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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와 이성,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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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2,243회 작성일 14-08-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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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와 이성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 <빌러비드 (Beloved)>를 읽고
                                                                                                                                                         

 
 

 
토니 모리슨(1931-)은 흑인 노예를 주제로 다수의 소설을 썼다. 1987 년에 쓴 <빌러비드>로 퓰리처상을 타고 199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그녀 이후로 노벨상을 탄 미국 작가는 아직 없다. 소설 빌러비드의 배경은 1865년-1877년 사이이다. 1865년은 남북 전쟁이 끝난 해로서 노예제가 법적으로는 폐지되지만 남부에서는 여전히 노예 농장이 계속되고 있었다. 동시에 많은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북으로 떠나기도 했던 시기이다. 1855년에 켄터기의 여자 노예가 자녀 중 한 아이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모리슨은 이를 소재로 소설 빌러비드를 쓴다.
 
자식을 죽이고
13살의 흑인 소녀 세스는 켄터기에 있는 농장 ‘스위트 홈’에 팔려온다. 주인 부부 가너는 노예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했고 그들은 나름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할리와 폴디를 위시한 다섯 명의 남자 노예들은 세스가 배우자로 누구를 선택할지 모두 가슴을 졸인다. 할리는 어머니와 같이 스위트 홈에 살고 있었는데 다리를 저는 노모에게 자유를 사주기 위하여 주일까지 일을 하여 빚을 갚아간다. 마침내 빚을 다 갚은 그는 어머니를 북부에 속한 신시내티에 보내서 살게 한다. 가너 부인은 부엌일을 시킬 노예로 세스를 사왔으며, 세스는 믿음직해 보이는 할리를 선택하여 옥수수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세스와 할리는 세 명의 아이를 낳고 그런대로 잘 지낸다. 
 
가너씨는 노예들을 너그럽게 다룬다는 이유로 어느 백인 농장주의 질투를 받아 죽임을 당한다. 가너씨가 죽자 가너 부인의 인척인 학교 선생이 조카들을 데리고 새 주인으로 온다. 선생은 노예들을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동물로 취급하고, 노예들은 견디다 못해 탈출을 결심한다. 세스는 세 아이들을 마차에 태워 시어머니 집에 먼저 보내 놓는다. 도망을 가기로 한 날, 세스는 넷째를 임신한 몸으로 주인 조카들에게 강간 폭행을 당하고, 이를 목격한 할리는 정신이 나가서 탈출을 하지 못한다. 이것을 모르는 세스는 할리를 기다렸지만 그는 나오지 않는다. 강으로 도망치려던 폴디는 잡혀서 입에 쇠재갈이 물려지고, 다른 노예들은 팔리거나 산 채로 불태워지거나 목이 베어 죽는다.
 
세스는 탈출 중에 도망 중인 백인 하녀를 만나서 막내딸 덴버를 낳는데 도움을 받는다. 갖은 고생 끝에 처참한 몸으로 세스는 여러 흑인들의 도움을 받아 시어머니 베이비 서그가 사는 신시내티의 집 124번지에 도착한다. 베이비는 그 동안에 동네 숲 속 공터에서 흑인들에게 설교를 하는 설교사가 되어 있었다. 베이비는 흑인들의 신망을 얻고, 124번지는 도움이 필요한 흑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마을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세스는 아이들과 합류를 하고 시어머니의 극진한 돌봄을 받고 살아난다.
 
하지만 한 달 후 어느 날 스위트 홈의 선생이 세스를 잡으러 온다. 추격을 피해 달아나던 세스는  두살 난 큰딸이 자신과 같은 운명에 놓일까봐 톱으로 목을 잘라 죽인다. 돈이 없는 세스는 석공에게 몸을 팔아 ‘빌러비드’ 라는 이름을 새긴 묘석을 무덤에 세워준다. 세스는 젖먹이 덴버를 데리고 감옥에 갇히고 사형 선고를 받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이 사건 후에 124번지에는 아기 유령이 나타나고, 할머니는 우울증을 앓다가 죽고, 두 손자는 집에서 도망간다. 페허가 된 집에 세스와 덴버만 남고 결국 동네 흑인들에게도 고립 된다.
 
한편 스위트 홈의 노예 폴디는 세스가 탈출한 후에 다른 농장으로 팔려가 짐승처럼 취급된다.  새 주인을 죽이려다 조지아 수용소와 감옥에 갇히며 오랜 세월을 보낸다. 밤에는 목을 묶인 채 땅 속 우리에서 잠을 자고 간수들에게 구강성교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지옥 같은 노예 생활을 견디기 위하여 그는 철통같은 심장을 만들고 감정을 다 죽여 버린다. 우연한 기회에 폴디는 감옥을 탈출하여 흑인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북부, 세스가 있다는 오하이오로 올라온다. 북부로 가던 중 여인과 동거하기도 한다. 한편 덴버와 고독하게 살던 세스는 폴디를 만나자 쇠덩이 같던 마음이 다소 풀어지고 그와 새로운 생활을 꿈꾼다.  폴디는 스위트 홈 시절에 세스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단지 그녀에게 얹혀서 사는 생활에 안주하고자 한다.     
 
