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세상 무의미한 삶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이방인(The Stranger)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 김미연 북리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김미연 북리뷰


 

무의미한 세상 무의미한 삶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이방인(The Stranger)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

페이지 정보

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72회 작성일 21-05-26 23:45

본문

알베르 카뮈(1913-1969)는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에서 가난한 백인으로 태어났다. 한 살 때 아버지가 일차대전에서 죽었고, 글을 못 읽는 어머니와는 거리감이 있었다. 20세기 초반 양차 대전으로 인해 죽음은 흔한 일상이었고, 사회를 지탱하던 기독교적 가치가 전복되니, 허무주의가 퍼졌다.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에 의지하지 말고, 주체적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실존주의 철학이 소개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카뮈는 <이방인> 1942 년에 발표했고 1957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무관심한 일상


 
(주인공 뫼르소) 3년 전까지는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무척 심심해 했고, 운송회사 직원인 나는 노모를 부양할 능력이 없었다. 어머니는 양노원으로 갔으며 다행히도 곧바로 적응했다. 나는 내 생활에 바빠서 어머니를 보러 간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는 전보가 왔다. 나는 장례식에 가려고 이틀 휴가를 신청했다. 주말을 합하여 4일을 쉬니, 보스는 싫어했지만 이것은 내 탓이 아니지 않는가.


 
장거리 버스를 타고 몇 시간에 걸려 양노원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평소에 종교에 관심이 없었는데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한다니 좀 의아했다. 장의사는 두 번이나 고인의 얼굴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노인들은 한결같이 눈물을 흘렸다. 고인과 친했던 '약혼자'라는 노인은 서럽게 울었다. 자신들에게도 곧 닥칠 일에 대한 슬픔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밤샘 예절을 하는 방의 불이 너무 밝아 부분적으로 꺼달라고 했더니 다 끄든지 다 켜든지 양자 택일하라고 했다. 무엇이든지 동일해야지 다른 것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다. 나는 피곤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카푸치노를 마셨고, 담배도 피웠고, 졸기도 했다. 노인들은 이런 나를 살피는 시선으로 보았다.


 
장례식 날 아침은 태양이 작열했다. 나는 질식할 것 같은데, 양노원 사람들은 엄숙하게 행렬을 따라갔다. 빨리 걸으면 땀과 오한이 나고, 천천히 걸으면 화상을 입을 것이다. 저 뜨겁고 단조로운 태양을 벗어날 방도는 결코 없는 듯 했다. 이 불편한 장례를 끝내고 알제리로 돌아오니 기뻤다. 주말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오늘은 태양이 잔잔하고 따뜻했다. 나의 이름 뫼르소는 태양 바람 바다란 뜻이다. 무심하게 변하는 자연처럼 내 기분도 수시로 달라진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바닷가로 수영을 갔다. 우연히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서 해변에서 놀고 영화도 보고 잠도 같이 잤다. 일상은 우연한(chance) 일의 연속이다.


 
어머니는 죽어서 매장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타인의 죽음은 별 특별한 일도 아니어서 곧바로 잊혀진다. 월요일이 되자 나는 평소대로 출근하여 열심히 일을 했다. 보스가 나에게 파리로 파견 근무를 권했지만, 이 곳 생활이 불행한 것도 아니라서 싫다고 했다. 삶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 아닐까? 아니 인간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는 있는 것인가? 이런 나를 보스는 야망이 없다고  한심해 했다.


 
퇴근 길에 이웃에 사는 살라마노 영감과 개를 만났다. 서로를 끌다 밀다 넘어져서, 주인은 항상 화가 나 있고 개는 늘상 공포에 떤다. 같이 오래 살아서 닮은 모습인데도 서로를 지독히도 미워한다. 어느 날 개를 잃어버린 영감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욕하면서도 없으면 안되는 애증의 관계. 어머니도 혼자서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집에서는 나만 쳐다봤고, 양노원에서도 '약혼자'와 늘상 같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에게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순간의 욕구


 포주라는 소문이 있어 사람들이 피하는 레몽도 같은 아파트에 산다. 하지만 나는 그를 피할 이유가 없다. 레몽은 자신의 아랍인 정부가 바람을 피는 것 같아서 며칠 전에 내쫓았다. 그런데 그녀를 집으로 회유하는 편지를 나에게 써 달라고 했다. 그는 소세지와 와인을 내게 대접했고, 나는 정성껏 편지를 써 주었다. 정부가 돌아오자 그는 그녀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경찰까지 출동했다. 레몽은 나에게 브랜디를 사 주면서 그녀가 바람을 폈다는 증언을 경찰서에 가서 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나는 해 주었고 레몽은 경고만 받았다.
 
레몽은 감사의 표시로 나와 마리를 자신의 친구의 비치 하우스에 초대했다. 우리는 즐겁게 놀았다.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이 중요하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사랑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면 결혼하겠다고 했다. 인간은 적응하기 마련이니 누구와 결혼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해변가에서 아랍인 두 명과 마주쳤다. 그들은 시내에서부터 우리를 따라 온 것 같았다. 그 중 한 명은 레몽의 정부의 오빠라고 한다. 샘가 근처에서 레몽은 그들과 싸움이 붙었고 칼에 찔렸다. 나는 레몽의 총을 건너 받았지만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일행이 비취하우스에서 쉬는 동안, 나는 혼자서 다시 산책을 나왔다.


