안 맞는 것들도 있다.
넷째, 아무런 뜻이 없는 꿈들도 있다.
꿈이란 이런 요소들을 갖고있는데 이를 모르고 함부로 꿈 해몽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추측만 벌려놓게 되거나 아니면 틀린 꿈 해몽을 해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알몰리는 이사야를 통한 말씀을 빌려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 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나 (사 29 : 13) 이 내용을 보면 당시의 사람들도 인간들의 지식만 믿고 하나님의 가르침은 우습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어서 알몰리는 같은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시 사람들의 믿음상태를 개탄한다.
---그들 중의 지혜자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사 29 : 14)
다음에 알몰리는 시편의 말씀으로 인간들의 자만한 상태를 꼬집는다. 이는 물론 인간들의 잘못된 모든 면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만 여기에 꿈에 대한 인간들의 자세도 포함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저희는 무지무각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시 82 : 5)
알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에 대하여 다음의 세 가지로 생각했다.
첫째, 선지자에게 오는 꿈들, 예를 든다면, 야곱의 꿈(창 28 : 12-16), 다니엘의 꿈(단 10 : 9-21) 그리고 솔로몬의 꿈(왕상 3 : 4-15)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보통사람들에게 오는 꿈들, 즉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들어내기 위하여 쓰시는 사람들에게 오는 꿈들을 의미한다. 예를 든다면, 아비멜렉의 꿈(20 : 3), 바로의 꿈(창 41 : 1-7), 술잔 드는 사람의 꿈이나 빵굽는 사람의 꿈(창 40 : 9-10, 창 40 : 16-17) 등이다.
셋째, 마술사나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하시는 꿈에 대한 경고들, 예를 든다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몽사를 핑계로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렘 23 : 25) 등 많은 예가 있다.(기독교 전통과 꿈에서, 히브리 사람들의 꿈, 왜 꿈을 멀리하게 되었나 참조)
즉 알몰리는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꿈 해몽을 하는 사람들에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하나의 범주에 넣고있다.
현대인들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꿈을 아예 멀리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알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경종을 주신 점을 상기시키고는 있지만 그런 꿈을 하나의 범주에 넣었다는 사실은 꿈 자체를 부인하라는 것이 아니고 꿈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쓰려는 사람들에게 주는 충고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알몰리는 꿈의 종류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꿈 중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한 꿈을 마련하신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생각이 꿈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왕이여 왕이 침상에 나아가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다른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단 2 : 29-30) 이 구절을 잘 음미해 볼 때, 느브갓네살 왕은 평소에 자기 왕국의 앞날과 주변형세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같다. 다니엘은 이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하나님께서 왕에게 장래 일을 알게 하시려고 다니엘을 통해서 왕이 평소에 갖고있던 은밀한 것을 알게 해 주시려고 한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즉 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또한 꿈 해몽도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요한 복음 9장 1-3절에 나오는 뜻과 비슷한 면도 있다. 다니엘 서에서는 다니엘을 쓰시기 위하여 느브갓네살 왕에게 꿈을 꾸게 하였고 다니엘에게는 그 꿈에 대한 해명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에서는
소경된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 9 : 2)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 : 3)라고 예수께서 답변해 주신다.
알몰리는 의로운 사람들의 꿈과 의롭지 않은 사람들의 꿈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의로운 사람들의 꿈은 하늘과 땅에 관한 내용들이고 의롭지 않은 사람들의 꿈은 하늘과 땅 이외의 내용이라고 밝힌다.
예를 든다면, 야곱의 꿈에
사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창 29 : 12) 라고 되어있고,
요셉의 꿈에서는 땅의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 : 7) 이어서 요셉의 꿈에는 하늘의 내용도 나온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창 37 : 9)
반면에 바로의 꿈은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내용을 갖고있다.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창 41 : 1)
여기서 알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면은 평소부터 의인들이 생각하는 바와 의인들이 아닌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과 관련된 일과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일들에 대한 구분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 편에 서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심사인 반면에, 의롭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인과는 상관이 없는 인생살이로부터 나오는 여려 가지 일들에 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게 됨으로 생각이 산만하고 그 생각 속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있지 않게 된다. 따라서 꿈을 꾸는 내용도 의로운 사람들은 하나님이 중심이 된 꿈을 꾸고 또 꿈 해몽도 하나님 편에서 하는 반면에, 의롭지 않은 사람들은 꿈을 꾸더라도 그 내용이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주변잡사가 그 내용이 되며 꿈 해몽도 그 편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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