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세 번 한 여자 - 조라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평화신문, 김미연 > 김미연 북리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김미연 북리뷰


 

결혼을 세 번 한 여자 - 조라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평화신문, 김미연

페이지 정보

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47회 작성일 24-05-17 21:58

본문

항구에서 배를 막연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배는 시간에 맞춰서 들어오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한다. 한편, 배를 찾으러 지평선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제니는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 사이에 태어난 물라토 신분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미국의 노예제도로 인해 혼혈인종 물라토가 많이 태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백인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곤 했다. 하지만, 작가는 희생되는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여성 제니를 소설에 등장시킨다.


정체성의 혼란

제니는 부모의 얼굴을 모른다. 제니를 키운 할머니는 노예 해방 후에도 평생을 노예로 살았다. 할머니는 이름도 없어서 단지 내니라고 불린다. 주인마님은 검둥이 노예 내니가 노랑머리 애를 낳았다고 죽일듯이 학대한다. 내니는 강보에 싸인 딸을 안고 노예로 떠돌면서 산다. 딸을 학교에 보내지만, 백인 교사에게 강간 당한다. 제니를 낳은 후 딸은 가출하여 소식이 없고, 내니는 주인집에서 손녀를 키운다.


제니는 주인집 백인 아이들과 섞여서 자란다. 자신을 백인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꽃에 벌이 찾아드는 것을 보고, 16살의 제니는 이성에 눈뜬다. 제니가 소년과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할머니는 중년의 흑인에게 그녀를 시집보낸다. 결혼한 제니는 꽃과 벌처럼 사랑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초승달이 세번 져도, 남편과 사랑은 시작되지 않는다. 남편은 제니가 백인처럼 행동한다고 불평하며, 장작을 패오고 밭 일을 하라고 요구한다. 제니는 자신을 노새 취급하는 남편에게 맞서서, 앞치마를 던지고 집을 뛰쳐 나온다.


남편이 싫다고 우는 제니를 할머니는 타이른다. 할머니 자신은 평생 백인 주인에게 강간을 당하며 살았다. 손녀만큼은 보호막이 될 남편을 찾아 주었는데, 그 남편이란 사람이 노새같이 부려 먹을 궁리만 한다. 백인 남자는 흑인 남자에게 짐을 지게 하고, 흑인 남자는 흑인 여자에게 짐을 떠 넘긴다. 할머니의 저 깊은 심연에 억울하고 슬픈 느낌이 떠돌지만, 할머니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녀는 죽기 전에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 “주여,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머지는 주님께 맡깁니다.”


말을 억압하는 남편

당시 플로리다에는 race colony라는 자치 구역이 있었다. 흑인들이 시장도 뽑고 마을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지역이다. 제니는 야망이 많은 흑인 조디 스탁스를 따라서 흑인들이 세운다는 신도시 이튼빌로 온다. 나이가 많은 조디는 꽃가루를 찾아드는 벌과는 상관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멀리 지평선을 내다보는 사람 같았다.


조디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이튼빌의 시장을 자처하고 나선다. 백인에게 땅을 사들이고, 우체국과 상점을 차린다. 자신이 우체국장이고, 제니에게는 가게를 맡긴다. 커피에 크림을 탄 것 같은 피부색과 기다린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제니는 조의 트로피 아내가 된다. 동네 흑인들은 흥분하여 언성을 높인다. ‘흑인이 감히 우체국에서 집무를 보다니, 흑인이 상점을 운영하다니’ 조디는 마을에 배수구 공사를 감행하고 가로등도 설치한다. 동네 사람들은 노예제도는 끝났는데 같은 피부색을 지닌 흑인이 흑인에게 일을 시킨다고 불평한다. 조디가 자기들을 착취하며, 심지어 부인을 쥐잡듯이 한다는 말도 퍼져 나갔다.


