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아 물러가라, 저어기 빛이 온다 -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 김미연 북리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김미연 북리뷰


 

어둠아 물러가라, 저어기 빛이 온다 -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페이지 정보

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61회 작성일 21-05-26 23:52

본문

19805월 광주 항쟁 당시 나는 대학 2학년이었다. 계엄 반대 데모를 하니 서울역으로 집결하라는 과대표의 연락을 받았다. 친구 서넛과 함께 그곳으로 갔지만, 곤봉을 돌리며 쫓아오는 경찰이 무서워, 어느 가게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문을 황급히 열어주며 '아버지가 공무원이니 너는 데모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고 하셨다. 다음날 신문에 휴교령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전라도가 고향인 과 친구에게 광주의 소식을 어렷품이 들었고, 사실인지 소문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는 그냥 지나쳐 갔다.


 그리고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북클럽에서 광주 항쟁을 주제로 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되었다. 지난 세월동안 별 관심 없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양심의 갈고리에 걸려 자꾸 넘어지는 기분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실화에 근거한 소설이다. 광주항쟁 당시 아이였던 작가는 어른들의 소곤거리는 소리와 집 안에 숨겨진 광주 사진첩의 한 장면을 목격했고, 어른이 된 후에도 이것을 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에 근거한 가부장제에서 희생된 한 여자의 개인적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소년이 온다>는 국가적인 집단 폭력으로 인하여 죽었거나, 죽음보다 더 치욕적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시켜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면 포상을 한다는 국가. 국가의 명령을 아무 생각도 없이 충실히 수행했던 군인들. 아무런 의식 없이 제도를 따른다는 명목 아래 행한 나의 행동이 죄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행은 악인만이 저지르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악의 평범성을 말했다.

 

양심의 빛


 광주에 사는 동호는 중학교 3학년이다.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하고 아버지는 허리 병으로 집에 누워있다. 큰 형은 서울의 직장인, 작은 형은 재수생, 동호는 늦둥이 막내다. 문간방에 세를 놓자, 정미 정대 남매가 들어왔다. 형들과 나이 차이가 나서 심심하던 차에 동호는 같은 학년인 정대와 절친이 된다. 중학교를 중퇴한 정미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동생을 뒷바라지한다.


 1980 5월 어느 날, 광주에서 시민 데모가 일어나고 정미 누나가 실종된다. 동호와 정대는 누나를 찾으려 거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데모에 합류한다. 무장 군인들의 총알이 날아오자 사람들은 일제히 도망쳤고, 동호는 도망을 가다 정대의 손을 놓쳤다. 총알이 무서워 담 뒤로 숨은 사람들은 거리에서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뛰쳐나갔지만, 건물 옥상에 배치된 저격수에 의해 그들 역시 쓰러졌다. 이것이 한 십 분 동안 계속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동호 역시 쓰러진 정대를 쳐다보기만 했다. 저격수의 눈에 띄지 않을 곳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호는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다음날 동호는 정대를 찾으려고 시신이 안치된 도청에 간다. 거기서 자원 봉사자들인 여고 3년 은숙, 21살 미싱사 선주, 서울에서 봉사차 내려온 대학 신입생 진수를 만난다. 시체 수습에 일손이 딸리는 그들은 동호에게 조금만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동호의 임무는 시신의 대충 신상 착의를 기입하고, 헝겊을 잘라 얼굴을 덮어주는 것이다. 간신히 시신을 찾은 유족들은 오열하며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애국가를 불렀다. 동호는 이것이 이상했다. 나라가 시민을 죽였는데 마치 나라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듯이...


 계엄군이 오늘 광주에 들어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엄마와 작은 형이 헐레벌떡 도청으로 동호를 데리러 왔다. 동호는 도청문 닫는 저녁에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가족을 돌려보낸다. 집행부는 여자들과 17세 이하는 집으로 가라고 하지만, 동호는 고 2라고 거짓말을 하여 도청에 남는다. 아직 정대의 시신을 찾지도 못 했는데, 동호는 갈 수가 없다.


 하지만 정대는 이미 수십 구의 시체들과 함께 산에 암매장을 당했다. 그는 자신이 실존적으로 어디를 떠도는지도 모른다. "왜 나를 죽였지? 어디로 가면 나를 죽인 사람들을 만나지? 죽인 이유를 묻고 싶어! , 누나도 이미 죽었어. 어디서 누나를 만나지?" 갈팡질팡하는 그의 혼령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도청 쪽에서 수천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정대의 혼은 동호도 죽었음을 감지한다. 작가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정대에게 목소리를 부여하지만, 마치 벙어리가 소리를 내듯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군중의 도덕성


