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육체의 화해 -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 김미연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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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북리뷰


 

영혼과 육체의 화해 -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를 읽고,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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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72회 작성일 21-05-2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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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영혼은 별개의 것인가? 이성과 감정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1883-1957)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두 등장인물을 통해 이 문제를 파헤친다. 소설의 화자인 ''는 합리적 사고를 하지만, 주인공인 조르바는 즉흥적인 감정에 이끌린다. 카잔차키스는 과학주의 및 합리주의가 세상을 이끌던 19세기 말에 태어났다. 인간의 이성이 두드러지며 인류의 미래가 마냥 희망차게 보였다. 하지만 그 자랑스럽던 이성이 다다른 지점은 양차 대전이었다. 또한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이, 터키 지배하의 그리스는 독립 전쟁이 곳곳에서 발발했다. 사람의 목숨이 벌레와 같았고, 신에 대한 회의가, 인간에 대한 절망이 시작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작가는 1943년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발간했다.


현실을 보고자


 1930년대 크레타 섬. 소설의 화자인 '' 30대의 작가다. 친구들은 나를 책벌레라고 부르며, 생각은 현실의 그림자이니 실체를 대면하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 경험을 하고자 크레타 섬에 있는 갈탄광산을 해 보려고 가는 중이다. 시끌벅적한 항구에서 갑자기 60세가량의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대뜸 자신을 일꾼으로 써달라고 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묻자, 그는 이유 없이 좀 하면 안 되냐고, 그렇게 만사를 계산하는 저울을 달고 다니면 행복하냐고 반문했다. 나는 기가 좀 막혔지만 어차피 일꾼도 필요하기에 그를 데려가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조르바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스라고 부른다.


 
우리는 임시 숙소를 찾던 중 늙은 과부 오르땅스 부인이 운영하는 여관에 들었다. 그녀는 짙은 화장과 향수를 뿌리고 반색하면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는 크레타의 독립투쟁 시절에 프랑스에서 건너와서 카바레 가수로서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당시에 해군 제독들에게 인기가 대단했고, 그들이 섬에다 대포를 쏘려는 것을 수없이 만류했다고 자랑한다. 조르바 역시 그녀의 환대에 맞장구를 치면서 무척 좋아하는 눈치다. 어느 사이에 조르바는 오르땅스 부인과 애인 사이가 되었다.


 
나는 이 고요한 섬이 좋았다. 어차피 짧게 머물다 갈 세상인데 사람들과 복닥거리며 사는 것이 싫었다. 나의 한 친구는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는 것이라면서, 러시아 혁명에 시달리는 동포들을 구하려고 갑카스로 갔다. 나는 이념으로 왜 서로 피를 흘려야 하는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단테와 부다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려 왔다. 그런데 크레타의 춤추는 파도를 보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신음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마케도니아 출신 조르바는 광산 일을 찾아 불가리아, 콘스탄티노플 등을 떠돌며 살았다. 모든 것에 거침없으며 말을 몰라도 음악과 춤으로 소통한다. 그는 한때 그리스 독립군에 가담하여 수많은 터키인을 죽였다. 하지만 전쟁고아들이 길거리에서 굶어 죽는 것을 보니 인종이니 국가니 하는 것이 다 부질없어 보이고, 모든 사람이 불쌍하게만 보였다. 내가 책을 통해 알아가는 문제들을 조르바는 몸으로 체험하여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이제 조르바는 나와 같이 지내면서 매일 아침 음식 만드는 의식을 엄숙하게 거행한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육체가 음식으로 새로와지면, 그의 영혼도 새롭게 피어나는 듯했다. 그는 영혼과 육체는 둘 다 물질이라고 말한다. 만약에 하느님이 말씀으로만 오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말씀이 아이가 되어 우리 눈에 보였기에 오늘날까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조르바는 현재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는 마치 최초의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 아침 보는 사물에도 감격한다. 낮에는 인부들을 지휘하며 탄광 일도 열심히 한다. 갈탄수송을 위한 고가 케이블도 설치한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웠다. 나는 자금을 조달했고, 그는 재료를 사기 위해 도시로 떠나면서 마냥 부풀어 있었다. '수지가 맞으면 여행도 가고 여자도 만나고.' 하지만 조르바는 수지가 맞기도 전에 도시에서 만난 어린 여자에게 빠져서 돈을 다 쓰고 말았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놓기 위해 산꼭대기에 위치한 수도원의 땅을 사려고 올라갔다. 조르바는 자신이 허비한 돈을 만회하기 위해 수도원의 땅을 반값으로 사려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 밤 수도원에서는 작은 총기 사고가 일어났고, 그는 사고를 숨기려는 수사를 위협하여 땅을 흥정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


 
조르바의 진두지휘 아래 케이블카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었다. 별 할 일이 없는 나는 근처 미노스문명의 도시로 산책하러 나갔다. 몇천년 동안 묻혔다가 돌연 떠오른 도시. 깨진 항아리 옆에 장인이 사용했던 정이 구르고 있었다. 영원 속에서 삶은 단 한 번만 나에게 주어진다. 나 역시 이 세상에 있는 즐거움을 다 누리고 가고 싶다. 대지는 생명을 내고 그것을 먹은 후 더 많은 생명을 내고 반복이 계속된다. 영원을 살기 위해서 순간을 희생하라고 말하지만, 매 순간이 곧 영원일지도 모른다. 순간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 것일까?


