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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선과 악, <폭풍의 언덕>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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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1,663회 작성일 15-12-0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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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선과 악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의 폭풍의 언덕(Wurthering Heights)을 읽고
                                                                                                                                                김미연
 
우리는 종종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그럴 줄 몰랐는데’ 하면서 사람 자체를 의심하며 관계를 단절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심성에는 다양한 감정이 깔려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부침(浮沈)을 겪는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은 인간이 고립되면 악이 자리를 틀고, 그 악이 다른 인간을 폭풍으로 휘몰아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애증이 대를 물리고

1801년 영국,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런던에 사는 소설의 화자는 기차, 증기선 등 자고 나면 변하는 세상이 불안하기 그지 없다. 그는 평화로운 전원을 찾아 시골 요크셔 지방에 가서 린튼가의 저택에 세를 든다. 그는 대저택의 집주인인 히드클리프가 초라한 워터링 하이츠(이하, 하이츠)에 사는 것이 의아하다. 궁금해하는 화자에게 가정부 넬리(Nelly)는 어언쇼와 린튼가의 3대에 걸친 내력을 들려준다.
 
30여 년 전,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에 위치한 하이츠의 주인은 자영농을 경영하는 어언쇼였다. 그는 어느 날 리버풀에 갔다가 집시 꼬마를 주워온다. 당시 대도시의 뒷골목에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빈민굴 아이들이 넘쳐났다. 어언쇼는 자신의 죽은 맏아들의 이름을 따서 그를 히드클리프(Heathcliff)라고 부르며 자신의 아이처럼 교육을 시키며 키운다. 친아들 힌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히드클리프를 질투하지만, 딸 캐서린(Catherine)은 그를 좋아한다. 엄마가 일찍 죽은 캐서린은 히드클리프와 황량한 들판을 뛰어다니며 친구가 된다.
 
10년 후 아버지가 죽자 힌들리는 히드클리프를 학대하며 그를 하인으로 만든다. 힌들리는 타지에서 여자를 데려와 아들 헤어톤을 낳지만 산모는 곧바로 죽는다. 캐서린은 '자신보다 더 자신 같은' 히드클리프를 사랑하지만, 막노동꾼과 결혼하여 자신의 신분을 강등시킬 수는 없다. 캐서린은 치안판사의 아들 에드가 린튼(Edgar Linton)에게 시집을 가기로 한다. 이 사실을 안 히드클리프는 가출하여 종적을 감춘다. 캐서린은 히드클리프가 사라지자 정신 착란을 일으키며 정신병의 조짐을 보인다.
 
마음이 약한 에드가는 성정이 강한 캐서린의 비위를 맞추며 둘은 겉으로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 3년 후 성공한 히드클리프가 하이츠에 돌아온다. 히드클리프의 귀환을 너무나 기뻐하는 캐서린을 보고 에드가는 질투를 느낀다. 에드가가 히드클리프의 출입을 금지하자 캐서린은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 정신병이 도진다. 히드클리프는 힌들리에게 세 들어 살면서 노름으로 그의 재산을 차츰 앗아간다. 술과 노름으로 이성을 잃어가는 힌들리에 비해 히드클리프는 점차 하이츠의 주인으로 군림한다. 히드클리프는 힌들리의 어린 아들 헤어톤을 하인으로 만들어 자신이 어린 시절 힌들리에게 당한 모욕을 그대로 복수한다. 
 
한편 히드클리프는 에드가가 아들이 없으면 그의 여동생 이사벨라가 상속녀임을 알게 된다. 히드클리프는 자신에게 반한 이사벨라를 꾀어 결혼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곧 히드클리프에게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당해 자신의 처지에 절망스러워 한다.
 
 

증오는 증오를

 시누이가 히드클리프와 결혼하자 병이 악화된 캐서린은 죽기 전에 히드클리프와 열렬한 재회를 한다. 캐서린은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했기에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하고, 히드클리프는 그녀가 자신을 배반하고 에드가를 택한 죄값을 받고 있다고 서로를 맹렬히 비난한다. 그녀는 딸 캐시를 조산하고 죽는다.

