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현대미술5 1960-70년대, 단색화와 모노화: 이우환10/23/15 > 김미연 아트노트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김미연 아트노트


 

동아시아현대미술5 1960-70년대, 단색화와 모노화: 이우환10/23/15

페이지 정보

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158회 작성일 15-10-30 09:51

본문

동아시아현대미술5 1960-70년대, 단색화와 모노화
                                              Dansack-hwa and Mono-haw
 
 
한국의 단색화
 
도쿄 근대 미술관, 한국현대회화전, 이우환(1936-), 풍경 ll 1968
18 아시아현대 5 001.JPG
 
한일은 65년 국교 수립까지 20년 동안 관계가 단절된다.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를 다니던 중 56년에 일본에 밀항을 한다. 국교 단절 시기(45-65년)에 이우환은 일본 현대미술을 한국에 전한다. 한일 협정 후 일본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한 위한 문화교류가 진행된다. 이 때 이우환은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한다. 1968년 도쿄 근대 미술관에서 한국현대회화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를 계기로 이우환과 박서보는 친분이 생기고 향후 한국 미술을 이끌어 간다. 김수근, 김종학, 남관 등이 이 전시에 참가한다.
 
 
1975 년 동경화랑전시 <White Korea, five artists five Hinsek>
 
국교 수립 10주년 기념으로 1975 년에 동경화랑전시가 열린다. 한인 화가 5인전 전시 <White Korea, five artists five Hinsek>에 박서보, 이동엽, 서승원, 허황, 권영우가 참여한다. 이우환은 이 전시의 카탈로그를 만든다. 일본 비평가 나까하라 유스케 Nakahara Yusuke(1931-2011)는 선배 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언급한 백색의 미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단색'을 사용하는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는 작가들이라고 평을 한다. 일제 강점기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한국의 백자, 소반 등 공예품을 사랑하여 한국 경성에 조선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는 조선의 백자에서 서린 흰색은 쓸쓸하고 비애비가 있다고 언급했다.
 
18 아시아현대 5 004.JPG 
75년 동경화랑전시 전에는 한국에서 백색에 대한 미학적 논의는 없었다. 동경화랑전시를 기점으로 '단색화'라는 그림 틀이 생기고 한국적 미니멀리즘, 백색 모노크롬 미술  등 여러 용어가 함께 쓰인다. 70년대 화가들은 무작위, 범자연주의, 비 물질성들로 성격이 규정된다. 단색화 화가들은 작품이 곧 참선과 명상의 과정이다 라고 한다. 70년대에 박정희는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을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단색화가 잘 받아들여 졌고, 아버지 때 붐이었던 미술사조가 딸 세대에 와서 다시 한번 일어난다.
 
 
일본 모노화 Mono-ha (물파, School of Things)
 
50년대에 한국은 기득권 미술을 반대하는 엥포르멜이 있었고, 일본의 반예술(Japanese Anti-Art)로서는  구타이Gutai, 네오 다다Nep Dada, 규수 그룹Kyushu Group이 있었다. 구타이는 오사까 중심의 간사이 지역, 네오다다는 도쿄 중심의 간토 지역, 규수파는 규수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 60년대 중반에 반미술의 계보를 모노화가 이어간다. 70년대 미국의 개념미술처럼 하나의 idea, concept 을 내놓는다.
 
 
Sekine Nobuo(1942-) 세키네 노부오, 위상(대지),1968
18 아시아현대 5 015.JPG 
세키네 노부오는 1968년에 위상을 발표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구타이는 action painting을 하지만, 물파는 물건을 작품으로 가져온다.
 
 
Suga Kishio(1944-) 무한상황 1970
18 아시아현대 5 016.JPG 

수가 키시오는 미술관 창문에 각목을 괴어논다. 각목으로 밖과 안에 공간을 만들어 장소와 공간성의 관계를 보여준다. 모노화 작가들은 그림을 못 그리니 물건을 가져온다는 비난도 받는다.
 
 
이우환, 관계항, 파리비엔날레 (1969) 1971
18 아시아현대 5 002.JPG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지만 일학년 때 일본에 밀항하여 니훙대 철학과를 다닌다. 69년에 세키네 노부오의 작품 위상에 대한 평론을 씀으로써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또한71년에 파리 비엔날레에서 작품 <관계항>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된다. 철, 막대, 유리를 갤러리 공간에 놓았다. 돌과 유리와 관계가 생기고, 돌과 유리를 보는 관객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자아가 공간을 자각해야  그 공간이 의미가 있다. 당대 철학가 니시타 기타로 Nishida Kitaro의 현상학 Phenomenology 담론을 평론에 응용한다. 세키네 노부에와 책을 출판하여 모노화를 정의한다.
 
