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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형, 사랑이 궁금해! -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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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34회 작성일 24-05-1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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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년 동안 회자되던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원전으로 읽었다. 그간 철인이 남긴 명언이라고 잘 몰라도 귀를 기울여왔다. 이번에 책을 읽고 나니, 없어진 퍼즐 조각이라도 찾아서 맞춘 듯이 속이 시원하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책을 쓴 적이 없다. 예수의 제자들이 복음서를 남긴 것처럼,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사후에 대화록을 썼다.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변론하는 내용이고,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절친 크리톤과 감옥에서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사형 전날에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가 <파이돈>이며, 남자들이 사랑에 대한 수다를 떤 것이 <향연>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천 오백 년 전, 아테네에 한 대장장이가 살았다. 아들 셋을 둔 가장이 40살이 되자, 하던 일을 접고, 거리로 나섰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소크라테스가 당대 세력가들을 찾아가서 엉뚱한 말을 던지고 다녔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무식한 대장장이의 말장난을 구경했다. 묘한 일이 벌어진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유명인들의 말이 딸린다. 플라톤을 위시하여, 학식을 갖춘 귀족 자제들은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말법에 귀가 번쩍 띄인다. 스승의 말투를 흉내 내면서 무리로 다니니, 평화롭던 고대 사회에 흙탕물을 여기저기 튀긴다. 30년 후, 시인 멜라토스, 정치가 아니토스, 웅변가 라이콘이 소크라테스를 고소한다.


콜롯세움 같은 대형 법정이다. 수많은 시민이 화제의 재판을 보려고 몰려왔다. 소크라테스가 변론을 시작한다.

그의 죄목은 궤변을 정설로 만들고, 불법으로 청년을 가르치며,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배운 것이 없다. 가르칠 능력도 없고, 돈을 받은 적도 없다. 내가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면, 선도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배심원을 위시하여 여기 있는 아테네시민 모두가 청년들을 선도한다." 고소인 멜라토스가 대답했다.

"몇 백 명이 청년들을 잘 이끄는데, 나 같은 노인네 한 명 때문에 그들이 타락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당신들은 직무 유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멜라토스는 답을 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내가 의도적으로 타락시킨다는 말인가?"

"의도적으로 한다."

"같이 사는 사람을 타락시키면, 나에게 해악이 돌아올 텐데,  그런 일을 하는 바보도 있는가?"

멜라토스는 답이 막힌다.

질문을 던져서 상대의 대답에서 모순을 끌어내는 소크라테스 특유의 산파술(elenchus)이다. 출구 없는 상황으로 끝나면서 자신의 무지를 알게 하는 말법을 아포리아(aporia)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이어진다. "나는 오랫동안 모함에 시달렸다. 내가 기소된 진짜 이유는 델포이의 신탁 때문이다. 내 친구가 아폴로 신전을 찾아가서 아테네에서 제일 지혜로운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여사제는 신탁을 받기 위해 술을 마시고 춤을 한참 추었다. '죽을 운명을 가진 자 중에 제일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라는 답을전달했다. 나는 모르는 것투성인데 신이 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 길을 떠났다."


소크라테스는 추앙을 받는 정치인, 교육자, 사업가를 찾아갔다. 그들은 '나는 다 알아' 하고 큰소리쳤지만, 차근차근 논증하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모른다는 '무지의 지'를 가졌는데 그들은 다 안다는 '무지'를 드러냈다. 체면이 중요한 정치가는 화가 났고, 사회 유력 계층에서 적이 생겼다.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다니는 그에게 '쇠파리'라는 별명도 생겼다.

"맞다, 나는 신이 아테네에게 내려준 쇠파리다. 아테네는 이제 굼떠서 움직이지 않는 말이 되었다. 쇠파리가 말

등에 달라붙어 귀찮게 해야지, 아테네가 잠에 빠지지 않을 것 아닌가."


일차 재판이 끝났다. 501명의 배심원 투표 결과 281:220으로 유죄가 되었다. 30명 정도만 마음을 돌렸으면 동점으로 무죄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차 변론에서 말만 잘하면, 벌금, 유배, 감옥형이 가능한데도, 소크라테스는 엇가는 소리로 배심원을 자극한다.

"나는 벌은커녕 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젊은이들에게 조언하는 수고를 했기 때문에, 정부 청사에서 연회를 받을 자격이 있다."

다른 죄수들처럼 애걸복걸하지 않는 건방짐에 더 많은 배심원이 등을 돌렸다. 360:141로 이차 변론에서 사형이 확정된다.


크리톤

다음 날, 동틀 무렵에 소크라테스의 절친이 감옥을 찾아온다. 크리톤은 탈출해서 목숨을 부지하자고 권한다. 판결이 정당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탈옥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탈옥 제의를 거절한다.

