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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현대미술12 한국 80년대 민중미술 12/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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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2,619회 작성일 16-01-0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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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현대미술12          80년대 한국 민중미술 12/17/15

유럽과 미국에서 1960년대미니멀리즘과 플럭서스, 70년대는 개념 미술이 나타난다. 일본은 세계적 추이와 맞춰가며 한국은 10년 정도 늦게 따라간다. 하지만 80년대에 한국에서 생겨난 민중 미술은 단색화, 모노크롬이 주류인 70년대 화단에 반기를 들며 독특한 움직임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민중 미술은 70년대에 나타난 구상화 및 극사실주의 형식을 따르며 힘든 민중의 삶을 다룬다. 남북 분단문제, 정치적 상황 등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 시기 한국은 경제는 성장하지만 민주주의는 퇴보하여 시민 의식이 성장할 시점을 놓친다. 현재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이 태동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강남 개발에 따른 부동산 투기 및 중산층이 부각된다. 70-80년 대 시류를 타고 재산 관리를 잘 했으면 수도권에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었다. 한편 막판에 투자에 뛰어들어 실패한 자, 달동네 철거민 등이 나타난다.

문학이 사회 참여를 한다.백낙청이 시작한 잡지 <창작과 비평>은 80년대 재야 운동권의 주축이 되며 폐간된다. 1980년에 <문학과 지성사>잡지에 조세희 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실린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천국을 매일 생각한다'는 철거민의 이야기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에 공감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곧 문학지들은 폐간된다.

계간 미술(1976-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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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들은 현실에 참여하여 민중 문학을 하기도 하지만 미술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80년대에 사회적 현실을 외면하는 한국 미술에 대한 비판 및 반성이 일고 한국성이 부각된다.1983년 계간 미술에 한국미술의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특집이 실린다. 서구미술을 쫒는 풍조가 단색화와 모노크롬을 하는 일본 유학파에서 시작됐음을 비난한다. 일본 평론가가 붙인 문인화적 백색 미술이 한국적이라고 외치던 시대였고 정부에서 부흥하는 민족문화도 있었다. 하지만 민중미술가들은  민화, 탈춤, 굿 등 민초들의 문화를 진정한 한국적인 미술로 부각시킨다. 한국성이 양분화가 된다.

이석주, 벽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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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등 민간 주도의 미술제가 탄생한다. 국전과는 다른 새로운 미술이 소개 전시된다. 황량한 도시 풍경을 통해 사회의 단상을 보이는 <벽>이 대상을 받는다. 단색화나 모노크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더불어 극사실주의, 구상주의가 70년대 말에 붐이 된다. 홍대파는 단색화를 그리는 박서보 교수의 영향으로 사상 및 미적 탐구를 표현하지만, 서울대파는 척박한 현실을 구상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담아낸다.

이종구, 오지리에서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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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이라는 새로운 그룹이 생긴다. 민중 미술 화가인 이종구는 농부 화가로 알려진다. 뜯어진 벽보 사이로 대통령 선거 후보인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가 보인다. 정부양곡이란 글자가 써진 쌀농사 포대에 사실주의 그림을 그린다.

미술운동, 무크지(mook, magazin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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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가 다 폐간이 되자 무크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80년대는 무크지의 전성시대다. 실천 문학, 민중미술, 시대정신 등 다양한 무크지가 정부 허가를 못 받아 정기적으로 출간되지 못한다. 여럿이 모여서 한번 만들고 다시 언제 나올지도 모른다. 연구 논문, 서양 사상 번역, 학술지 등을 지하 써클에서 만들어 대학생들이 돌려본다. 도시 빈민, 철거민의 이야기 등 민중 미술을 다루며, 페미니즘이 또한 출현한다. 인텔리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여공, 양공주, 여성 문제 등 불리한 상황에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임옥상 산수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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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미술가 임옥상은 그림은 인간의 의식을 깨우는 매체라고 한다. 시대의 구경꾼이 아니라 시대를 같이 사는 자가 되야 한다고 한다. 산에 광고판이 붙어있어 시대를 반영하는 산수화다. 임옥상은 미술이란 내가 쓰고 싶은 색을 사용하는 것인데 그렇게 그렸더니 국전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통탄한다. 일본인이 정의한 백색, 백의 민족이란 어휘가 미술계에서 대세였던 시기였다.

이상국 공장지대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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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사실주의 형식이다. 산동네는 높아서 광고 걸기에 안성맞춤이다.화려한 광고판 아래 산동네는 잿빛에 묻혀있다. 민중화가가 나타난 배경에는 12 월전, 제3 그룹전 같은 단체의 뒷받침이 있었다. 유신시대의 억압을 받던 김봉준은 탈춤과 굿에 민중의 호흡이 있으며 해방의 출구가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 미는 한국 문화 사업도 아니고 엘리트 문화도 아닌 민초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문화가 활발히 펼쳐진다.

신경호 넋이라도 있고 없고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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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5월 연작 19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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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는 대중 전파 매체가 되어 걸개 그림을 시위에 사용한다. 민중 미술가들은 재야의 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홍성담, 민족해방운동사 연작 광주민중항쟁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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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힘 1985 아랍 미술관,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1985/ 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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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젊은 사실주의자, 구상주의자, 민중 미술가 화가들이 전시한다. 경찰서에서 작품을 압수하니 작가들이 안국동 아랍 미술관에서 대책 회의를 한다. 문공부에서 박해를 하니 더  결속을 하며 단체 민예총이 나타난다.민주화 운동을 하는 유흥준은 감옥을 나온 후 취직이 불가능해진다. 비슷한 사람들이 민예총에 모여 잡지를 만들고 유흥준은 미술사 강의를 하니 민예총의 강의가 유명해진다. 65년에 문공부 장관 이 원홍이 '저 민중 미술하는 것들'이라고 지칭을 해서 민중미술이란 용어가 생긴다.

극풍 81,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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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데모할까 불안하여 정부는 여의도광장에서 큰 페스티벌을 열어준다. 행사는 실패로 끝난다. 이 시기에 대중의 관심을 엔터테인먼트로 끌어들여 3S (sports, sex, screen) 산업을 부흥시킨다.

오윤 여공의 수기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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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미술가들은 해방정국 (1945-1950) 및 육이오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다. 80년대 반미 운동이 일어난다.  아버지가 소설가인 오윤은 판화를 가지고 현실 참여 미술을 한다.

신학철, 모내기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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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농부들이 자본주의 병폐를 쓸어내고 있고 뒤에 백두산이 있다. 무릉도원을 그렸다고 한다.

둥지, 함께 사는 땅의 여성들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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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단체가 나타나 전시를 하며 여성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윤석남, 어머니의 이야기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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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화가로서 40대에 그림을 시작한다. 첩이었던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김인순 현모양처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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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모를 쓴 부인이 남편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교육 여부에 관계없이 여자에게 요구됐던 삶은 현모양처였다. 여자의 몸, 소외여성, 여자의 부당함 현실 등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이 계보를 따라 이불 같은 작가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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