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별거한 부부에 대한 회고록 - 이언 매큐언의 <검은 개>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 김미연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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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북리뷰


 

40년 별거한 부부에 대한 회고록 - 이언 매큐언의 <검은 개>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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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84회 작성일 21-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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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왜 밖을 향해 있을까. 남을 먼저 살피는 눈 덕분에 살아남은 인간이다. 안을 보는 기제가 없는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다. 타자와 부딪쳐서 아프면 그제야 자신에게 눈을 돌리는데, 마음에 둘러친 방어 기제는 철옹성이다. 이 소설에는 두 사람의 각성이 일어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아를 발견한 쥰과 지워버린 기억을 되찾아 속죄하는 제레미가 등장한다.

 

 <뻐꾸기 소년>


 제레미는 대학에 가기 위하여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 8살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연립 주택과 철물점 덕분에 생계는 해결이 된다. 수탉 문신을 온몸에 새긴 매형, 반라의 여배우 같은 누나와 진토닉 병이 뒹구는 아파트에 주먹과 고함은 그칠 날이 없다.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조카 샐리와 놀아주며 서로를 의지하지만, 부부가 기분이 좋아져 샐리를 데려가서 뽀뽀하고 난리를 칠 때면 외로움이 엄습해서 친구들을 찾아간다.

 

 물론 친구들이 길거리를 방황할 시간에 찾아가는데, 상류층 교양있는 부모들은 아들 친구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스카치, 시가도 권하면서 해박한 지식을 풀어 놓았다. 자기 자식을 어쩌면 좋으냐고 자문했고, 제레미는 그들이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풍족하여 소중함을 모르는 사춘기 친구들을 과잉으로 무시하면서, 어른들이 주는 괞찬은 아이라는 시선에서 자존감을 충족한다.

 

 누나 부부는 세 살 샐리에게도 손찌검을 했는데 제레미는 전혀 몰랐다고 회고한다. 어쩔 수 없는 불편한 기억은 지우는 것이 편리하다. '삼촌 어디가? 왜 가? 언제 와?'를 되풀이하던 샐리에게 등을 돌려 대학으로 도망친다. 우울한 대학생이 된 그는 교수 집을 찾아다니고, 직장, 동네도 줄곧 옮겨 다닌다. 후에 샐리는 결혼에 계속 실패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호스텔에서 혼자 산다.


 <이념과 사랑의 불일치> 

 

 1982, 37살의 제레미는 결혼한다. 고아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부모가 되는 길이다. 아내 제니와 네 아이를 낳고 안정을 찾는데, 40년을 별거하고 있는 장인 장모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장인 버나드는 런던의 노동당 출신의 유명인사이고, 장모 쥰은 프랑스 산골에 칩거하면서 영성에 대한 책을 저술하고 있다. 제레미가 결혼한 첫해에 쥰은 런던 근교의 요양원으로 옮겨 오는데, 남의 부모를 좋아하는 뻐꾸기 기질이 발동한 제레미는 '수양어머니'의 회고록을 쓰겠다고 생각한다.

 

 1944년 이차대전 끝 무렵 장인 장모는 상원 의사당에서 첩보 업무를 하던 중에 알게된다. 유로 코뮤니즘이 퍼지던 시기에 영국 공산당에 나란히 입당한 엘리트 커플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승전국 영국과는 달리 패전국의 참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탈리아에서 구호물자를 보급하는 적십자에 봉사도 한다.

 

 프로방스로 가던 중 녹슨 철로만 있는 작은 역에 들어간다. 잡초 사이로 잠자리 한 마리가 내려앉는데, 버나드는 아마추어 곤충학자답게 '심페트룸 상귀네움' 학명을 외치며 손으로 잡는다. 쥰이 '이것을 죽이겠다고? 아름다워서 죽인다고?' 만류하는데도 살충병에 넣는다.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한 부부 싸움이 근본적인 문제로 번진다. 쥰은 불쌍한 곤충에 대한 냉혈한 태도는 인간도 곤충처럼 정렬시키고 싶은 것이라고, 노동자에게 관심도 없으면서 프롤레타리아 운운하지 말라고 남편을 비난한다. 버나드는 곤충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것은 아끼는 행위라고, 몇 마리를 죽이는 것은 큰 그림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논리를 펼친다. 쥰은 울음을 터뜨리며, 잠자리의 보복으로 애기가 잘못되면 어떡하냐며 임신 소식을 알린다. 미신 같은 생각을 하는 아내가 유물론을 신봉하는 당원 생활을 잘할까 슬쩍 걱정된다. 열달 후, 첫 딸 제니가 육손으로 태어나는데 어릴 적에 제거 수술을 받는다.

 

<검은개 사건>


 쥰과 버나드는 프랑스 남부로 신혼여행을 계속한다. 비스강 협곡은 오지라서 외부 사람이 가지 않는 곳이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사랑하는 남자 옆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데, 쥰의 마음속에 뭐가 걸리적거린다. 광활한 우주가 펼쳐진 오천 년이 넘은 고인돌 성지에 앉으니 인간이 꿈꾸는 미래가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 버나드가 웅웅하고 떠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헛된 말로 들린다.


