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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현대미술7 일본 60년대 전위예술: 네오다다 운동 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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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544회 작성일 15-11-1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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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현대미술7 일본의 60년대 전위예술: 네오다다 운동
 
일본은 패전 후 미군정 치하에서 미일안보조약(1951년)을 맺었다. 10만 미군의 주둔과 일본의 전쟁 불가를 골자로 하는 내용이다. 당시 공산주의가 들어선 중국에 이어(1953년), 육이오를 겪는 한반도로 인해 아시아 정세는 불안했다. 그러므로 미국은 일본을 마지노선으로 여겼다. 군정 치하의 일본 총리는 쇼와의 괴물(devil of Showa)이라고 불렸던 기시 노부스케(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다. 그는 전범재판에서 풀려난 후 친미 정치인으로 돌변하여 총리를 두번이나 지낸다.(1958-1980)
 
1960년대가 되자 10년전에 맺은 미일 안보조약을 갱신하려 하자 일본은 전국적으로 데모가 들끓는다. '전쟁도 못하는 나라에서 과도한 국방비, 자위대, 10만 미군이 왜 필요한가' 라며 시민과 학생들은 역사상 최대 규모로 시위를 벌인다. 전국의 학생들이 단결하여 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전학련(전 일본 학생 자치총연합, Tengakuren)을 형성된다. 20-30년대 과거의 공산당(Japanese Community Party)들이 부활하여 전학련과 힘을 합하여 데모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약은 비밀리에 다시 갱신된다(1961년), 총리 기시 노부스케 (Kishi Nobusuke(1896-1987))는 책임을 지고 사임하지만 같은 자민당 소속인 친동생 Sato Elsaku가 총리가 되고 친미정권은 여전히 계속된다.
 
60년대 일본은 사회적 혼란기였지만, 경제적 부를 되찾고 문화적으로 풍부해진다. 젊은 세대 미대생들은 무력감 자괴감에 빠지며, 미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기존 미술인 모노화, 모노크롬을 비판하며, 전위적 예술가들이 부상된다. 규수파(Group Kyushu) Group Q(1957년)는 엥포르멜 전시를 거리로 들고 나온다. Action painting을 하지만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1960년에 네오다다운동(Neo-Dada Organizer)이 일어난다. 또한 New Wave Cinema 라는 실험적인 영화가 나타난다. 이들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가진다. 전위 사진가 및 무용가도 나타난다.
 
 
Kudo Tetsume, Philosophy of Imporence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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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에 데모가 실패하자 Philosophy of Imporence 라는 철학을 가지고 설치 작업을 한다. 남성의 거세된 성기를 상징하는 오브제이다. 청년들이 느끼는 무능, 무기력을 나타낸다.
 
Asanuma Inejiro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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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인사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NHK 방송국 연단에 서서 공개 연설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17세 우익 청년이 무대로 올라와 그를 찔러 죽이고, 그 장면이 그대로 방영된다. 일파만파로 이 사건이 파장을 일으키자, 당시 상영중이었던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New Wave Cinema 풍의 영화(Oshima Nagisa감독)가 3 일만에 막을 내린다. 암살 장면이 사진 작품으로 재현된다.
 
또한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는 New Wave Cinema가 나타난다. 미군기지의 밑바닥 삶을 그린 영화 <Pigs and Battleship>(Imamura Shohei 감독, 1961), 파시즘으로 가는 국가에서 쾌락의 끝을 달리는 사람들을 그린 <Realm of the Senses> (Oshima Nagisa감독, 1977)가 나온다.
 
 
요시무라 마사노부 Yoshimura Masanobu, Neo-Dada Organizer, Tokyo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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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기를 누리던 기존 예술인 엥포르멜을 도전하는 '네오다다 오르가나이저' 운동이 생겨난다. 운동의 창시자가 '안보조약 철폐(Down with Anpo), 엥포르멜 스탑(Down with Anfo)'는 구호를 들고 긴자 거리에 나와 전시를 한다. 1951년에 미국에서 네오다다운동이 시작되자 일본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탄다.
 
