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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북리뷰


 

세상은 사랑을 나누는 보석 -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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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86회 작성일 21-05-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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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로스의 소설<에브리맨>은 뉴저지 남부에 있는 보석가게를 배경으로 한다. 에브리맨은 보석가게의 상호이며, 주인공은 보석가게의 아들로 성장한다. 1933년생 주인공은 세 번의 결혼과 이혼에 걸쳐 세 명의 자식을 두었고, 71세에 심장병으로 죽는다. 뉴욕의 광고계에서 출세하여 잘 나가는 인생을 살았던 그는 신을 믿지 않으며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오직 몸이다. 그는 몸이 없어지는 죽음이 두렵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 망각의 세계(oblivion)로 간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장례식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인생을 시작하듯이, 독자도 결말을 알고 소설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이름도 없이 오직 ''라고만 묘사된다. 죽기 전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서술한다. 이렇다 할 클라이맥스도 없으며, 시간의 순서도 뒤죽박죽이며, 자신의 잘못도 합리화시킨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현실의 우리의 모습에 더 가깝다. 이제 그에게 조의를 표하는 의미로 그의 삶을 한번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 보자.

 

유년의 낙원


 주인공 ''는 미국 이민 4세이다. 유대인 증조부가 19세기 말에 뉴저지 엘리자베스에 정착했다. 그의 아버지는 시계 점원으로 일하다가 큰아들과 동생인 그가 태어나자 작은 보석가게를 열었다. 아들들에게 터전이 될 어떤 것을 물려주고 싶었던 아버지는 먹고살기도 힘든 대공황 시절에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할 정도로 생존력이 대단했다.

 

 아버지는 장사 수단도 있었다. 그 동네에 정착한 폴란드, 이탈리아, 아이리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았다. 사라질 인간이지만 불멸의 보석에 대한 애착은 누구나 있었다. 가난한 노동자들도 자신의 여자가 다이아몬드를 끼고 있으면 품위가 올라가는 듯 여겼다. 아버지는 원가만 회수되면 나머지는 외상을 주었다. 가게는 결코 망하지 않았고, 손님들이 더 몰려들었다. 이렇게 인맥을 구축한 아버지는 3대에 걸쳐 반지를 팔았다. 아버지의 가게 상호 에브리맨처럼 모든 사람을 위한 보석상이었다.


 
자본이 영세한 아버지는 막 이민 온 유대인들이 하는 작은 업소에서 보석을 구입했다. 그들은 영어를 몰랐기에 아버지는 이디쉬 말로 거래했다. 이민 1세들은 그들끼리만 어울렸고, 조상이 입던 검은 외투에 구레나룻을 기르고, 전통 종교를 고집했다. 이런 모습이 어린 그에게는 우습게 보였다. 이민을 왔으면 현실에 맞추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미국인인 그의 사고는 자유스러웠고 자기중심적이었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그의 아버지와는 대조를 이룬다.  


 믿음직한 두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장사를 도왔다. 여섯 살 위인 형 하위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당시 9살 주인공은 형을 대신하여 보석 심부름을 했다. 다이아몬드 봉투를 깊숙이 숨기고는 버스를 타고 뉴어크에 가서 세공업자에게 전달하곤 했다. 그는 아버지 가게를 좋아했다. 수리를 맡긴 무수한 고물 시계들을 가지고 놀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차곤 했다. 멈춘 시계들은 마치 한번 가버린 인생처럼 결코 수리되지 못했다. 하지만 죽음을 아직 모르던 그 시절은 아무 시계라도 상관이 없었다. 거기다가 점원으로 고용된 예쁜 누나들이 항상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이전부터 누나들 옆에 가까이 있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곤 했다. 아버지 가게는 그의 낙원이었다.

 

육체적 즐거움


 하지만 낙원이라고 해서 완벽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느 여름, 해변에 밀려온 익사체를 보았고, 병원에서 옆 침대의 소년이 죽어 나간 것을 보았다. 어머니의 따뜻한 간호로 두려움을 극복하지만, 평생을 지배했던 그의 남성우월적 관점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자신을 보살펴주는 어머니같은 여자 아니면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점원 누나같은 두 종류의 여성을 할상 추구했다.

 

 그는 미술 대학을 나온 후에 자유로운 작가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권유하는 부모의 뜻대로 광고회사에 취직했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주는 속박으로 인해 결혼은 지옥이 되었다. 그러던 중 직장의 젊은 카피라이터 피비를 만나자, 나이 서른넷에 첫 이혼을 한다. 때마침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그를 피비는 정성껏 간호했고, 두 사람은 결혼하여, 딸을 낳고 십 여년 동안 안정되게 살아간다. 하지만 직장에서 출세하자, 그는 20살 연하의 모델과 바람을 피우고, 성실한 배우자였던 피비에게 이혼을 당한다. 그는 나이 오십에 육체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이 모델과 세 번째로 결혼을 한다. 하지만 하고 보니, 그녀는 현실적으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여자였다.

 

 셋째 부인과 살던 중 50대 중반에 그는 갑자기 심장 수술을 받는다. 성공한 사업가가 된 형 하위가 달려와서 동생에게 개인 간호사를 붙여준다. 노동계급 출신의 건강한 슬라브계 여자의 간호를 받으며 그는 다시 살아난다. 그는 아내 모르게 간호사와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의 세 번째 결혼도 파국을 맞이한다. 욕정에 집착하는 그에게 몸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통로이다. 몸이 아플 때는 자신을 간호할 여자가 필요하고, 건강할 때는 잘 대상이 필요하다.