"다수의 의견이라도 악한 견해는 버려야 하네. 국가와 나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노예 같아서, 되갚아 준다는 생각은 옳지 않네. 나는 해외여행을 한 적도 없고 누구보다 아테네를 사랑했는데, 죽는다고 하여 조국을 버리고 도망갈 수는 없네. 사람들과 대화하며 인생을 검토하는 삶을 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네. 나는 죽기 위해 떠나지만,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있는지 누가 아는가. 신 밖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네."


파이돈

신성한 주간에는 사형을 금하는 풍습이 있었다. 델포이의 신전으로 떠난 배가 풍랑을 만나서 언제 올지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형 집행이 연기되었다. 제자들은 매일 감옥으로 찾아가서 스승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한달 후, 간수장이 머뭇거리며 오더니, 배가 오늘 도착한다고 전한다. 말을 하면 체온이 올라가서, 독약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개의치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아랑곳 하지 않는 스승에게 제자 키베스가 '사후세계가 없다면' 하고 질문을 던진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은 반대로부터 오지 않는가'로 말문을 연다.

"우주의 원리는 대립물에서 시작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어떤 것이 커졌다면 필연적으로 작은 것에서 시작하네. 살아있는 것의 대립물은 죽어있는 것 아니겠나. 인간이 태어나는 생성 과정이 있다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과정도 있을 것이네.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이, 쌍방으로 통하는 과정이네. 죽음이 끝이라면, 세상은 벌써 끝났을 것일세."


소크라테스는 죽으면, 진짜 세계를 볼 것이라고 말한다. 오감은 정확하지 않으며, 살면서 보는 것은 허상이다. 해를 직접 보려다가 시력을 잃은 사람이 있듯이, 인간이 가진 엉터리 감각으로 진리를 볼 수 없다. 이성을 통한 변증법적 사유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용기가 있지만, 용기를 용기라고 알게 하는 본질,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본질을 이데아라고 부른다. 세상의 현상들은 소멸하지만, 영혼 속에 존재하는 이데아는 영원하다고 한다.


향연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 제전이 매년 열렸다. 비극 경연 대회에서 아가톤이 우승했다. 당대 셀럽들을 불러서 자축연을 베푼다. 남자들의 술자리가 흔히 그렇듯이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안주로 등장한다. 다들 자신의 직업에 어울리는 전형적인 견해를 떠들어댄다. 소피스트는 사랑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법률가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랑은 금해야 한다고 하고, 의사는 사랑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한다. 아가톤은 사랑은 신적인 영역이라 인간은 가질 수 없다고 비극적 견해를 펼친다.


마지막에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여성 철학자 디오티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한다. 아프로디테가 탄생하던 날 신들이 모였다. 축하하는 술판이 벌어지는 가운데, 파티장에 늦게 도착한 결핍의 신 페니아(Penia)는 당황한 나머지, 풍요의 신 포로스(Poros)를 꼬여서 동침에 성공한다. 여기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가 태어난다. 에로스는 어머니처럼 곤궁하지만, 아버지를 닮아서 풍요로움을 그리워한다. 넉넉한데도 가난하다고 느낀다. 사물을 잘 파악하지 못하지만, 더 나은 데로 가려는 의지도 있다. 불멸의 신을 조금이라도 흉내내고 싶다면, 에로스에 끌려 다녀야 할 판이다. 육체적 사랑은 후손을 낳고, 정신적 사랑은 예술과 사유를 남긴다지 않는가.


플라톤의 출현

소크라테스가 사형 되고 난 후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스승의 사후에 아테네에 환멸을 느낀 플라톤은 세상을 떠돌면서 여러 학자와 교류를 한다. 여자는 이등시민이었던 시대였다. 남자끼리만 지성을 향유하던 시대에, 여성 철학자 디오티마를 등장시킨 점도 흥미롭다. 절대적 진리가 영혼 속에 존재한다는 이데아론은 팔백 년 쯤 후에 등장하는 기독교 사상과도 비슷하다. 에로스는 남에 대한 관심이니, 가장 위대한 신이라는 것도 기독교의 사랑과 일치한다.


우리는 감옥 같은 몸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에 무지하다고 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나의 오감을 절대로 믿었다. 나의 눈과 귀, 경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나머지, 믿었던 친구가 그럴 줄 몰랐다고 분노했고, 오랫동안 나쁜 사람으로 취급했던 적이 있다. 인간은 아주 악하거나 아주 선하기는 드물고, 대부분 중간 지점에 있다는 것을, 선과 악의 대립물에서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철학은 지혜롭다. 사유를 하자. 누가 섭섭하다고 토라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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