 
Dada, An Anthology Robert Motherwell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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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로버트 마더웰은 다다의 계보에 대한 책을 낸다. 1914년 1차 대전 중 유럽의 예술가들은 스위스로도망가서 카베레 볼테르에서 모여서 다다 운동을 시작한다. 전쟁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 기존 가치를 조롱하는 넌센스 퍼포먼스를 벌인다. 2차 대전 후 일어난 다다와 비슷한 전위예술을 Neo Dada라고 한다. 투자의 가치가 있는 미적인 앵포르맬같은 작품을 비판한다. Commodity(소비 제품)가 돼버린 예술을 안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Robert Rauschenberg, Monogram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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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다다 운동이다. 일상의 사물 및 쓰레기(오브제)와 그림이 복합된 combine painting이 등장한다. 60년대 중 후반 일본의 네오다다오르가나이저들은 정크(junk)를 가져다 작품을 하며 세계적 추세와 발맞춘다.
 
 
아르망 Arman, Infinity of Typewriters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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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를 중시하는 네오다다 흐름은 유럽에서도 일어난다. 누보 리얼리즘 운동이 생긴다. 아르맹은 버려진 타자기를 모아서 설치한다. 누보 리얼리즘 작가들은 정크를 사용하지만 여전히 예술작품으로 남는데 반해, 일본의 네오다다 오르가나이져들은 행위에 촛점을 둔다.
 
 Imitation Art, Ushio Shionohara Coca Cola Plan 1964         Jasper Johns,Target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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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오 시노하라는 자스퍼 존스의 네오다다 작품을 훙내내어 이미테이션 아트(Imitation Art)라는  이름을 붙인다. 네오 다다 작가들은 신격화되는 모더니즘 작가들의 originality에 반기를 들고, 오브제를 가져오고 넌센스 행위를 한다. 네오다다운동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
 
 
Tomatsu Shomel, Nagasaki Series, Woman with Scars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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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시리즈이다. 전쟁이 끝난지 15년이 지나도 전쟁의 흔적이 인간의 몸에 보인다. 사는 것은 풍요롭지만  원폭을 맞은 여성 및 상이 군인들이 거리에서 눈에 뛴다. 미일 안보정책으로 인해 일본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미국화가 됨에 불만을 가진다.
 
 
Moriyama Daida, Gambling in the Dressing Room,Tokyo,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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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사진가 모리야마 다이다는 미군 가지 근처의 창녀촌을 간다. 일본이 잘사는 것 같지만 그늘이 있음을 사진으로 드러낸다.
 
 
타로 오카모토 Taro Okamoto, The Law of the Jungle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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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예술가들의 정신적 지주인 타로 오카모토는 미적으로 아름답지 않고, 기술적으로 세련되지 않고, 결코 안주하지 않은 예술을 하라고 한다. 원폭과 폭력이 인류사에 남기는 상처를 경고하는 그림이다. 르포르탸쥬 페인터처럼 초현실주의 풍이다.
 
 
기큐하타 모쿠마 Kikuhata Mokuma (1935-) Slave Genealogy 1961/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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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수파 작가 토마토 소메이는 전후 일본사는 '미국화'과정이라고 했다. 젊은 작가들은 미국화를 벗어나서 우리 것을 하자고 주장한다. 신사에 가면 볼 수 있는 큰 나무기둥이 쓰러져 있다. 5 엔짜리 동전을 붙였고 바닥에도 떨어져있다. 일본의 전통 신도이즘은 천황을 가장 중요시한다.
 
 
Ushio Shiono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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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복싱을 통해 action painting 한다.' 기존의 엥포르맬을 패러디하는 퍼포먼스를 뉴욕에서 벌인다.
 
 
Hi-Red Center(1963-1964): Takamatsu Jiro, Akasegawa Genpei, Nakanishi Natsuy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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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신문사는 요미우리 앙당팡당전 The Yimiuri Independant Exhibition(1949-1963)을 매년 열어서 가난한 전위예술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해왔다. 구타이, 엥포르멜 화가도 이런 전시를 통해 이름을 알려왔다. 하지만 요미우리 신문사는 1962년에 관람객이 보기에 불편한 작품은 전시를 거부한다는 방침을 세운다. 1964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의 언론은 행복한 작품만을 보이기로 결정한다.
 
