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팔아먹은 남자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 김미연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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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아먹은 남자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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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79회 작성일 21-05-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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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 1890년에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에 널리 펴졌던 이성주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향으로 낭만주의, 심미주의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감정을 통한 미의 창조가 예술의 목적이며, 도덕을 뛰어넘어서 예술 자체가 목적이라는 예술 지상주의 (art for art's sake)를 옹호했다. 또한 형식과 도덕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당시 빅토리아시대 귀족들의 내적인 타락상을 이 소설에서 자세히 묘사했다.


자신의 미에 눈뜨고


19
세기 말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런던에 사는 화가 바질은 한 파티에서 19세의 귀족 소년 도리안을 만난다. 바질은 허영스런 사교계를 싫어하지만 초상화의 고객인 귀족들에게 가끔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그는 요즘 화단에서 주목을 받는 사실주의 미술에 공감하지 않는다. 팍팍한 현실과 관념을 재연하는 사실주의에는 미가 스며들 여지가 없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찾아 헤매던 화가는 영혼과 육체의 이상적 조화를 보이는 그리스적 미남 도리안을 발견한다. 바질은 도리안에게 모델을 부탁하고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화가는 옥스퍼드 시절의 친구인 헨리경의 방문을 받는다. 역설가(Prince Paradox)로 소문이 난 헨리경은 모델로 서있는 도리안에게 관심을 보인다. 헨리경은 인생 선배로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도리안의 미모는 천재성을 능가하니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이성은 쓸모가 없으며 진리는 눈에 보이는 데 있으니, 감각을 통한 쾌락을 추구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근엄한 화가 바질이 재미없는 도리안은 난생처음 듣는 헨리경의 매끄러운 말에 설레면서 호기심이 생긴다.


 
도리안은 냉혹한 외조부 밑에서 불행한 유년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가 무일푼인 남자와 결혼하자 외조부가 사람을 시켜 사위를 죽이고 딸은 도리안을 낳다가 죽었다. 도리안은 상당한 재산을 물려 받았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은 백지와 같은 소년이다. 헨리경은 도리안이 자신의 말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임을 감지한다. 그는 도리안을 악기로 삼아서 그의 감정의 떨림을 보고 싶다.

 화가가 완성된 그림을 보이자 도리안은 자신의 눈부신 미를 비로소 의식하는 나르시스가 된다. 자신은 나이를 먹는데 저 그림은 영원할 것이다. 그는 그림을 질투하면서 화가에게 그림을 달라고 요구한다. 미모를 가져야 쾌락(pleasure)을 누릴 수 있다는 헨리경의 말, 그 말이 도리안을 끌어당긴다. 나 대신에 저 그림이 늙는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


 
헨리경의 쾌락주의 지론(Hedonism)에 감화를 받은 도리안은 내면에 숨어있던 감정들이 형체를 드러낸다. 어느날 그는 런던의 밤거리를 쏘다니다가 삼류 극장에 들어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본다. 연극은 수준 이하였지만, 17세의 여배우 시빌 베인이 연기하는 줄리엣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날 밤 이후 그는 시빌이 나오는 모든 연극을 보면서 그녀가 연기하는 비극의 여주인공인 오필리아, 데스데모나, 이모겐 등과 사랑에 빠진다. 사교계의 여자들은 판에 박은 듯 비슷하지만, 시빌은 그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시빌 역시 돈이 많아 보이는 이 '프린스 차밍(Prince Charming)'에게 빠져든다. 시빌은 엄마와 남동생의 생계를 책임진 소녀 가장이다. 남동생 제임스는 신분을 밝히지 않는 누나의 애인에 대하여 불안하기만 하다.


쾌락을 찾아서


 도리안은 헨리경과 바질을 자신의 약혼녀 시빌의 연극에 초대한다. 그날 밤 그녀의 연기는 형편 없었다. 인위적이고 과장된 연기에 관객은 야유를 퍼부었고, 헨리경과 바질도 실망을 감추면서 돌아갔다. 도리안은 무대 뒤로 가서 시빌을 비난한다. 그는 극장 주인에게 진 그녀의 빚을 갚고 그녀를 중앙무대로 진출시켜 훌륭한 예술인으로 키우고자 했던 것이다.


