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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현대미술3 1950년대, 미군정과 일정부가 호응하는 구타이미술 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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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2,748회 작성일 15-10-12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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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현대3    1950년대, 미군정과 일정부가 호응하는 구타이 미술
                               political activism and art
 
 
러시아 혁명(1917년)의 영향으로 1920년대에 동아시아는 사회주의 사상이 퍼진다. 이때 일본 및 한국도 잠시 사상의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30-40년대 일본은 쇼와 천황 중심의 억압적 분위기에서 파시즘으로 치닫는다. 1945년에 패전을 한 일본은 미군정(Occupational Period 1945-52)시기를 가진다. 일본인은 이 시기를 식민(colonization)으로 받아들인다.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는 천황에게 '나는 신이 아니다' 라는 인간 선언(human declaration)을 하게 한다. 미국은 일본 곳곳에 미군기지를 만들고, 관습을 통제하여 천황숭배를 금지시킨다.
 
1946년  천황, 기시 노부스케(아베 총리 외할아버지) 등 일급 전범들은 재판에 기소되지만 맥아더와 천황의 협상으로 풀려난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에 물드는 동아시아의 상황이 불안했다. 중국이 내전으로 공산화되었고, 한반도도 한국 전쟁으로 같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일본 역시 공산화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천황제를 존속시키면서 협조적인 정치인들을 석방시킨다. 상징적 존재로 강등된 천황을 여전히 따르는 우익 정치인들은 사회주의를 핍박했던 자들이라 공산주의에 물들 염려는 없었다. 2차대전을 종료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52년)이 열렸지만 대만 문제, 위안부, 강제노동자 등이 미해결로 남아 있다.
 
만주국에서 경제 5개년 계획을 성공시킨 노부스케Kishi Nobusuke(1896-1987)는 전쟁 물자 및 강제 노동,징집을 지휘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1급 전범에게 풀려난 후 만주 지인들을 모아서 자민당의 기틀을 마련한다. 1957년에 총리가 되자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다'는 헌법 No 9을 개정하려고 노력한다. (외손주 아베 총리가 집안의 숙원을 이룬다.) 1960년대에 미일 안보조약을 맺자 반대 데모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노부스케는 총리에서 물러난다. 일본은 50년대 초반 경제적 발돋움을 하며 한국전으로 재기를 한다.
 
 
오노요코 Yoko Ono(1933-) 야오이쿠사마 Yayoi Kusama(1929-)  시게코쿠사마 Shigeko Kubota (1937-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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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일본 미술에서 중요한 작가들이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라는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억압적인 사회를 피해 미국에 와서 플럭서스 Fluxus 운동에 참여한다. 미국은 전후 미술(Post War Art)의 축으로 부상된다.  2015년 모마에서 열린 오노요코 회고전에 Cut Piece 퍼포먼스 사진이 전시되었다. 누드모델을 고용해 온 몸에 폴카 닽을 찍는 퍼포먼스로 유명했던 야오이 쿠사이는 정신병원에서 살면서 인터뷰 때만 잠깐 차리고 나온다. 백남준의 부인 시게코 쿠보타도 당시에 활동했다.
 
 
 
르포르탸쥬 페인터 Reportage Painters

1950년대 폐허가 된 일본 예술계에 2가지 흐름이 나타난다. 르포르탸쥬 페인터와 구타이 그룹이다. 미군정 하에 자유 사상도 함께 들어가 사회 개혁주의 운동이 나타난다. 르포르탸쥬 페인터는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을 그린다. 반면 구타이 그룹은 정치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미술을 추구하며 global art에 발을 맞춘다.
 
미군정과 일정부는 일본의 사회적 이슈를 꼬집지 않고 아트 안에 머무는 구타이 그룹을 후원한다. 50-60년대 미국도 사회적 의식과는 거리가 먼 추상표현주의 및 미니멀리즘을 대대적으로 후원한다.  하지만 월남전 및 반전 운동이 일어나자 미국의 추상미술은 사회의 비판을 받는다.
 
 
르포르탸쥬 페인터, 이케다 타슈오 Reportage Painters, Ikeda Tatsuo American Soldier, Child, Barracks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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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도쿄의 르포르탸쥬 작가들은 사회 현상에 관심을 보인다. 미군기지 앞에 유락시설이 발달된다. 미군과 데이트하는 서구복장의 일본인 직업 여성들이 눈에 거슬린다.
 
 
이케다 타슈오 Ikeda Tatsuo, 10,000 Count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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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어부가 참치잡이를 하는 섬에 미국이 핵폭탄을 실험한다. 참치선이 피복을 당하지만  미군정과 일정부는 묵인한다.
 
 
나까무라 히로시 Nakamura Hiroshi, Sunagawa #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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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시기에 일본 곳곳에 군사 기지가 무수히 생긴다. 스나가와의 시민들의 땅을 몰수하니 데모가 일어난다.
 
