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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북리뷰


 

이슬람 화가의 못다 핀 꿈, 오르한 파묵의<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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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1,603회 작성일 16-06-1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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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화가의 못다 핀 꿈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내 이름은 빨강(My Name is Red)>을 읽고

                                                                                                                                                     김미연
터키의 이스탄불 출신 작가 오르한 파묵(1952-)은 1998년에 <내 이름은 빨강>을 발간했다. 작가는 오스만 터키 제국의 궁정 화원장을 지낸 나카스 오스만(Nakkas Osman, 1550-1600)의 생애에 영감을 받아서 이 소설을 세상에 내 놓았다. 작가는 부모가 일찍 이혼하여 엄마와 함께 외가에서 살았고, 작가의 엄마는 소설의 주요 인물인 세큐레의 모델이 된다. 파묵은 이 소설을 엄마에게 헌정했다.


신이 본 세상 


1570년대 오스만 투르크 제국. 투르크족은 용병술에 능한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이다. 그들은 12세기 경에 비잔틴 세력을 몰아내고 제국을 꾸렸다. 한 때 유럽이 부러워 할 정도로 강성했던 제국은 이제 전성기를 벗어나고 있었고, 같은 시기에 유럽은 인간 중심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르네상스 운동이 지나가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유럽의 문화가 베네치아를 통해 오스만 제국에 유입되던 시기였다.


 제국의 술탄인 셀렘 2세는 왕실의 행사를 기록하는 필사본 제작에 관심을 기울인다. 필사본은 이야기를 쓰는 서예가(calligrapher)와 그림을 그리는 세밀화가(miniaturist)가 동시에 필요하다. 궁정 화원장 오스만은 문화의 불모지인 제국에서 20년 동안 세밀화의 전통을 완성한 거장이다. 세밀화는 이야기를 도와주는 도구이며 신이 본 세상을 묘사한다. 신의 눈에 비친 인간은 별 차이가 없으므로, 인간은 같은 얼굴에 그림자도 없는 평면으로 그려지며, 이렇게 얼어붙은 듯한 모습에 영원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서예가 에펜디는 서구 화풍에 관심을 가진다. 그는 베네치아에 사신으로 가서 이슬람 미술에서 금하는 초상화를 보게 된다. 그림 속 인간이 마치 산 사람처럼 그림 밖을 응시함에 두려움과 유혹을 동시에 느낀다. 그는 돌아온 후 술탄을 설득하여 <축제의 서>를 비밀리에 제작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책에는 서양의 원근법을 적용하여 술탄을 닮은 얼굴이 들어갈 예정이다. 셀렘 2세는 이슬람교 천 년을 기념하는 해에 베네치아 총독에게 이 책을 선물하여 제국의 문화 수준을 자랑하고 싶다.


에펜디는 절세의 미인 세큐레를 딸로 두었다. 세큐레의 소녀 시절에 한 마을에 사촌 카라가 그녀를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에펜디는 평범한 교사인 카라를 자신의 사윗감으로 어림없다고 여겼기에 그를 이스탄불 밖으로 멀리 보내 버렸다. 카라는 객지를 떠돌면서도 한번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카라가 고향을 떠난 후, 세큐레는 길에서 만난 어떤 군인에게 반하여 시집을 갔다. 그녀는 두 어린 아들의 엄마가 되었지만, 남편은 전쟁에 나가서 소식이 끊어졌다. 남편의 사망이 확인되지 않는 한 시댁을 떠날 수도, 시집을 다시 갈 수도 없다. 그녀는 자신을 넘보는 시동생의 무례한 행동을 빌미로 삼아서, 시댁의 값진 물건을 챙겨 친정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녀는 친정에서 아버지와 아이들과 같이 사는데, 집에 드나드는 화가들은 누구나 그녀의 미모에 현혹된다.


