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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근대미술 17 천황제 파시즘 일본의 기상천외한 헌법 4/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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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138회 작성일 15-05-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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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근대미술 17  
 
요꼬하마에를 통해 보는 일본의 근대화, 유럽 쫒아가기 
 
19세기 중 후반 포경 산업이  유행하는 가운데 미국은 고래가 잘 잡히는 일본 근처 바다에 눈독을 들인다. 페리 제독은 일본에 와서 반 강제적으로 개항(1853년)을 요구하고 일본은 열강들과 불평등 조약을 차례로 맺는다. 한편 메이지 시대(1868 년)가 시작되자  유럽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여 근대화를 서두른다. 자신들은 중국, 조선같은 '미개한' 나라와 어울리지 말고 빨리 유럽의 일원으로 동참해야 한다. '내가 그들에게 맞춤'은 일본인 정신세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음이 급한 메이지 유신 관료들은 교육을 통해 의식을 깨우고, 징병제를 통해 군대를 양성하며, 천황을 신격화시켜 나라를 꾸리는 핵심으로 삼는다. 일본은 불평등 조약이  굴욕스럽기 그지없다. 하루 빨리 강해져서 평등한 조약으로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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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10대에 갑자기 우대된 메이지 천황은 이토 히로부미 등 대신들의 가르침으로 천황의 정체성을 갖추어간다. 이토의 딜레마는 천황과 헌법을 어떻게 병행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이토는 10년 동안 유럽 각국을 다니며 헌법을 연구한다. 프로이센 법학자의 조언을 듣고 사상 초유의 헌법을 만들어낸다. 이름은 헌법인데 내용은 절대 군주제이다. ‘천황은 신성 불가침하며 헌법 위에 있다’가 제 1조에 명시된다.
 
1945년 패전을 하자 맥아더는 쇼와 천왕에게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인간' 선언을 할 것을 요구한다. 천황신을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국민들은 최초로 인간 천황의 목소리를 듣지만 황실 용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다음 날 신문에서 풀이한 것을 읽는다. 천황제 파시즘으로 인해 2차대전을 일으켰는데,  맥아더가 천황제를 존속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동아시아 정세가 불안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공산주의 나라 소련, 국공 내전으로 인한 중국의 공산주의화, 진공상태인 조선 등 미국은 당시의 상황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천황제를 폐지하면 일본이 공산주의로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미국은 냉전 시대에 일본을 교두보로 삼아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으려 했다.
 
메이지 유신 시기에 천황제를 반대하는 파도 있었다. 세이난 전쟁 (1887년)에서 천황 반대파가 진압되고 이들은 재야의 민권 운동가가 된다. 1920년대에 민권운동가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자들의 모습으로 사회에 두각을 드러낸다. 1968년 메이지 백주년에 천황제를 반대하는 민권운동 및 학생데모가 많이 일어나지만 실패한다. 일본인은 전쟁과 패전을 딛고 부유한 나라가 된 쇼와 시대를 살기 좋았던 시절로 기억한다. 메이지 혼령이 계속 떠도는 분위기에서 일본인은 여전히 쇼와 노스탤지어에 젖어있다.
 
 
Picture of Amusement of Foreigners in Yokohama in Bushu, Yoshitora, 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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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이 가능한 요꼬하마에(Yokohama-e, 요꼬하마 그림)를 통해 일본인은 서양 풍습을 접한다. 
 
 
Picture of a Children's Dance Performance at the Gankiro in Yokohama, Yoshikazu 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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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은 요코하마에를 통하여 일본의 유흥문화도 알게된다. 다다미 대신에 의자에 앉아서 가부키 공연을 본다. 마차, 말, 서양 국기, 중국인은 항상 들어간다. 
 
 
 
America Yoshitora,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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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 작가들은 당시 유통되던 미국, 영국의 잡지를 보고 서양인의 풍물을 상상하여 그린다.
 
 
Railway Timetable, Yoshitora, 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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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꼬하마와 도쿄 사이에 철도가 생긴다. 게이샤를 싣고 가는 인력꾼과 기차 시간표가 공존한다.
 
 
Stream Train between Tokyo and Yokohama, Utagawa Hiroshige III, 1875 Museum of Fine Art,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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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제독은 카메라, 과학 기구, 축음기, 열차 모델 등 선물을 가지고 온다. 일본은 처음 보는 신문물을 해체 및 조립 하면서 연구를 계속한다. 이것을 근간으로 해서 도쿄에 근대화가 신속하게 진행된다. 1870년대에 벽돌 건물이 등장하고 기차, 다리, 증기선을 만들어 운행의 주체가 된다.
 
 
Picture of a Steamship: Scenery of Uraga from the Sea, Sadahide, 1863 Smithonian Instit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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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페리제독이 타고 온 흑선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똑같이 흉내내어 증기선을 만든다.
 
 
Most Famous View in Tokyo: Brick Buildings along the Ginza, Hiroshige III, 1874 Museum of Fine Art,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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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도쿄의 긴자 거리이다. 도쿄의 명소 100군데를 비단판화(니시키에, Nishiki-e)로 보여준다. 유신 후 10년이 지나자 서양식 마차 및 벽돌 건물, 중국인 등이 보인다. 1870년대에 전봇대, 전기선, 전보가 생긴다.
 
 
Famous Places in Tokyo: Picture of Azuma Bridge and a Distant View of a Torpedo Explosion, Inoue Tankei, 1888 Museum of Fine Art,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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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철교가 생기고 근대도시의 모습을 갖춘다. 또한 기계를 통해 누에고치 실을 뽑아 실크를 만들어 수출한다.
 