 
나까무라 히로시 Nakamura Hiroshi, Gunned Down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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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기지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던 일본 여성이 미군의 총에 죽었다. 그는 기소되지 않는다. 정치권이 이 사건을 묵인하자 시민들의 데모가 일어난다. 시민들의 불만이 억눌려 있다가 60년대 미일 안보조약 때에 터진다. 한국의 미군기지 주변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데자뷰(Dejavu)현상이다.
 
 
나까무라 히로시 Nakamura Hiroshi, The Base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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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과 일본은 50년대 사회적 사건을 주제로 삼는 레포타쥬 화가들의 작품이 불편하다. 화가들은 헌법상 전쟁을 못 하는 나라 일본에 왜 이리 군사기지가 많은지를 질문한다.
 
 
Pablo Picasso (1881-1973) Gernica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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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탸쥬 페인터의 그림풍은 초현실주의를 따라간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비슷하다.
 
 
구타이 그룹 Gutai
 
카즈오 시라카 Kazuo Shirago, Challenging Mud 1955, the First Gutai Exhibition,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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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오사카에서 지로 요시하라(Jiro Yoshhara)는 구타이 메니페스토(Gutai Manifesto)를 발표한다. 기존의 일본 미술을 무덤에 묻고 새로운 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구타이 그룹은 파괴( Decay, destruction)에서 사물의 핵심이 있으며, 퍼포먼스를 통해 자유, 해방 (Freedom과 liberation)을 표현한다. 결과물이 없으며 과정에 촛점을 맞춘다. 구타이는 세계무대에 대한 열망(global art)이 있어서 작품 사진, 저널 등을 외국에 보낸다. 1972년에 창시자가 죽자 이 운동은 끝난다.
 
구타이는 20세기 초 유럽의 아방가르드 다다 운동에서 계보를 찾는다. 마르셀 뒤샹은 계산, 계획 되지 않은 순간의 chance 를 이용한 우연의 결과를 작품으로 가져온다. 이태리의 미래파(1901-44)도 기존 질서를 없애고 탱크, 폭탄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결국 이태리는 파시즘이 등장 했다. 구타이 그룹은 전쟁 후 10년도 안되어 전쟁 폐허 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아쯔코 다나카 Atsuko Tanaka, Electric Dress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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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이는 기존에 저항하는 아방가르드 운동이다. 기모노 대신 전구와 전선으로 만든 전기 옷을 보이는 퍼포먼스이다.
 
 
잭슨 폴락,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Jackson Pollock (19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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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이 예술가는 미국 미술을 주도하던 잭슨 폴락의 추상표현주의를 바라본다. 그는 캔버스를 최초로 바닥에 내려놓는다.
 
 
알베르토 부리 Alberto Burri: Composition, 1953 The Trauma of Painting, 2015-16 Guggenheim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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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트라우마를 겪는 유럽 화가들도 전위적인 작품을 한다. 의사였던 알베르토 부리는 전쟁 포로로 텍사스에서 수감된 후에 화가로 전환한다. 극복의 방법으로 알베르토 부리는 벌레를 캔버스천에 꿰맨다.
 
 
이브 클라인Yves Klein(1928-1962) Gestural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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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이브 클라인은 누보 리얼리즘(Nouveau realisme)을 창시한다. 두치오 폰타나Ducio Fontana 는 캔버스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며 그림과의 경계를 허문다.
 
 
Japan Art after 1945: Scream Against the Sky 1994, Guggenheim Museum,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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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일본과 정치적으로는 껄끄럽지만 친구라는 제스처를 보인다. 1963년 구겐하임 현대미술 전시에 구타이 작가들을 초대하고, 1990년대에 일본의 근현대 미술을 정리하는 큰 전시를 열어준다. 미국내 일본 전시를 후원하는 학술단체 푼자 겐콘(DoNIA-Genkon)이2003년에 뉴욕에 생긴다. 연계 컨퍼런스를 열어 전시를 뒷받침한다.
 
 
Tokyo 1955-1970: A New Avant-Garde, 2012-13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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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모마에서 일본 근현대 미술을 소개했다. 카탈로그를 발행하여 사료를 형성한다. 일본은 역사적 연대기를 잘 정리하며 특히 미국에서 활발하게 연구가 이루어진다.
 
 
Gutai: Splendid Playground, 2013 Guggenheim Museum, New York, (Saburo Murakami, Location of Paper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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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이 그룹의 전시가 2013년에 구겐하임에서 열렸다. 종이를 뚫고 지나가는 퍼포먼스이다. 미국은 일본과 문화 교류 정책을 꾸준히 벌인다. 이우환 회고전은 일본의 근현대 미술을 정리하는 연장선에서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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