인간이 본 세상 


술탄에게 밀서 제작을 지시받은 에펜디는 전통 화풍을 고집하는 오스만 화원장 몰래 은밀하게 일을 진행한다. 엘레강스, 나비, 올리브, 황새는 오스만이 자식처럼 훈련시킨 최고의 세밀화가들이다. 에펜디는 이 4명의 화가들을 밤늦게 따로 불러서 전체 그림은 가리고 자신이 지정하는 곳에 자신의 지시대로만 그리라고 시킨다. 에펜디의 숨은 의도를 모르는 화가들은 밀서 제작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제국에 서방의 문물이 들어오자, 이슬람 사회와 종교를 비판하는 이야기도 함께 나돌았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향락적인 서구 문물을 비방하고, 금욕주의를 옹호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에펜디는 이런 시국에서 자신과 화가들이 수상한 그림을 그린다는 소문이 도는 것이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밀서를 그리던 엘레강스가 시체로 발견된다. 이런 뜻밖의 사태가 발생하자 에펜디는 궁여지책으로 객지로 쫓아냈던 조카 카라를 불러들인다. 에펜디는 다른 세 명의 화가가 의심되니, 살인자를 찾고 책을 완성하라는 임무를 그에게 준다. 당시에 카라는 페르시아 변방에서 필사본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세큐레는 십 여년 만에 나타난 카라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계부가 될지를 살피기에 정신이 없다. 사랑의 체스 게임에 능통한 그녀는 그가 마음에 들었지만, 자신을 잊으라는 정 반대의 편지를 전한다. 하지만 카라는 정성스런 필체의 향내 나는 편지를 읽고, 그녀의 속마음을 간파한다. 그는 하루 빨리 살인범을 잡고 책을 완성하여, 에펜디의 마음에 들어서 그녀와의 결혼을 허락받고 싶다.


한편 카라가 나타나자 불안해진 시동생 하산은 형수와 조카들을 찾아와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형을 기다리며 살자고 애원한다. 시동생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세큐레는 카라를 탐탁해하지 않는 아버지의 심중을 알기에 시동생과의 결혼 가능성도 열어둔다.


전통과 개혁 


그러던 어느날 이번에는 에펜디가 죽임을 당한다. 슬픔에 빠질 겨를이 없는 세큐레는 재빨리 상황을 판단하고 카라에게 일을 지시한다. 사람을 매수하여 남편의 전사를 법적으로 증명하고, 위중한 아버지가 누워있는 척 꾸민 후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결혼식까지 올린다. 카라는 세큐레의 영악함에 놀라지만, 그녀와 부부가 된 것이 꿈만 같다. 하지만 세큐레는 그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기 전에는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없다고 말한다.


카라는 에펜디의 죽음을 보고하기 위해 궁정에 들어가 오스만 화원장과 술탄을 만난다. 카라는 나비, 올리브, 황새 중 한 명이 살인범으로 의심되며, 죽은 엘레강스의 주머니에서 나온 코가 찢어진 말 그림이 범인이 남긴 단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카라는 에펜디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자신이 그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는다. 궁정에 억류된 카라는 3일 내 범인을 밝혀야만 한다.


범인을 찾기에 혈안이 된 카라에게 오스만 화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화가들은 찢어진 코를 가진 말을 그릴 리가 없다. 나는 그들에게 대가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 화가의 길이며, 개인의 스타일은 곧 결점이기에, 무수한 연습을 통해 스타일을 없애도록 엄격히 가르쳤다. 하지만 간혹 사소한 것을 급하게 그릴 때에 숨어있던 결점이 나오기도 한다."


마침내 오스만 화원장은 한 계책을 생각해 낸다. 왕립 서가에 들어가서 비슷한 말 그림을 찾게 해 달라고 술탄에게 부탁한다. 오스만은 그 곳에서 전설로만 내려오던 보물같은 그림들을 보면서 경이로움에 빠져든다. 전쟁으로 인해 주인이 바뀐 할렘의 여자들. 침략자의 화풍을 강요받은 화가들... 페르시아의 위대한 장인 비흐자드는 말년에 스스로 바늘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었다. 화가는 대상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념을 그리는 것이다. 최고의 미는 현상 세계가 아닌 관념(이데아)에 있지 않은가. 장님이 된 화가들은 세상의 더러움이 보이지 않으므로 기억 속에 있는 신의 세계를 더욱 잘 표현할 것이다. 술탄의 고서들을 보며 역사의 흐름에 따라 화풍이 변함을 목격한 오스만 화원장은 자신의 시대도 끝나감을 절감하고, 서고에 있는 비흐자드의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한편 세큐레에게 돌아가지 못할까 봐 절박해진 카라는 술탄의 서고에서 코가 찢어진 말 그림을 찾아낸다. 오스만 화원장은 몽골에서는 말이 더 빨리 달리도록 코를 찢는 풍습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 명의 화가 중 올리브가 몽골 장인의 후손이라고 카라에게 알려준다. 아마도 친구를 죽이기 직전에 올리브의 심연에 깔려있던 몽골의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 나왔을 것이다. 카라는 올리브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황새와 나비와 함께 수도원에 숨어있는 올리브를 찾아 나선다.