 
어느 날 저녁 나는 동네에서 창녀라고 따돌림을 받는 젊은 과부의 정원을 우연히 들어갔다. 얼마전에 그녀를 사모한 어떤 총각이 부모의 결혼허락을 받지 못하자 물에 빠져 죽은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 저녁 무심코 들어간 그녀의 정원은 오렌지 꽃과 레몬 꽃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기쁜 듯이 들어 오라고 했다. 내가 새벽녘에 집에 들어가자 조르바는 내가 변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존재는 내 영혼을 흠뻑 적셔주어 나는 난생 처음으로 살이 곧 영혼임을 알게 됐다. 조르바는 전쟁에서 돌아온 아들을 돌보듯 음식을 챙겨 주었다.


이성이 멈춘 곳에


 
부활절이 되었다. 이날이 되면 산에 사는 목동은 어김없이 내려와서 파스칼 댄스를 춘다. 오늘도 제사장처럼 춤을 추는 목동에게 사람들은 홀려서 정신이 이미 반쯤 나갔다. 그때 갑자기 그 과부가 레몬꽃을 한 아름 안고 성당에 나타났다. 군중 속에는 물에 빠져 죽은 그 총각의 사촌도 있었다. 그는 과부를 보자 '죽은 영혼이 피를 부르고 있다'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며 공격했고, 조르바는 뛰어가서 피를 흘리는 그녀를 구출했지만, 기어이 그녀의 목은 잘려나갔다.


 
그날 밤 조르바는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자신과 같은 무지렁이 눈에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참으로 부조리하다고 읊조렸다. 과부의 죽음은 몇천년 전에 제물로 바쳐진 에게 문명의 처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이 없고 이성이 잠자는 사이에 감정에 복받친 군중에게 광기가 덥쳐서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형이상학적 결론을 내리는 동안 조르바는 입을 꾹 다물고 일만 하면서 진정한 애도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의 진실한 감정이 부러웠다.

 

 다음날 새벽에 오르땅스부인이 죽어간다는 연락이 왔다. 조르바는 항상 그녀를 아프로디테 여신처럼 대해 왔으며, 얼마 전에는 그녀의 요구대로 약혼까지 했다. 그는 늙어서 가여운 여자의 청을 거절하면 자신이 천당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여자는 늙고 젊고의 개별적 차이를 초월하여 전체 여성을 대표하는 귀한 존재이다. 그는 사람의 심장에는 하느님이 들어있으니,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 안 된다고 한다. 조르바의 존재 깊은 곳에서 나온 말들은 나의 머리에서 나오는 말보다 생명력이 있었다.


 
그녀는 성 주간 내내 자정미사에 가서 조르바를 위해 기도를 드렸고 이로 인해 감기에 걸렸던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트렁크 밑바닥에 처박아 두었던 십자가를 마지막 애인인 양 껴안고 있었다. 즐거울 동안에는 필요 없지만 이제는 죽어가니 예수라는 약을 먹어야 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예수님' 하고 열정적으로 외쳤다. 조롱과 외로움으로 슬펐던 그녀의 삶이 하느님 앞에서 단지 순간이었다.


 그녀가 죽어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물건들을 챙기려고 몰려들었다. 노파들은 입으로는 곡을 하면서 눈으로는 그녀의 세간을 샅샅이 뒤져, 그녀의 전성기에 입던 드레스 모자 구두 등을 움켜 집었다. 노략질은 한순간 일제히 시작되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마당에서 키우던 닭은 뜨거운 물에 튀겨지고, 포도주는 그들의 입에 삼켜졌다. 원시적인 크레타 농부들에게는 프랑스인 카바레 가수의 죽음이 축제와 같았다. 조르바는 묵묵히 그녀의 시신을 처리했다. 그리고 놀라서 머리를 처박고 있는,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그녀의 앵무새를 집어 들고 '자 집에 가자'고 말했다.


 
드디어 케이블카 공사가 끝났다. 조르바는 옷을 잘 차려입고 산꼭대기에서 축성식을 진행했다. 성처녀의 기적을 이뤘다고 동네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가운데 시운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고가선은 쾅 소리와 함께 폭발하여 재로 변했다. 사람들은 파편에 맞을까 봐 순식간에 도망가버렸다. 드디어 나는 사업도 망하고 무일푼이 되었다.


합을 이루어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답이 없었다. 나와 조르바의 보잘것없는 모습만이 드러났다. 거대한 확실성(Great Certainty)이 우리를 덮쳤고, 우리는 파괴되지 않을 용기가 필요했다. 조르바와 나는 와인과 더불어 맛있는 양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혈관에 힘이 넘치고 생명력이 다시 솟아났다.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능력도 결국 하느님이 주신 것이다. 모든 것이 뒤틀려 버렸지만, 뜻밖에도 자유스러움을 느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bildungsroman)이다. 화자는 처음에는 자기 부정과 억제를 하면서 세상일을 집착하지 않으니 자유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르바를 만나서 편견 없이 그의 세계에 들어가 본 후에 달라진다. 영혼이 아프면 몸이 달래주고, 서늘한 이성을 따뜻한 심장으로 데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조르바에게서 배울 점을 취하지만, 자신의 중심을 지키면서 인격적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조르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캐릭터로 남는다.


 우리 대부분도 어쩌면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에 갇혀서 이 순간을 다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번 조르바를 만나 보지 않겠는가. 우리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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