 
이사벨라는 캐더린의 죽음으로 거의 정신이 나간 히드클리프에게 폭행을 당하고 런던으로 도망가서 아들 린튼을 출산한다. 아내를 잃은 에드가는 지상의 기쁨은 순간이라 생각하며 하느님께 의지하며 산다. 그는 딸 캐시를 곱게 키우며 그녀가 하이츠와의 관계를 알까 봐 밖으로 다니지 못하게 한다. 이사벨라가 죽자 에드가는 12살된 조카 린튼을 데려오지만 그의 아버지 히드클리프에게 빼앗긴다. 히드클리프는 자신을 전혀 닮지 않은 심약한 아들에게 실망을 하고 그를 잔혹하게 다룬다.
 
히드클리프는 허약한 린튼이 병이 들자 그가 죽으면 린튼가 재산이 캐시에게 갈 것을 염려하여 두 사촌남매를 결혼시킬 궁리를 한다. 그는 벌판에서 마주친 캐시를 억지로 하이츠로 데려가 린튼과 만나게 하고, 둘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연인으로 발전한다. 캐시는 사촌인 헤어톤도 처음으로 만나지만 무식한 일군인 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 
 
히드클리프는 죽어가는 린튼을 인질로 삼아 캐시를 꾀어서 강제로 결혼을 시킨다. 그 즈음에 에드가가 죽자 히드클리프는 변호사를 매수하여 에드가의 재산을 다 가로챈다. 무일푼이 된 캐시는 그녀를 평생 돌본 유모 넬리와도 떨어져 낯선 하이츠에서 살게 된다. 캐시는 린튼의 간호를 떠맡아 정성껏 간호하지만 그는 한 달도 못되어 죽는다. 그녀는 히드클리프와 헤어톤을 적대시하며 독서에 마음을 붙이며 산다.
 
책을 전혀 보지 않는 히드클리프는 집안의 모든 책을 다 없앤다. 글을 모르는 헤어톤은 캐시가 좋아하는 책 몇 권을 몰래 보는데 캐시는 이러한 그를 비웃는다. 하지만 그녀는 헤어톤이 그 동안 히드클리프에게 사정을 하여 자신을 도우려 했음을 알게 된다. 헤어톤은 자신이 비록 무식하지만 캐시에게 인정받고 싶다. 캐시는 그에게 글을 가르치고 그는 자신이 어언쇼 집안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점차 회복해 간다.
 
히드클리프는 캐시와 헤어톤이 서로 미워하기를 바랐지만, 두 사촌의 관계는 사랑으로 발전한다. 하이츠에 서린 음침한 기운이 점차 사라지자 그의 증오는 괴력을 잃어간다. 그는 밤마다 캐서린의 유령과 벌판을 헤매다 돌연히 죽는다. 마침내 캐시와 헤어톤은 결혼에 이르고 어언쇼와 린튼가는 애증의 관계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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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
 
에밀리 브론테는 1847년에 <폭풍의 언덕 (Wurthering Heights)>이라는 낭만주의적 소설을 발간했다. 중세의 성을 배경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영국의 소설이 유행이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빈민 출신의 가난한 목사였으며 감수성이 풍부한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우울한 아버지와 엄격한 이모의 영향으로 브론테 세 자매들은 집보다는 자연과 더 가까웠다. 그들은 히드꽃이 피는 요크셔의 벌판에서 글놀이를 하면서 문학 수업을 하여 모두 작가가 된다.
 
학교도 거의 다니지 못하고 친구도 없던 작가는 자신의 배경을 소설로 옮긴다. 주인공 히드클리프는 빈민 출신이며, 캐서린은 엄마 없는 아이다. 이모는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죄악시하는 하이츠의 늙은 하인 죠셉으로, 술과 아편으로 일찍 죽은 작가의 오빠는 힌들리의 모델로 소설에 등장한다.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영국은 세습 신분에 대한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하층민 출신의 폭력적인 주인공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방종한 평민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젠트리 가문을 전복시킨다. 가부장적 사회 질서와 순종적인 여성이 강조되던 빅토리아 시대에 <폭풍의 언덕>은 독자들의 공감을 별로 얻지 못했다. 작가는 남성 펜네임으로 소설을 발표한 후, 다음 해에 30세의 나이로 죽는다. 그녀의 사후에 진짜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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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공존

어언쇼와 린튼가는 황량한 들판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언쇼가는 거칠게 날뛰는 악, 린튼가는 약하고 다치기 쉬운 선을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의 심성에는 그 중간에 해당되는 감정들이 황야처럼 널려 있다. 우리는 그 감정들을 거쳐서 어느 쪽으로든 나아간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연민(sympathy)이라는 기재가 있어서 선으로 갈 수 있다. 히드클리프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힌들리에게 학대를 당해 선의 감정이 아예 차단된다. 복수에 집착하는 그는 사람을 미워함이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형벌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까지 서로를 미워하는 불행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
 
