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오콩코를 아십니까? -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 김미연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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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오콩코를 아십니까? -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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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233회 작성일 21-05-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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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문학을 읽었다. 아프리카 작가의 목소리로 부족민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은 처음으로 읽었다. "다 비정상적으로 생겼네." 흑인들이 백인을 처음 보고 한 말이다.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나도 타자를 보고 비정상이라는 느낌을 가진 적이 있다. 나이지리아 남부에 살았던 이보족의 영혼에는 그들만의 우주가 담겨 있었다.

 

오콩코의 성공과

한 아버지에서 나온 아홉 형제가 나자르 강변을 따라 아홉 마을을 꾸미고 살았다. 우무오피아 마을의 청년 오콩코는 전체 부족에서 최고의 씨름왕이자, 제일 용감한 전사다. 부자였으며, 셋째 부인도 얻었고, 칭호도 둘을 가졌다. 넷을 가지면 부족장이 된다. 황토담 안에서 제일 크고 넓은 거처인 오비는 가장이 혼자서 쓴다. 세 부인의 거처가 오비를 반달처럼 둘러싸고, 부인들은 저녁이면 음식을 한 가지씩 만들어 남편에게 바친다.

 

오콩코의 셋째 부인이 저녁에 음식을 바치지 않았다. 화가 난 그는 밤늦게 돌아온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다. 대지의 여신이 쉬는 신성한 시기였다. 두 부인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날 밤 무당이 찾아와서, 여신에 대한 불경죄로 암염소 한 마리, 암탉 한 마리, 옷감 한 필과 백 조가비의 벌금을 내렸다. 외부의 어떤 것도 무섭지 않은 그에게 단 하나 무서운 것이 있다면, 자신에게 흐르는 아버지의 피다. 정이 넘치는 음악가였던 아버지는 동시에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오콩코는 얌 종자를 꾸어서 바닥부터 시작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얌은 식량을 넘어서서 부, 명성, 욕망을 아우르는 황금작물이다. 어린아이도 손을 씻으면 왕과 함께 식사할 수 있다는 속담처럼 개인의 성취가 중요한 사회였다. 물려받은 나쁜 성향이 나올까봐 오콩코는 분노 이외의 어떤 감정도 보인 적이 없다.

 

우무오피아 마을의 여자가 옆 마을 음바이노 장터에서 죽임을 당했다. 위풍당당한 오콩코가 전쟁 사절로 음바이노에 파견되었다. 소년과 처녀를 화해 제물로 가지고 돌아왔다. 처녀는 부인이 죽임을 당한 남자의 아내로 주고, 소년은 오콩코가 당분간 맡도록 결정되었다. 오콩코는 어머니 곁을 맴도는 맏아들 은예웨가 탐탁지 않았지만, 활달한 이 소년은 마음에 들었다. 소년은 오콩고를 아버지라 부르면서 몇 년을 같이 살았다. 아들과 소년은 의형제처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소년을 제물로 바쳐야 할 시기가 왔다. 장정들이 눈짓을 주고받으며 그를 숲 속으로 데려간다. 이 일에서 빠지라고 했지만, 오콩코는 살려 달라는 소년의 목을 직접 내리친다. 은예웨는 의형제의 죽음에 울음만 삼켰고, 아버지를 회피하는 우울한 소년으로 변해갔다.

 

용감한 여성 에퀘피

어느 날, 숲과 동굴의 신 아그발라의 무당이 찾아왔다. 무당은 일상에서 두 아이를 둔 미망인으로 오콩코의 둘째 부인 에퀘피와 친한 사이다. 무당은 에퀘피의 외동딸 에진마를 데려오라는 신의 예언을 전한다. 무당에게 업혀 울면서 멀어지는 딸 아이 뒤를 에퀘피는 살금살금 쫓아간다. 이것을 눈치 챈 무당은 '아그발라 도오오오' 주문을 외우면서 밤새도록 숲속을 돌아 다닌다. 몽유병자처럼 뒤쫓는 에퀘피의 눈에 아이를 업고가는 전혀 다른 남자가 보인다. 새벽에 동굴 앞에 온 무당은 도끼를 들고 있는 오콩코를 발견하자, 에진마를 집에다 눕히고는 사라졌다.