이우환은 한국인으로 차별도 받지만 73 년에 동경화랑의 야마모또 다카시를 만나고 타마미대의 교수가 됨으로서 극복한다. 독일 파리 뉴욕 한국 등지에서 상업 화랑과 손잡고 큰 미술 전시나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매니저도 없이 일하는 대단한 전략가이다.
 
 
니시타 기타로 Nishida Kitaro(1870-1945)
18 아시아현대 5 019.JPG 
 
니시타 기타로는 파시즘으로 치닫던 쇼와 시대의 유명한 교토학파 철학자이다. 가족의 죽음을 겪으며 불행한 삶을 산 그는 철학의 동기는 비애의식이라고 했다. 서양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동시대 철학을 만들어 서양을 쫓아가는 일본의 콤플렉스를 극복한다.
 
시간과 공간은 과거의 제약이 아니다. 자아가 사물을 만나 새로운 공간 및 관계가 생긴다. 미리 규정된 경험이 아닌 순수한 경험에서 주체와 객체가 사라져 무념 무상으로 넘어간다. 순수와 무의 경험은 선불교의 참선과 비슷하다. 개인과 국가가 일체가 되는 쇼와 시대의 파시즘 이론에 니시타 기타로는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전후 일본에서 50년대 중반까지는 그의 이름은  금기였지만 50년대 후반에 Nationalism 이 강조되자 다시 등장한다. 니시타 기타로 철학은 자아에서 출발하며 타자를 염두에 두지 않기에 윤리의식의 결여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우환은 이 시기에 일본으로 밀항하여 그의 이론을 배워서 모노화 이론에 흡수한다.
 
 
Lee Ufan Museum, Naoshima, Japan (2010-)
18 아시아현대 5 017.JPG 

일본 나오시마 섬에 이우환 미술관이 세워진다. 야오이 쿠사마의 조각이 해변에 세워져 있는 니오시마는 미술관이 모여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미쯔비시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이 있던 곳이다. 70년대 초에 이우환의 글이 국내에 소개되어 한국 미술계에 미술 이론 붐이 불며 공간, 홍익미술 등 잡지가 등장한다. 이우환은 이병철, 이건희와 인맥을 가지며 호암 미술관의 자문 역할을 한다. 삼성에서 이우환을 뛰워준다. 1994년 구겐하임의 큐레이터 알렉산더 몬로가 기획한 Japanese Art after 1945에 그가 포함된다. 2011년 삼성의 후원과 알렉산더 몬로의 기힉으로 구겐하임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린다.
 
 
이우환 베르사이유 전시
18 아시아현대 5 014.JPG 

베르사이유 박물관 카트린느 관장은 '그의 작품은 우리를 조용하고 매혹적인 그의 시 속으로 이끈다'라고 평을 했다. 아해 유병헌도 불란서에 돈을 바쳐가며 여기에서 전시를 하는데, 카트린느 관장은 두 사람에 대해 비슷한 평을 한다.
 
 
Barnett Newman The Stations of the Cross 1958-66
photo.JPG
 
플럭서스, 개념 미술, 설치 미술이 나오면서 90년도는 그림에 대한 위기 의식으로 회화가 죽었다(Death of Painting)는 말도 나온다. 바넷은 나와 그림 둘만의 공간안에서 그림을 경험하라고  말한다. 이우환은 바넷 뉴만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Agnes Martin (1912-2004) Morning 1965

18 아시아현대 5 003.JPG
 
단색화와 같은 모노크롬 작업을 하는 서양 화가들은 많다. 포스트 미니멀리즘 작가인 헬렌 프랑켄스탤라, 로버트 마더웰, 아그네스 마틴, 마크 로스코 등이 있다.
 
2015년 잡지 뉴욕커에 글이 실린다. 서양의 작가들은 단색화가 미국의 추상화와 친숙하며 비슷하다고 느낀다. 일본의 전후 미술이 각광을 받고 있으므로 단색화도 최근에 부상이 된다. 2014년 Jewish Museum 에서 현 회화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열렸다. 최근 몇년 동안 좀비 포말리즘 Zombi Formalism이 나타나는데 이는 형식적 추상주의를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추상주의abstract painting는 이미 50-60년대에 흘러간 사조임에도 불구하고 좀비처럼 또 부활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좀비들이 다 어디에 있는가?  80-89년 생의 어린 작가들이 추상화, post minimalism의 그림을 많이 그리기 시작한다. 이들의 그림을 싼 값에 사놓은 젊은 큐레이터들이 트윗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를 하고 딜러가 되어 돈을 번다. 젊은 작가들을 실리콘 밸리의 젊은 부자들과 연계를 시켜서 bubble 을 만든다. 이런 이유로 최근 몇년 동안 형식주의 추상화가 갑자기 아트 마켙에 붐을 일으키고 좀비 포말리즘이 미국 미술에서 화제가 된다. 이 맥락 안에 단색화가 놓여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