아집과 독선


카라 일당이 올리브를 다그치자, 올리브는 두 사람을 죽인 이유를 실토한다. 올리브는 엘레강스가 완성된 그림을 봤다면서 이교도적인 그림이었다는 말을 퍼뜨리는 것이 심히 마음에 거슬렸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 소문을 들으면, 화가들을 해칠 것이며 밀서도 중단될 것이 아닌가. 올리브는 자신의 행동이 코란에 근거한 합당한 살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엘레강스를 죽인 며칠 후, 올리브는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키 위해 에펜디를 찾아갔다고 한다. 올리브는 자아는 악마의 유혹이며 화가의 스타일은 오만이라고 말했지만, 에펜디는 두 화풍이 싸움을 통해 새로운 화풍으로 합쳐야 문화가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신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신의 세계를 표현할 것인가. 인간의 부끄러움, 두려움, 외로움을 나타내어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를 제공하는 것이 예술이 아닌가.


올리브는 에펜디의 이러한 말에 격분하여 순간적으로 그를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엘레강스가 봤다던 그림을 훔쳐서 도망나왔다. 그런데 그 그림은 얼마나 놀라운지! 감히 그림에 그려질 수 없는 미천한 개가 있고, 말이 건방지게 빤히 앞을 쳐다보고 있으며, 바싹 바르고 뒤틀어진 나무가 서 있었다. 이제껏 신이 보는 세상을 위해 완벽한 모습으로 그려졌던 물체들이 생긴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셀렘 2세의 사실적 얼굴이 있었다! 이 그림을 보고 전율을 금치 못한 올리브는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술탄의 얼굴을 지우고 며칠에 걸쳐서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다.


올리브의 그간의 범행을 다 들은 카라 일당은 그를 잡으려고 격투를 벌이지만, 카라는 심하게 다친다. 올리브는 도망을 가면서, 신흥 무갈 제국에서 세밀화가를 모은다니 그리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카라와 세큐레의 결혼식을 뒤늦게 알고 앙심을 품은 하산은 도망치는 올리브를 카라의 친구라고 오해하고 올리브의 목을 내리친다.


그날 밤 올리브의 칼에 죽을 뻔 했던 카라는 간신히 집에 돌아온다. 세큐레는 마지막으로 간호나 잘 하려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그는 간신히 살아나서 불구의 몸이 된다. 가부장적 일부다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랑은 뒷전인 모성적 여인 세큐레. 이러한 그녀 옆에서 카라('검다'는 뜻이다)는 마음을 태우다 못해 속이 시커먼 숯이 되어 20여 년을 더 살다가 죽는다.

 

소통을 향하여


이제 노년의 세큐레는 미완성으로 남은 밀서 이야기를 작가가 된 둘째 아들 오르한에게 들려준다. 오르한은 거침없이 이야기를 꾸며내어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빨강은 생명의 원천이 되는 피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저지르는 폭력의 피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류의 문명은 문화 자체보다도 인간이 흘린 무수한 피의 수혜를 더욱 많이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는 등장 인물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번갈아 이야기를 한다. 카라는 사건 해결을 위해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자신의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타인에게 순수하게 마음을 열었던 카라. 그가 결국 꼬인 사건을 풀어내지 않았는가.

 

우리의 이름을 소통과 평화라고 개명할 날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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