제니는 가게 앞 현관에 모인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의 생각에 적합한 말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들은 세상을 캔바스 삼아, 크레용으로 자신의 삶을 그려냈고 한바탕 웃어젖혔다. 조디는 제니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금했다. 서둘러 그녀를 상점 안으로 들여 보냈다. 제니는 거스름을 주는 복잡한 계산이 싫고, 머리에 두건을 쓰는 것도 질색인데, 조디는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제니는 남편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허상이 남편 곁을 돌아다니고 자아는 다른 곳을 그리워 하고 있다. 50살이 되자, 남편 조디는 병이 들었다. 조디는 제니를 더 구박하기 시작한다. “엉덩이 살은 무릎까지 내려와서 튀어나온 눈 알을 굴리면서 담배 하나 제대로 팔지 못하다니” 참고있던 제니가 받아친다. “당신이야 말로 허세를 부리면서 남을 골려 먹죠. 바지를 내리면 세월이 훤히 보이죠” 이 소식은 온 동네에 퍼졌다. 분을 못 이긴 조디는 제니를 내리쳤다.


꽃에 찾아든 벌

조디가 죽자, 제니는 재산을 가진 과부가 되었다. 남자들이 구애를 하려고 몰려들었다. 제니는 어느 날 가게를 찾아온 흑인 청년 티케이크에게 빠져든다. 그는 체스를 가르쳐 줄 테니 같이 놀자고 말한다. 첫째 남편은 자신을 노새 취급했고, 둘째 남편은 체스를 못 배우게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제니보고 같이 놀자고 한다. 달빛 아래 호수에서 낚시도 하고, 기타도 쳐 주고, 제니는 황홀하기 그지없다.


그는 꽃에 날아든 벌이었다. 40살의 제니에게 나타난 25살의 남자. 티케이크가 며칠 보이지 않으면, 의심이 그녀를 괴롭혔다.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남자일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은 분개했다. “조 스탁스가 무덤에서 튀겨 나올 판이다. 아홉 달도 안 됐는데, 분홍색 옷을 차려 입고, 티케이크 같은 놈과 희롱 거리다니.”


티케이크는 자신이 도박꾼이라고 고백한다. 제니가 속옷 속에 감춘 200불을 들고나가서 술집에서 펑펑 쓰고 온 적도 있다. 도박으로 돈을 따서 200불을 돌려주자, 감격한 제니는 자신의 은행에 1200불이 있다고 말해준다. 위선에 찬 전 남편들에 비하면, 티케이크의 경우는 발톱 밑에 낀 약간의 때에 불과하다.


제니와 티케이크는 플로리다 남쪽 에버글레이즈로 내려온다. 거대한 호수 오키초비가 넘쳐서 만들어진 습지다. 토양이 비옥해서 콩과 사탕수수가 3미터 높이까지 자랐다. 티케이크는 낮에는 콩을 따고 저녁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기타치고 놀면서 도박을 하기도 한다. 티케이크는 제니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치는데, 제니는 그를 능가할 정도로 총을 잘 쏜다. 제니는 총으로 악어를 잡아서 내다 팔기도하고, 사냥한 토끼로 튀김을 만들어 저녁을 차리기도 한다. 전 남편은 제니를 우아한 동상처럼 만들어 사람들이 범접을 못 하게 만들었지만, 티케이크는 그녀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원했다. 제니는 남자들의 이야기에 스스럼 없이 끼어들고,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초라한 데님 작업복에 무거운 장화 차림이면 어떤가. 그녀의 영혼은 비로소 세상으로 기어 나왔다. 


허리케인

어느날, 제니는 세미놀족 인디언이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가는 것을 본다. 토끼, 쥐, 뱀, 사슴 같은 동물들도 씨근거리며 지나간다. 허리케인이 닥칠 것이니 높은 곳으로 간다고 한다. 날씨는 멀쩡했다. 콩 수확도 잘 되고 있다. 인디언이 틀릴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백인들은 아무데도 가지 않았어, 위험하다면 그 사람들이 먼저 알았을 거야.”