세 식구가 카니발에서 놀고 들어온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인 처녀 빌러비드가 쓰러진 채 문앞에서 발견되고, 세스와 덴버는 오갈 데 없는 그녀를 거둔다. 폴디는 이 처녀를 수상히 여겨서 내쫓으려 하지만, 덴버는 언니 유령이 살아왔다고 믿고 극진히 돌본다. 빌러비드는 세스와 덴버의 돌봄을 받으며 124번지를 장악하고 마침내 폴디를 유혹한다. 한편 폴디는 세스가 큰딸을 죽인 사건을 알게 되자 세스를 떠난다. 폴디가 떠난 후 세스는 빌러비드를 죽은 딸의 환생이라고 믿게 되면서 하루 종일 그녀의 비위를 맞추며 정신이 이상해진다. 빌러비드는 모든 음식을 먹어 치워 나날이 뚱뚱해지는 반면에 세스는 날로 여위어간다. 빌러비드는 세스를 엄마로 착각하고 집착하는데 애증이 교차한다.
 
한편 덴버는 빌러비드의 이상야릇한 행태와 엄마의 정신 이상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웃에게 도움을 청한다. 사람들은 도움을 주기 위하여 124번지에 대거 몰려온다. 배가 만삭인 빌러비드는 사람들을 보자 순식간에 사라지고, 폴디는 병들어 누운 세스를 돌보기 시작한다. 덴버는 동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교육의 기회도 얻고 정상적인 처녀가 되어간다.
 
 
 
 
 
세스의 동물적 모성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자식의 위기를 경험하지만  자식의 인생살이에 부는 바람을 막아줄 능력이 없다. 그 바람으로 인해 자식이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만큼은 무조건 피해가게 하고픈 모성, 그 무분별하고 사람을 잡는 감정에 휘둘린 세스의 모성은 살인이라는 악으로 나타난다. 자식을 향한 세스의 일련의 행동들은 다분히 동물적이다. 시어머니 집에서 자식들과 재회하자 아이들과 뒤엉켜 끝도 없이 뒹굴고 핱고 쓰다듬는다. 자신을 추적하는 선생에게 몰리자 마치 매가 새끼들을 낚아채듯 네 아이를 움켜쥐고 헛간으로 숨어들어 아이들에게 위해를 가하고 큰딸의 목을 톱으로 벤다. 극한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동물적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면 인간은 결국은 파괴로 갈 수 밖에 없다. 주술적 미신을 믿고 배움도 없어 이성적 사고가 전혀 없는 세스는 충동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감사해야 하건만
세스는 감옥을 다녀온 후에 가책으로 인해  과거에 사로 잡히며, 두 아들은 엄마가 두려워 도망가고, 덴버 역시 고립되어 외롭게 산다. 하지만 돌연히 나타난 폴디와 지난 일을 회상하는 중에 과거 자신의 객관적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다른 농장의 흑인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스위트 홈에서 할리와 행복했었고 가너부인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수정 귀고리도 있었다. 강간으로 생긴 많은 흑인 아기들이 버려졌지만, 자신은 엄마가 사랑하던 남자에게서 생긴 아기였음을 기억해낸다.
 
또한, 팔려 다니느라 가족 관계가 불가능한 다른 흑인에 비하면 세스는 한 남편에게 낳은 네 자녀가 있었고 만신창이가 된 세스를 헌신적으로 간호한 시어머니도 있었다. 긍정적인 생각은 절망을 몰아내건만, 세스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능력이 없다. 아이들을 자신이 만든 유일한 ‘내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어둠 속으로  추락한다. 그러나 생명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며 이에 대한 신의 계획이 어떻게 나타날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타인을 돌보며 힘을 얻고
덴버는 엄마가 언니를 죽였고 자신이 엄마와 함께 감옥에 있었던 사실도 몰랐다. 나중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듣고는 학교를 그만두며 엄마를 두려워한다. 세스는 덴버를 돌보지만 딸의 내면을 모른 체 한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무속 신앙인 부두(voodoo)는 미신적 요소가 짙었으며 덴버의 미성숙한 정신 세계에 유령의 존재는 큰 자리를 차지한다. 무기력했던 덴버는 먹고 자고 단 것에 집착하는 아기 같은 빌러비드를 돌보며 비로소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엄마에게 벗어나 성숙하기 위해서 덴버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언니의 영혼을 위로하며 관계를 회복한다.
 
또한, 나날이 난폭해지는 가해자 빌러비드와 피해자 엄마를 보다 못해 덴버는 동네 사람들에게 나가서 도움을 구한다. 돌봄을 받을 때보다 돌봄을 행하는 과정에서 힘을 얻듯 덴버는 타인을 향한 사랑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적극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자신 안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세상으로 나가 도움을 청한 덴버의 미래에는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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