 

육체적 추락


 
다시 60대 중반에 그의 막강하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주 병원 신세를 지다가, 은퇴하고, 9/11 테러가 일어나자 뉴저지 해변에 위치한 부유한 노인들을 위한 은퇴마을로 이사를 했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순수 미술을 하면서 평화스럽게 살려니 했다. 하지만 막상 이곳으로 이사를 오니 왠지 소외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를 만나기 위하여, 자신의 콘도에서 미술 클래스를 열었다.

 

 많은 노인이 클래스에 왔지만, 그들 역시 그림보다는 사람을 만나려고 왔다. 젊은 시절의 빳빳한 외면이 사라진 그들의 주된 화제는 건강이었고, 병력이 그들의 신분증이었다. 잘 나갔던 사람일수록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것을 인정하지 못했고, 말 한마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수강생 중에는 신문 발행인의 아내로서 남편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다녔던 미망인도 있었다. 남편이 죽자 은퇴 홈으로 들어와 노인들과 섞여 살았지만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척추의 고통으로 인해 진통제 없이는 잠시도 견디기 힘들었다. 한때는 아름다웠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은 간데없었다. 그녀는 클래스를 한동안 나오더니 끝내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아트 클래스에 오는 노인들의 면면을 알고 나니 그는 더욱 우울해졌다. 거기에다 건강은 자꾸 말썽이 생겼다. 혼자 차를 몰고 가서 수술을 받고 나와서 엉엉 울기도 했다. 세 아내와 연인들이 있었고, 세 자식과 형도 있는데, 그는 자신이 왜 이리 외로운지 처음으로 생각해본다.


너무 늦은 깨달음


 
두 번째 아내, 피비만 지금 옆에 있어도...  그에게 진심을 다했던 피비는 그의 계속되는 거짓말에 실망하고 그를 떠났다. 그녀가 낳은 딸 낸시는 엄마를 닮아 천사처럼 착하지만, 지금은 쌍둥이를 키우는 이혼녀가 되었기에 아버지를 돌볼 시간이 없다. 그가 자신의 엄마를 떠났음에도 무조건 관대했던 낸시는 사람들의 결점을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녀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무책임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에 실패한 원인이기도 했다.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아들은 아버지에게 평생 분노의 감정을 표출했다. 아들들은 내가 병들어 이 지경이 된 것을 고소해 할지도 모른다. 나도 이혼의 고통을 겪었는데, 그들은 자신들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이혼 가정에서 자란 것처럼 고약하게 굴었다. 나이 71살에 나는 이런 인간이 되었고, 이것이 나인 것을 어쩌라고? 세상의 에브리맨들이 대충 나처럼 살지 않을까.

 

 그의 숭배의 대상이었던 형도 있었다. 모든 것에 탁월한 형은 아이비리그 스쿨을 갔고, 골드만 삭스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파트너가 되었고, 재산이 오천만 달러가 넘었다. 부인과 장성한 네 아들에게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가장이기도 하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동생에게 꾸준히 연락했지만, 동생은 최근에 형이 미워져 연락을 끊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데도 여전히 펄펄한 형. 내가 누려야 할 건강을 그가 뺏어가서 내가 이 지경 아닐까. 한 정신과 의사는 그가 아픈 이유가 뿌리 깊은 질투심이라고 진단했다. 최초의 형제가 불화했던 것처럼 형제에 대한 질투는 인간의 보편적 모습이다.

 

 그는 은퇴 마을의 노인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은퇴한 많은 부부가 여전히 함께 살고 있었고, 노부부들은 세월과 함께 결혼의 끈이 더욱 두터워져 있었다. 또한, 그들의 대화 중 많은 부분이 자식 손자들이었다. 가족에 대해서 별 할 말이 없는 그는 화제에 낄 수도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그림도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노년의 취미 생활이란 허무를 가리기 위한 부적이며, 의미있게 살고 있다는 자기 기만같은 것이 아닐까? 이 모든 것에 시들해진 그는 어느날 해변가에서 조깅을 하는 젊은 여자에게 다가 가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삶은 보석


 
그는 마지막 수술을 위해 병원에 들어갔다. 마취에 들어가자 그의 눈앞에 낙원과 같았던 뉴저지 바닷가가 반짝인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닷물, 그는 어머니 양수로 다시 들어가 헤엄치듯 행복하다. 보석상 아들로 보석을 팔았지만, , 진짜 보석은 이 거대한 캐럿의 눈부시게 반짝이는 세상이었다. 살아있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나누는 사랑이 보석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을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 가족 관계를 파괴했다. 자신을 향한 이기심은 안으로 파고들어 거대한 폭발력으로 결국에 그를 파괴했다. 그는 몸뿐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부서졌음을 알았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말하기를 너의 손이 따뜻할 때 무엇인가를 하라고 했는데...


 주인공은 삶은 기억이며, 죽음은 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관계를 스스로 파괴한 그는 살아서도 망각된 존재였다. 살면서도 기억할 것이 별로 없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것이 진짜 죽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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