 시빌은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예술은 참사랑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이제 현실에서 사랑을 찾았으니 허구인 극중 인물에게 몰입하기가 싫어졌다고 말한다. 도리안은 매달리는 그녀를 뿌리치고 나온다. 그날 밤, 도리언은 자신의 아름다운 초상이 변했음을 보고 놀란다.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했던 '젊음을 위해 영혼을 팔아도 좋겠다'는 말이 생각났다. 어찌 된 일일까? 나의 영혼과 캔버스의 물질이 교감한 것일까? 그는 심한 자책을 하면서 시빌과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뜻은 항상 너무 늦게 이루어진다. 다음날 도리안은 시빌이 독극물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접한다. 헨리경은 그에게 그녀의 죽음에 연루되어 경찰 조사를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한다. 두려워진 도리안은 그녀가 자신을 '프린스 차밍'으로 알고 있기에 일단 안심한다. 그녀는 비극의 여주인공을 연기하다가 여배우답게 죽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나의 죄는 씻김을 받았으니 나는 그 성찬을 즐기면 된다! 자신의 인생을 연극처럼 구경하면 된다고 헨리경이 말했고, 나는 다행히도 연극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박카스 축제에 참여한 신들처럼 즐겁게 사는 일만 남았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몇 달 후 화가 바질은 도리안을 찾아온다. 파리 전시에 초상화를 전시하고 싶으니 잠시 빌려 달라고 한다. 도리안은 무섭게 화를 낸다. 처음에는 전시를 않겠다고 하더니 왜 마음이 변했냐고 따져 묻는다. 화가는 어쩔 수 없이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는다. 예술가는 자신의 그림과 거리를 두어야 하건만, 도리안에 대한 로맨틱한 감정과 자신의 뮤즈로 독차지하고픈 마음이 붓질에 투영되어 사람들이 알아차릴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도리안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보니 생각이 정리되었다. 예술은 추상적이라서 세상에 일단 나가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자적 생명을 지닌다. 그래서 전시를 해도 괞찬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도리안은 끝내 그림을 빌려주지 않는다. 흉하게 변한 그림을 어떻게 보일 수가 있는가. 자신의 영혼 파멸을 실시간으로 보이는 그림을 누가 볼까 두려워서 이미 다락방에다 숨겨 놓았다.


 
그 후 도리안은 화가와 연락을 끊는다. 대신에 헨리경과 어울리며 사교계의 왕자로 군림한다. 도리안은 패션을 리드했고, 그의 럭셔리한 파티에 누구나 초대되길 바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이상한 소문도 나돌았다. 가끔 장기 비밀 외출을 하며, 변장하고 매음굴, 아편굴을 출입하며, 그를 가까이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끝이 안 좋다고 한다. 런던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이들이 가문에서 쫓겨나거나 자살하거나 종적을 감추었다. 소문이 악의 꽃처럼 피어났지만, 사람들은 그의 천진한 얼굴을 대하면 믿지 않았다.


추함은 추함으로 잊고


 도리안은 음악과 시와 미술을 감상하면서 심미적 쾌감에 빠져든다. 자신의 진귀한 예술품 컬렉션을 보고 있노라면 망각이라는 기재는 그의 악행을 잊게 해 준다. 쾌락과 호기심은 충족되면 될수록 더욱 허기가 진다고 했던가. 예술에서 더는 위로받지 못하자 원시인의 야만적인 소리와 춤, 음모와 독살에 사용했던 기괴한 물건들, 야릇한 향에 탐닉한다. 그럴수록 초상화는 더욱 추해지고 일그러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우니.