 
Hi-Red Center, 야마모테 라인 이벤트 Yamanote Line Event 1962 Nakanishi Natsuyuki, Compact Object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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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당팡당전이 종말을 고하자 세 명의 작가들은 Hi-Red Center를 만든다. 일련의 퍼포먼스를 하고 다니며 일본 사회에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킨다. Hi-Red Center 작가들은 제일 바쁜 야마모토 지하철선 역 앞에서 퍼포먼스를 한다. 얼굴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자신들이 만든 괴상하게 생긴 오브제를 핥거나 지하철 안에 걸기도 한다. 못쓰는 junk 를 녹여서 달걀 덩어리처럼 만든 오브제이다. 네오다다적 제스쳐이다.
 
 
Hi-Red Center, Clean up of the Metropolitan Area,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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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맞아 온 도시를 재정비한다. Hi-Red Center 작가들은 '외국에 잘 보이고 싶으니 우리가 청소해줄께' 라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하고 다닌다. 흰 가운을 입고 걸레로 온 긴자 거리를 깨끗이 닦는다.
 
 
Hi-Red Center, Shelter Plan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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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에 미국의 플럭서스 작가들도 영감을 받아 뉴욕에서 똑같이 한다. 백남준 작가를 초청하여 그들의 신체 사이즈를 잰다. 인간의 몸을 재는 것은 전통적인 사회적 검열 체제로 내려 왔다. 식민주의자들이 원주민의 몸 사이즈를 재서 연구 대상으로 삼았듯이 이제는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Hi-Red Center, Akasegawa Genpei, Suitcase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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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 역사적 스캔들을 일으켜 재판 <One Thousand Yen note trial>이 시작된다. 하이 레드 센터 작가는 위조지폐로 물건을 싸고 전시 초청장도 화폐로 만들어 돌린다. 경찰에 체포되고 물건은 다 압수당한다.  재판관은 이것들이 예술 작품이라는 작가의 주장을 이해를 못한다. 전문가를 초청하여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쟁점이 커다랗게 떠오르지만, 결국  1970년에 패소로 끝난다.
 
 
Hi-Red Center, Akasegawa Genpei, Greater Japan Zero-Yen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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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 패소하자 화가 난 작가는 0엥 짜리 지폐를 만든다. 이것은 작가가 만든 예술 작품이니 100엥에 판다고 하자 사람들이 산다. 이것이 더 위험한 행동인데 왜 체포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예술적 제스처로 당국에 복수한다.
 
 
Obsessional Art : Kusama Yayoi Accumulation, 19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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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에 쿠사마는 뉴욕에서 Obsessional Art (집착예술)를 시작한다. 남성 중심의 일본이 싫어 뉴욕에 와서 활동한다.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오브제를 사용하여 설치 작업 및 행위예술을 한다.
 
Obsessional Art : Ono Kaz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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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무용수들인 Ankoku Butoh와  Ono Kazuo는 파격적인 무용 예술인 Dance of Utter Darkness 을 시작한다. 백조의 호수같은 서양 무용에 반대하며, 넌센스적 동성애적 무용을 한다. 또한 가부끼, 노 등 전통공연에 반기를 들고 서민들이 즐기는 춤, 희극적 작품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논에 해를 끼치며 물리면 살이 썩는다는 쪽제비가 밤에 등장한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민속 예술 folk art를 주장하며 조선의 백자의 미를 주장했던 아나기 무네야기(일제 강점기)가 재조명을 받게 된다.
 
 
Obsessional Art : Miki Tomie, Ears 1965
18.6 동아현대 027.JPG 
귀만 보여준다. 집착예술은 그로테스크하고 선정적인 면이 있다.
 
 
Obsessional Art : Hosoe Eikoh Kamaitachi,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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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호소에 에이코도 일본 민중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 어린 시절 들었던 귀신 얘기를 무용으로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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