 

에퀘피는 전 남편을 버리고 당시 가난하던 오콩코에게 도망쳐 왔다. 그녀는 딸 에진마를 낳기 전에 아이를 열둘도 더 잃었다. 어머니를 괴롭히려고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악령이 씌운 아이를 오그반제라고 한다. 에진마가 태어났을 때 이 아이도 오그반제려니 했다. 무당에게 업혀서 하룻밤을 동굴에 다녀온 후로, 에진마는 물먹은 얌처럼 건강하게 자랐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일상에서 늘 섞여 있었다. 조상의 영령 에구구가 부족의 대소사에 항상 등장한다. 마을의 아홉 대표가 섬뜩한 가면을 쓰고 영혼을 대행한다. 오콩코도 에구구 중 한 명으로 동네 유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에구구들은 망자를 대신하여 칼과 도끼로 무장하고 울부짖는다. 이 와중에 오콩코는 실수를 저질렀다. 고인과 이별의 춤을 추는 아들에게 총을 쏜 것이다. 실수로 범한 죄는 여성형 범죄에 속하므로, 7년의 추방령이 떨어졌다.

 

오콩코의 추방

어머니의 고향 음반타로 식솔을 이끌고 간 오콩코는 나이 많은 삼촌의 도움을 받는다. 삼촌은 '삶이 달콤할 때는 아버지를 찾지만, 불행할 때는 어머니를 찾는다'는 속담을 말해준다. 오콩코의 어머니도 친정으로 돌아와서 숨을 거두었다. 여자들은 죽을 때 '살아봤더니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라는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오콩코는 열심히 일해서 자리를 잡지만, 명예를 잃은 유배 신세를 슬퍼했다. 사람은 저마다 수호신 ''가 있다는데, 타향으로 내몬 자신의 치에 불만이 가득 차올랐다.

 

오콩고가 귀양을 사는 음반타 마을에 백인 선교사가 들어왔다. 선교사 브라운 씨는 가짜인 돌과 나무를 숭배하지 말고,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했다. 마을 대표가 대지의 신과 조상신 에구구를 버리면 화를 입는다고 말하자, 브라운씨는 그들은 살아있지 않기에 아무런 해도 못 끼친다고 답했다. 마을 사람들은 번개의 신 아마디우라가 무섭지 않다고 하는 선교사가 미쳤다고 웅성거린다. 하느님이 아들이 있으면 부인도 있냐고 물어본다. 바보 같은 백인 신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부족민들은 선교사에게 악령의 숲에 있는 땅을 내주었다. 몹쓸병자와 주술사의 영물을 묻는 기가 센 땅이라서, 삼 일 안에 다 죽을 것이라 여겼다. 삼 일을 넘기자, 백인의 영물은 자신의 신들보다 힘이 세다고 소문이 났다. 교회는 악령의 숲에 보란 듯이 세워졌고, 개종자가 서너 명 나왔다. 음반타의 신은 인내심이 있어서 칠 주 동안은 봐주는 법이므로, 부족민은 흥분이 고조되어 칠주를 더 기다렸다. 죽어야 할 날이 그냥 지나가자, 개종자가 더욱 많이 나왔다. 쌍둥이를 네 번이나 갖다 버린 적이 있는 여자 개종자는  만삭의 몸으로 교회로 걸어왔다. 천민과 부랑자 계급이 교회를 찾아왔다. 오콩코의 맏아들 은예웨도 개종했다. 의형제의 죽음에 시달려 온 은예웨는 여자가 되고 싶으면 나가라고 저주를 퍼붓는 아버지를 떠난 것이 기뻤다.