 
Maple Leaves at New Palace, Artist Unknown, 1888 Museum of Fine Art,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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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에 천황 중심의 나라임을 알리려고 황실의 판화들이 나온다. 또한 사진을 공공 장소에 배포하고 걸어둔다. 일본의 천황은 현인 신 개념으로 유럽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A Mirror of Japanese Nobility, Toyohara Chikanobu, 1887, Museum of Fine Art,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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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 니시키에(비단판화, Nishiki-e)가 인기를 끈다. 프로이센 군주의 복장을 한 메이지 천황, 쇼켄 황후, 아들 다이쇼 천황의 모습이다. 금박 병풍에 유럽 왕족 이미지를 차용하여 일본식과 서양식을 합친다.
 
 
Illustration of Singing by the Plum Garden, Toyohara Chikanobu, 1887 Museum of Fine Art,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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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식과 전통식이 합쳐진 니시끼에이다. 합시코드, 바이올린, 악보를 통해 서양의 합창 문화를 소개 및 교육한다. 뒤에는 사꾸라가 핀다. 10년 전에는 미국식 풍물로 소개됐지만, 이제는 서양 복장을 한 일본 여자들이 주체가 되어 악기를 다룬다.
 
 
Illustration of the Ceremony Promulgating the Constitution, Artist Unknown, 1890 Museum of Fine Art,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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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의 헌법 발포식을 그린 니시끼에 이다. 제사장 천황은 헌법을 황실 조상에게 보고하는 제례를 먼저 한다. 그리고 의회에서 마치 신이 묵시록을 내리듯 헌법을 하사한다. 황실 문향 국화가 있다.
 
 
lllustration of a Military Review, Toyohara Chikanobu,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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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이 군사 훈련을 시킨다. 약육강식 및 부국강병은 메이지 시대의 사회의 흐름이었다. 19세기 중 후반에 사회진화론 Social Darwinism 및 우생학이 유행한다.
 
 
Rokumeikan, ball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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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의 사교 파티 장소인 쿠메이칸을 세운다. 식료품 가게에서 시작하여 무기상으로 돈을 번 재벌 오쿠라 기하치로Okura Kihachiro가 건축 하청을 맡는다.
 
 
Ladies Charity Party at the Rokumeikan, Hsahimoto Chikanobu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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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여가 활동도 한다. 자선 박람회가 로쿠메이칸에서 열린다.
 
 
Okura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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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라 호텔 및 오페라 발레 공연 극장이 동경에 들어선다. 오쿠라는 정경유착으로 건물 수주를 독점한다. 그는 문화재 반출을 막기 위하여 1917년에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오쿠라 집고관을 만든다.
 
 
경복궁 자선당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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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가 조선의 통감을 지낼 때 절친인 오쿠라도 따라온다. 조선에서 광산에 손을 대어 돈을 쓸어 모으고, 조선 물산 공진회에 관여하며 조선의 유물을 일본에 가져간다. 경복궁의 자선당을 통채로 뜯어서 가져가 오쿠라 호텔 옆에 세운다. 토대만 남은 자선당을 2011년에 한국 정부가 복원한다.
 
 
푸쿠자와 유키치 Fukuzawa Yukichi (1835-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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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 겸 언론가 푸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 시대를 이끄는 사상적인 근간을 다진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을 본받자는 '탈아입구'를 주장한다. 재야에서 책을 쓰면서 일본인을 교육시킨다. 개인의 독립적 독창적 생각이 선행되어야 탈아할 수 있다고 한다. 천황이 들어가는 헌법을 반대하여 이또와 절연한다.
 
 
Minister Otori Escorting The Korean Regents as They Enter The Palace at Keijo, Toyohara Chikanobu,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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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전쟁 당시에 일본군이 흥선 대원군을 보호하는 장면을 심볼로 그린다.
 
 
Illustration of Grand Festival at Yasukuni Shrine, Shinohara Kiyooki,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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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에 도쿄의 모습을 바꾸려는 의도 하에 야스쿠니 신사를 만든다. 나라를 위해 죽으면 천황이 묻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군신이 되고 혼을 불러서 제사를 성대히 지내준다. 매년 8 월 15 일 패전일 밤 10시에 전사자 가족들이 다 모여서 무릎을 끓고 제례가 열린다. 한편 그 앞에서 극우파, 민권운동가, 한국인, 대만인 등이 모여서 데모를 한다.
 
 
간또(관동)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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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년 간또(관동) 대지진이 일어난다. 일본 전체 인구130만 중10만이 죽고, 70-80만이 집을 잃는다. 연기 및 화재로 인한 피해로 인해 동경은 쑥대밭이 된다. 몇 시간 후 조선인들이 방화, 강간 및 우물에 독을 푼다는 소문이 돈다. (당시 일제 치하에서 수탈로 굶주리던  조선 농민은 일본에 가면 풀칠한다고 하여 많은 수가 내지에 들어와 있었다.)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을 죽이러 다닌다. 곧 이어 마치 이 소문이 사실임을 암시하듯이 계엄령이 선포된다. 군인이 들어와서 조선인을 잡아 수용소로 몰아 넣는다. 한 밤 중에 은밀히  5-6명 씩 불려 나간 조선인은 조선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도꼬의 스미다강은 조선인 소각장소였다고 한다. 또한 일본 정부에게 잘 보이려는 조선인이 앞장을 서서 조선인을 잡아들인다. 일본 정치 깡패 박춘금, 이풍기 등은  조선인을 강제 노역시키는데 앞장을 선다.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침묵에 묻혀있다가 1980년대에 2명의 제일 교포 학자의 연구로 밝혀진다. 당시의 자경단은 추모 모임 및 추모비를 만들고 유골을 찾아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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