 다음 날 부부는 다시 하이킹을 떠난다. 좁은 산길이 위태롭다. 뒤에 쳐진 버나드는 뭘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쥰은 웬지 불안하다. 잉태한 작은 생명 탓인가? 돌연 기괴한 검은 개 두 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침을 질질 흘리는 들개는 허연 다리를 내놓은 쥰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분홍색 혀를 날름거리며 덮치기 일보 직전, 쥰은 생전 처음으로 '하느님'을 외쳤다. 말이 물결치듯 에너지로 변하여 절체절명의 용기가 솟구쳤다. 과도를 꺼내서 '아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앞발을 치켜든 개의 옆구리를 세 번 찔렀다. 개는 비명을 내지르며 사라졌다.

 

 팔에 상처를 입고 땅에 고꾸라져 있는데, 애벌레 군상의 스케치를 끝낸 버나드가 15분쯤 후에 나타났다. 사활이 걸린 순간에 곤충이나 쫓고 있던 그를 용서할 수 없다. 쥰은 일정을 다 취소하고 마을로 돌아간다. 티욀호텔 여주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검은 개 이야기를 한다. 독일군에게 남편을 잃었다는 그녀는 개에 대한 내력을 들려준다. 나치 점령 시절 독일 게슈타포는 훈련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들어와서 레지스탕스 비밀 요원을 색출하고 다녔다. 그 후 들개로 변하여, 남자들이 전쟁에서 다 죽고 여자들만 남은, 기근에 시달리는 마을을 해친다고 한다.

 

 <용기는 각성>


 쥰은 유령은 믿지 않지만, 악의 존재는 믿었다. 검은 개는 인간에 내재한 보편적 악을 상징한다. 집단 광기가 이끈 전쟁의 여파로 벽지 온 마을이 신음한다. 숫자와 통계만 따지는 합리주의, 마음과 영혼을 볼 줄 삭막한 남편에게 염증을 느낀 쥰은 곧바로 당에서 탈당한다. 죽을 듯한 용기를 내니 색색의 광채가 물결쳤다고 말하고 싶지만, 강퍅한 버나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이 뻔했다.

 

 언쟁을 피하니 침묵은 서운함이 되어 둘의 사이는 벌어진다. 쥰은 검은 개를 만났던 생프리바 지방에 창고를 사서 집으로 개조하고, 몇 년 후에 별거를 시작한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사랑에 굴복할 수도, 사랑을 설득할 수도 없다. 당이 꿈꾸는 낙원 대신에 오지에서 신앙과 명상에 대한 책을 쓰며 조용하게 산다. 버나드는 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여 정신이 없고, 아이들은 방학에 런던에 가서 아버지와 지내고 돌아온다.

 

 67세 쥰이 윌트셔 양로원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방에 놓인 신혼여행 사진은 행복이 영원할 것 같은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제레미는 회고록을 쓰기 위해, 리치, 몽블랑 잉크, 브라질 커피 등을 가지고 방문한다. 쥰은 남편의 살림을 봐주는 여자에 대한 질투를 드러내며, 하나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은 최대의 실수였다는 말을 남긴다. 누구의 인생도 완전할 수는 없다.

 

 1989 6 17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버나드는 자신이 신봉했던 공산주의 이념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다. 동베를린 사람들이 유모차를 끌고 넘어오고, 검문소 찰리 포인트는 이제 관광명소가 될 터였다. 전 유럽이 축제를 벌이는 와중에 신나치주의자들과 동독 젊은이들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싸움에 휘말린 버나드는 정강이를 걷어채이고 쓰러진다. 죽일 작정을 하고 그를 에워싸는데, 갑자기 가죽 재킷의 젊은 여자가 나서서 싸움패를 꾸짓자, 그들은 야유하며 뒷걸음친다. 그 여자의 얼굴을 본 버나드는 혼잣말 하듯 말한다. "이상한 일이지. 쥰이 죽고 나서 여자들의 얼굴에서 쥰의 닮은 모습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어. 쥰의 영혼이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저 여자의 입매와 턱이 쥰을 닮았어." 

 

 <제레미의 검은 개>


 제레미는 회고록을 완성하기 위해서, 장인 장모가 신혼여행 중에 묵었던 티욀호텔을 찾아간다. 호텔 식당에서 우연히 소년이 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별 잘못도 없이 부모에게 뺨을 호되게 맞은 소년의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했다. 누구도 편들어 주지 않은 채 나동그라진 소년의 모습에서 고아 시절의 외로움을 본다. 부모에게 폭력을 당하는 샐리를 모른척 했던, 뇌가 지워버린 기억도 되살아난다. 누군가 나서길 기다리며 애써 외면하던 중 제레미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아이 아버지를 저지시킨다. 웬 참견이냐는 소년의 아버지와 주먹 다툼까지 벌어진다.

 

 신념도 없고 선택도 없는 회의주의로 점철하던 그가 용기를 내어 폭력당하는 아이를 도와 준것은 조카에 대한 속죄와 고아에서 벗어나는 구마 의식이었다. 남을 돌보는 것은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쥰은 악을 맞닥뜨리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 선함과 사악함은 우리 안에 붙어서 같이 살고 있지만, 쥰과 제레미처럼 선을 끌어낼 용기 또한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부상당한 검은 개들이 절뚝거리며 세상 저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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