 20
년의 세월이 흘렀다. 바질은 예술의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는 파리로 가기 위해 오늘 밤 자정에 기차를 탈 예정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그는 도리안을 찾아가서 떠도는 추문의 진위를 캐어 묻는다. , 너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만 있다면이 말에 흥분한 도리안은 그를 꼭대기 방으로 데려간다. 그림을 덮어놓은 헝겊이 걷히며 나타난 추악한 호색한의 모습! 충격에 쌓인 화가는 '주홍 같은 너희 죄가 희어질 것'이라며 기도하자고 타이른다. 그 말에 도리안은 쫓기는 짐승처럼 화가를 칼로 공격하여 죽인다. 다 화가의 탓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다! 이제 뒤처리가 급해진 도리안은 지금은 멀어진 친구인 화학자 캠벨에게 연락하여 시체를 소각하라고 한다. 그가 거절하자, 도리안은 과거에 함께 벌인 남색 행각을 폭로하겠다고 하니, 그는 할 수 없이 요구를 들어준다.


 
자신의 살인은 이제 세상에서 종적을 감췄다. 도리안은 추악함은 추악함으로 잊기로 했다. 누런 해골 같은 달밤에 도리안은 선창가 아편굴로 향한다. 거기에는 그로 인해 아편중독자가 된 청년과 몸을 망쳐 창녀로 전락한 처녀도 있다. 그런데 우연은 참 묘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원이 된 시빌의 남동생 제임스는 누이를 죽게 한 '프린스 차밍'에게 복수하고자 그간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허사였다. 그런데 그는 이 부둣가에서 한 창녀가 지나가는 남자에게 '프린스차밍'하며 비아냥 소리를 우연히 듣는다. 제임스는 부리나케 그 남자를 쫓아가 '네가 이십년 전에 우리 누이를 죽였다'며 덤벼든다. 당황한 도리안은 곧 침착을 회복하여 '당신의 누이와 내가 비슷한 나이여야 할 텐데, 내 얼굴을 보라'고 말한다. 제임스는 어린 얼굴을 발견하자 미안하다며 그를 놓아준다.


 
제임스가 자신을 쫓고 있음을 안 도리안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헨리경은 요즘 런던이 바질의 실종과 화학자 캠벨의 자살로 떠들썩하다고 알려준다. 도리안은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친구들과 함께 시골 영지에 내려온다. 같이 온 한 백작 부인과 희롱을 주고받던 도리안은 창밖에서 들여다보는 제임스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친다. 하루는 사냥하던 중 일행이 실수로 쏜 총에 맞아 한 낯선 몰이꾼이 죽는 사고까지 일어난다. 불길한 예감이 든 도리안은 죽은 자가 제임스임을 확인하고는 너무 기뻐한다.


신성한 양심


 
이제 바질도 제임스도 다 죽었으니 도리안은 안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신성한 것, 양심은 독자적 힘을 발휘하여 그를 계속 괴롭혔다. 그림 위에 생겨난 저 피같은 붉은 방울들. 자신의 실패는 그 초상화에 대고 한 기도에서 시작되었다. 죄는 지을 때마다 벌을 받으면 정화되는 것을, '우리 죄를 사'하여가 아니라 '우리 죄를 벌'하라고 기도할 것을. 이제부터는 선행을 베풀어야겠다. 마음을 고쳐먹은 도리안은 최근에 꼬신 시골 처녀를 그대로 둔 자신이 너무 대견스럽다. 초상화가 이제 조금 나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림은 더욱 흉악해졌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은 도리안은 칼을 높이 쳐들었다. 저 그림이 나를 질식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그림을 없애야겠다. 칼로 초상화를 내리치는 순간 광폭한 비명이 온 집안에 퍼졌다. 놀란 하인들은 다락방에서 흉측한 늙은이의 시신을 발견하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시신의 손에 낀 반지는 그가  도리안임을 확인해주었다. 시체 옆에는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가 우뚝 서 있었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헨리경은 진정한 선이란 자신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질은 그렇다면 양심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냐고 반기를 든다. 당시에 식민지를 근거로 막대한 부가 영국으로 흘러들어 사치를 누리다 못해 권태롭기까지 한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들은 예술 지상주의에 빠져들었다. 생존의 현실감이 없으니 자신의 삶도 연극처럼 구경한다. 하지만 가난한 무명배우 시빌은 삶이 예술보다 먼저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넘침과 과함을 추구하는 인간. 그렇지만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영원한 젊음이 결국 도리안의 멸망을 초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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