 
어머니의 매장 때 처럼 뜨거운 해가 나를 후려쳤다. 태양을 피하기 위해 시원한 샘가로 갔다. 그런데 아까 싸웠던 아랍인이 그 곳에서 나를 보고 있다가 칼을 빼들었다. 엄청난 땀이 시야를 가리고 빛에 반사된 그의 칼날이 번득였다.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레몽의 총을 꺼내서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쓰러지자 네 발을 더 쏘았다.


타자가 보는 나


나는 체포 되었고, 국선 변호사가 선정되었다. 참으로 좋은 사법제도가 아닌가. 나는 변호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살인범이라니, 무슨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장례식에서 무덤덤했던 이유를 물었다. 복받치는 슬픔을 억제했냐고 물으며 나의 대답을 유도했지만 나는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족들이 죽었으면 하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아마도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나는 그 때 피곤하고 몽롱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가버렸다. 나는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포기했다.


 
예심판사가 나를 취조했다. 변호사의 불참으로 묵비권이 허용됐지만 나는 대답을 했다. 어머니를 양노원에 보낸 이유를 묻기에 나는 돈이 없었고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고 불만이 없었다고 답했다. 판사는 내가 살인의 의도를 가지고 샘가로 다시 갔냐고 물었고, 나는 어쩌다 보니 거기로 갔다고 답했다. 왜 쓰러진 아랍인에게 다시 총을 쏘았냐는 질문에는 태양이 떠 올랐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십자가를 흔들며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신을 믿지 않는 나같은 사람은 구제받기 힘들며,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참회를 하는데 나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그의 사고가 이해되지 않았고, 계속 덤비는 파리로 인하여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입을 다물고 그에게 동의하는 척 했다.


 
나의 재판날이다. 법정을 가득 메운 배심원, 기자, 방청객들은 흥미롭게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평소에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데 나 때문에 저 많은 사람이 왔다고 한다. 파리에서 온 기자는 요즘 뉴스 거리가 없어서 나의 케이스를 부풀리기로 했단다. 나는 하마터면 고맙다고 할 뻔했다. 변호사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할터니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했다.
 
양노원 사람들이 검사측 증인으로 나왔다. 그들은 어머니가 양노원에 보내진 것에 대해 불평을 했으며, 장례식에 온 아들은 울지도 않고, 시신을 보지도 않고, 담배를 피우고, 잠을 자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나를 향한 그들의 적의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


 
피고측 증인으로 나의 친구들이 나왔다. 단골 식당 주인은 내가 진정한 남자이며 그날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같은 말을 어눌하게 반복하자 검사는 그의 발언을 제지했다. 그 다음은 마리가 증언대에 나왔다. 검사는 그녀에게 나의 어머니를 매장한 다음날의 행적을 물었다. 해변에서 놀고, 코미디 영화에 웃고, 같이 잤다고 말했다. 마리는 자신의 증언이 의도와는 반대로 해석되자 울음을 터뜨렸다. 법조인들이 누구인가. 소시민의 언어를 변형하는 수사학적 기교에 능통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 후에 한 레몽의 증언은 내가 포주와 친구라는 점에서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살라마노는 내가 자신의 개에 친철했고, 어머니가 심심해 했기에 양노원에 보냈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살인의 이유를 물었다. 내가 '태양 때문에...' 라고 더듬거리자 장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이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드디어 배심원의 판결이 읽혀졌다. 나는 직계 존속을 비정하게 묻고 와서, 포주의 치정 사건의 발단인 편지를 쓰고, 아랍인을 쏜 후에 확인 사살까지 하고도 반성이 전혀 없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한이었다. 영혼도 도덕성도 없는 나같은 사람은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이니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식민자와 피식민자 사이에 갈등이 빈번했고, 백인이 아랍인을 죽였다고 크게 문제될 상황도 아니었다.)


허무를 넘어서서


 
감옥은 태양처럼 도망갈 구멍이 없는 곳이다. 살다가 우연히 생긴 일이 한치의 우연도 없는 사법 메커니즘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단두대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정직한 말들은 나를 가두는 덫이 되어 돌아왔다. 마리의 편지도 이젠 더 오지 않았다. 사실 나와 마리를 연결시키는 것은 몸뚱아리 뿐이었다.


 
사형 집행 전날 사제가 나를 찾아왔다. 고통으로 가득찬 감옥의 돌벽에서 신을 보냐고 물었다. 나는 수천번도 더 본 돌벽에서 태양 혹은 마리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 모르는 영역도 존재하며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그는 나의 눈은 가려져 있으니 기도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극도의 분노를 터뜨렸다.


 
자연이 지배하는 세상도 무의미하고 인간의 행동들도 순간의 우연적인 일들에 의해 좌우된다. 나는 무심한 세상에서 무관심하게 살았다. 그렇기에 나와 세상은 닮았다. 하지만 자유가 박탈되자 나는 과거의 덤덤했던 일상들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비로소 깨달았다. 사형 집행은 주로 새벽에 행해진다. 하지만 집행관이 오지 않았으면 새로운 24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그 하루를 기쁨으로 살면 된다. 그렇다. 죽어가면서도 기쁨은 있다. 마치 어머니가 생이 끝나는 지점에서 약혼자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과 타자에 별 관심이 없으며, 감각적 쾌락이 그의 선택의 근거였다. 그래서 미적 실존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감옥에서 고립된 후 그의 얼굴은 돌벽처럼 굳어져 웃지도 못하며 중얼거리며 지낸다. 이처럼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므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유한한 우리가 무한한 하느님을 만나는 종교적 실존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