 

칠 년 후, 오콩코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직위가 높은 사위를  얻을 생각이고 아들들도 오조 모임에 넣어서, 명예를 다시 찾을 작정이다. 우무오피아는 많이 변해 있었다. 발목의 칭호 장식을 잘라버리고 개종한 마을의 유지도 있었다. 백인이 세운 교역소를 통하여 작물들이 비싼 가격으로 팔렸기 때문에 부족민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교회와 정부를 세워서 없어진 마을도 있었다. 오콩코는 전쟁을 하지 않는 부족민들에게 울분이 치솟았다.

 

이성에 눈뜨는 부족민

후임자로 스미스 신부가 왔다. 흑백으로 세상을 보는 그가 원주민을 자극하자, 원주민 신자들이 미친 듯이 맞장구를 쳤다. 개종한 뱀무당의 아들이 축제 중에 에구구의 탈을 벗기는 불경죄를 범했다. 영령들은 곡을 하며 공포심을 조장했고, 교회로 쳐들어갔다. "우리는 전에 왔던 브라운 씨를 좋아했다. 그는 바보 같았지만 그를 봐서 너를 해치지는 않겠다. 이 신전을 부술 것이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교회는 잿더미가 되었다. 정중하게 모실 테니 교섭을 하자는 연락이 치안 판사에게서 왔다. 오콩코를 포함한 대표들은 제 발로 걸어서 재판소로 갔다. 감옥에 갇힌 그들은 머리를 깍이고 매맞고 조롱을 당했다. 조개비 이백 자루의 벌금형이 내렸다. 오콩코의 등에는 깊게 패인 채찍 자국이 생겼다. 이번에도 부족이 전쟁을 피한다면 혼자라도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았다. 다음날 부족의 집회를 금하려고 나타난 전령의 목을 내리친 오콩코에게 왜 그런 짓을 했냐는 주민들의 비난이 돌아왔다.

 

치안판사가 무장한 군인을 데리고 오콩코를 잡으러 왔다. 오콩코는 집에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갔더니, 숲속의 나무에 목매단 남자가 있다. 오콩코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한 몸은 여신의 저주가 내려서, 자기들은 만질 수가 없으니 판사에게 시체를 수습해 달라고 한다. 판사는 미개한 원주민의 풍습이 흥미롭다. 현재 집필 중에 있는 보고서 겸 책자에 한 문단은 차지할 것 같아서 흐뭇하다.

 

후기 식민주의 문학

아프리카 전통적 이야기에 아들이 아버지를 부정하는 삼대에 걸친 오이디푸스 적 갈등을 첨가한 소설이다. 서구의 신화적 영웅처럼, 오콩코도 성공과 자멸의 요소를 함께 지닌 인물이다. 여성성을 무시하고 초남성성을 강조하는 체계 속에서도 여성들은 구전 문학을 통하여 문화를 전수했다. 출산을 통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신이 낳은 아이들은 스스로 농사하여 먹이고 입혔다. 밤에 아이들을 앉히고 설화와 민담을 풀어놓았다. 이 모든 의무를 충실히 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에 개입한 둘째 부인 에퀘피같은 여자도 있다. 자신의 의지로 남편을 선택하고, 무당을 뒤쫒는 적극적 캐럭터로 나온다.

 

서구 작가의 글 속에는 식민자의 관점이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이체베 작가는 이보족의 풍부한 문화적 기억을 들춰내며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부족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리지 않은 점도 설득력이 있다. 샤마니즘적 폭력과 불평등에 눈을 뜨는 젊은 세대도 등장한다. 의형제의 죽음을 의심하는 은예웨의 개종, 쌍둥이를 버리는 여성들의 불만, 금기인 에구구의 가면을 벋겨내는 사건은 기존의 가치관을 의심하는 일련의 움직임이다. 영웅 오콩코의 죽음은 판사의 글 감으로 전락하지만, 승자가 기록하는 역사가 다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뒤집어 보고 질문하는 사고가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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