당시는 사람들의 수명이 짧았기에 등장인물들은 삶과 죽음을 가깝게 느낀다. 잠시 머무는 삶을 거쳐 궁극적으로 가는 천국은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사랑과 생명이 지속되는 곳'이다. 넬리는 캐서린이 죽은 후 그 모습이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토록 이기적인 사람도 구원을 받았는지 의아하지만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창조주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히드클리프에게도 인간을 벌함은 하느님의 몫이라고 말해주지만, 그는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악의 번성

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히드클리프는 인간이 가진 두려움을 이용한다. 그에게 학대 받는 린튼은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 정신적인 성장이 멈춰 버린다. 그는 결국 자신의 아들을 일찍 죽게 만든 것이다. 자만심에 찬 캐서린도 자기 마음의 '뾰족한 가시'를 숨기고 에드가와 결혼하고, 그는 처음에는 그녀를 '푸른 넝쿨'처럼 감싼다. 하지만 연적이 나타나자 에드가는 변한다. 인간은 실존에 휘둘리므로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으면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캐더린과 히드클리프처럼 진실은 없이 인간의 심성을 가지고 장난치면 결국 자신이 황폐해진다. 
 
린튼은 폭군처럼 캐시를 괴롭히고, 약자처럼 애원도 하면서 그녀를 조정한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가 유일한 관심사인 그도 동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감금당한 캐시가 자신의 아버지의 임종을 보고 싶다고 울부짖자, 히드클리프에게 혼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캐시를 꺼내준다. 히드클리프도 순간적으로 흔들릴 때도 있다. 캐시는 자신을 때리는 히드클리프에게 아저씨는 그래도 악마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캐시의 진심어린 말을 듣자 히드클리프는 당황한다. 또한 그는 헤어톤이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기를 바랐지만 헤어톤은 히드클리프를 미워하지 않는다. 죽기 얼마 전 히드클리프는 저도 모르게 헤어톤을 향해 미소를 짓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이처럼 인간은 악으로만 마냥 치달을 수도 없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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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향하여 

착하기만 한 순수함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순진한 캐시와 그녀의 고모 이사벨라는 히드클리프 같이 평생 미움을 품고 복수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사벨라는 결혼 후 그에게 헌신을 하면 사랑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처음에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유 없이 점점 심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그를 향해 살기가 치솟기도 한다. 폭력은 양날의 칼과 같아 찌르는 사람이 더 크게 다침을 깨달은 그녀는 아이를 낳고 혼자 키울 정도로 강인해진다.
 
캐시는 하이츠에서 살면서 난생 처음으로 고통을 겪는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벽을 쌓고 사람들을 다 적대시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히드클리프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녀는 린튼을 미워하지 않고 측은하게 생각한다. 두 남자를 이용했던 그녀의 엄마와는 달리 캐시는 두 사촌에게 차례로 누이 같은 사랑을 베풀어 관계를 회복시킨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가정부 넬리는 독서를 통해 자신을 통찰(discipline)하는 능력을 기른다. 책을 통해 인간의 심성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니 주변 인물들에게 적절한 충고를 할 수가 있다. 혼자 남을 딸을 걱정하는 에드가에게 선을 이루는 하느님을 믿고 편안히 안식하라고 말한다. 또한 인간이 가진 동정심과 두려움을 이용하는 히드클리프 부자에게 속지 말라고 순진한 캐시와 이사벨라에게 충고도 한다. 이처럼 그녀는 매일의 주변 인물들을 진정한 관심으로 대한다.
 
화자는 처음에는 시골에서 은둔생활을(hermit) 하면 자신의 사고가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히드클리프를 통해 그 반대의 현상을 목격한 그는 그곳을 서둘러 떠난다. 문명을 등지고 교육이 없으면 인간은 야만 상태로 돌아간다. 거기다가 교류까지 없으면 자신의 자아에 갇히고 악은 그 황량한 곳에 자리를 튼다.
 
인간의 심성에는 선과 악을 향하는 감정들이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사랑이 있기에 선으로 갈 수 있다. 지상의 모든 사랑은 연민이며 노력이기에 우리도 넬리처럼 매일 조금씩 선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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