그날 밤, 바람이 북소리를 내며, 세상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오키초비 호수, 괴물이 잠에서 깨어 뒤척이더니, 사람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요동치는 어둠을 보고 있었지만, 실은, 그 너머에 있는 신을 보고 있었다. 티케이크는 사태가 악화되자 제니와 떠나기로 한다. 돈을 방수포에 싸서 짊어지고 물바다가 된 동네를 떠나서 팜비치 쪽으로 간다. 사람들과 동물들이 물 속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 제니는 황소의 꼬리를 붙들고 물에서 허우적 거린다. 황소 위에 올라탄 험악한 개가 제니에게 으르렁 거린다. 사투 끝에 제니를 구하지만, 티케이크는 그만 개에게 뺨을 물린다. 만신창이가 된 두 사람은 걸어서 팜비치에 도달한다. 개가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둘은 진저리를 친다.


티케이크가 이상한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멀쩡하다가도 부들부들 떨면서 난폭하게 발작을 한다. 백인 의사는 그를 살피더니 광견병이라고 한다.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고 옆에 있는 제니를 물어뜯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제니는 신을 응시하며 물었다. ‘이것이 당신이 의도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싸울 일은 아니지요.’ 신은 마음 속에 담은 것을 다 행동으로 보이지는 않으실테니. 제니는 조용히 그를 간호하기로 마음먹는다. 


티케이크는 차가운 도마뱀처럼 제니를 쳐다본다. 제니가 남자를 만나러 가나 해서 의심한다. 그의 침대에는 어느새 권총이 놓여있다. 그녀 역시 사냥총을 부엌에 세워둔다. 그날 밤, 그녀가 바닥에 요를 펴는 것을 보고, 그는 왜 침대에 오지 않느냐고 묻는다. 순간, 제니는 그의 몸 안에 있는 낯선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권총과 그녀의 사냥총이 동시에 소리를 냈다. 그의 총알은 벽을 뚫고 제니의 총알은 그를 쓰러 뜨렸다. 그날로 제니는 감옥에 갇혔다.


백인 배심원이 선정되고 법정을 메운 흑인 남자들은 합창하듯이 한꺼번에 말을 한다. “티케이크는 훌륭한 청년이었고, 저 여자에게 정말로 잘 했습니다. 저 여자는 남편이 열병이 나자 바람을 피웠어요.” 의사 시몬스 박사가 나와서 사실 그대로 증언했다. 제니는 사형보다 오해가 더 무섭다. 제니는 모든 상황을 담담히 말했다. “티케이트 안에 있는 미친개를 죽이기 위해서는 그가 죽어야 했어요.”


그녀는 무죄가 되었다. 제니는 은행에 돈을 보내라는 전보를 쳤다. 웨스트 팜비치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 악단이 와서 연주했고, 세단이 가득 들어찼다. 저녁 태양의 아들 티케이크는 제니가 사준 새 기타를 쥐고 비단 소파에서 당당하게 잠을 자고 있다. 그녀는 작업복 차림 그대로 장례식에 왔다. 슬픔에 빠져서 슬픔을 표현할 검은 옷을 입을 겨를이 없었다.


지평선을 다녀온 배

제니는 그렇게 티케이크를 묻고 고향에 돌아왔다. 티케이크가 심으려던 꽃씨 한 봉지만 품에 지니고 왔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쑤근거린다. “젊은 남자와 도망가더니 버림받았나봐. 저렇게 풀 죽은 것을 보니 재산을 다 뜯겼음에 틀림 없구먼.” 이튼빌 사람들은 해 질 녁에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를 구경하면서 입방아를 찐다. 남자들의 눈은 그녀의 데님 작업복을 뚫고 탄탄한 몸매를 상상하고, 여자들은 자기네 수준으로 떨어진 제니의 초라한 몰골에 즐거워한다. 제니는 그들의 말에 개의치 않는다. 할머니는 손녀의 지평선을 조각내어 한 남자에게 묶어 놓았지만, 제니는 그것을 풀어 헤치고, 바다 건너까지 다녀왔다. 남자를 통해 성장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물려는 남자에게 총을 쏜 그녀다. 하느님을 찾는 일과 스스로 살아가는 것, 이 두가지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