 도청에 계엄군이 온다던 날. 여자들은 집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3인 은숙은 귀가했다. 수천 사람의 단호한 군홧발 소리, 길이 갈라지고 벽이 무너질 것 같은 장갑차 소리. 은숙은 그런 소리를 난생처음 들었다. 오후부터 군인들이 집에 덮쳤다. 아버지는 은숙을 옷장에 숨겨놓고 '우리 집 딸은 고 삼인데 데모를 하것소'라고 말했다. 그해 입시에 낙방하고 방구석에서만 지내는 은숙에게 엄마는 '네 밥벌이는 네가 해서 어려운 살림을 좀 덜어 달라'고 사정한다. 다음 해 그녀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2학년 때 중퇴를 하고, 작은 출판사에 취직해서 교정 보는 일을 한다. 당시의 모든 출판물은 보안사 군인들의 검열을 받았다. 소위 '불온서적'을 발간하는 이 출판사의 대표는 편집 담당자는 은숙이라며 심문을 피해간다. 대신에 은숙은 한 번도 본적도 없는 불온서적 번역자의 소재를 대라고 심문을 받는다. 이번에도 서대문 경찰서에 불려가서 고막과 목뼈가 상할 정도로 뺨을 맞았다.


 은숙은 인간이 상황에 따라서 극한으로 치닫는 것을 광주에서 경험했다. 개인이 군중의 힘을 입으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지도 보았다. 정상적인 사람도 군대라는 집단 속에서는 야만성의 극치를 보였다. 반면에 광주 열흘은 정반대의 세상이었다. 다친 상처를 보듬어주고 서로를 위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대동 세상이었다. 광주 시민은 그런 낙원을 처음 경험했다고 한다. 인간은 폭력성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숭고함도 내재하여, 그것이 군중의 힘을 빌려서 발현된 것이다.

 

부서진 영혼


 도청에 계엄군이 닥친 날. 진수를 포함한 20대 초반의 집행부 열두어 명은 총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무장을 했다. 하지만 어둠 속을 올라오는 군인들을 향해 차마 총을 쏘지 못했다. 대신에 군인들이 쏘아대는 따발총에 도청 계단에 피소리가 콸콸 들렸다. 진수는 극렬분자로 분류되어 징역을 살았다. 고문에 똥오줌을 지린 진물 나는 이 짐승 같은 몸뚱아리가 언제 데모를 했을까? 마치 전생의 일처럼 아득하다. 고문의 목적이 바로 그거였다. 치욕감과 수치심을 주어 자신을 무슨 짐승처럼 여기게 하는 것이다.


 진수는 일 년 후 풀려나지만,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한다. 죽을 줄 알면서도 끝까지 도청을 지켰던 사람들. 양심이라는 깨끗한 보석이 내 안에 들어와 박힌 듯했지만 부서지기 쉬운 것이 또한 인간이다. 고문으로 부서진 그의 존엄성은 다시 회복될 수 없었다.


 진수가 자살한 자취방에서 소년 다섯이 일렬로 사살된 사진이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그 중 한 명이 동호였다. 그날 도청에서 진수는 끝내 집에 가지 않은 동호에게 '아이들을 차마 죽이지는 않을 테니 숨어 있다가 항복을 하라'고 일렀다. 동호는 진수형이 시키는 대로 다른 소년들과 일렬로 손을 들고나오다가 차례로 쓰러졌다. 외신기자들만이 광주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들에 의해 동호의 사진이 나돌고 있었다.


분노와 피폐


 1980년 광주에서 데모가 일어나던 무렵, 선주는 시내에서 미싱사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공 출신이다. 남자 월급의 절반을 받으며 수당도 없는 야간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여성 노조 모임에 들어갔다. 하지만 무장 경찰에 맞아서 장 파열이 되고, 공장은 해고를 당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녀는 여공보다 더 낮은 급료의 미싱사 시다로 취직할 수밖에 없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미싱사가 되었다.


 계엄군이 온다는 날, 선주는 도청에 끝까지 남아서 총을 받았고 극렬분자로 체포되어 형을 살았다. 간첩 지령을 받는 빨갱이 년임을 자백하라고 고문을 당했다. 석방 후에 남자와 잠시 결혼도 하지만, 고문의 후유증으로 결혼 생활이 불가능해서 곧바로 헤어졌다. 남자만 보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고, 계속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사느니, 죽는 것이 편할 것 같아 자살하려고 광주로 내려갔다. 그녀는 우연히 게시판이 붙여놓은 한 사진을 보고 경악을 한다. 거기에 동호가 있었다. 집으로 간 줄로만 알았던 동호. 그 사진을 본 선주는 분노가 치솟았다. 분노의 힘으로 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43세가 된 지금까지 그녀의 피폐한 삶은 계속되고 있다. 단 열흘의 폭력이 몇십 년을 이어지고 있다.


 동호네 가족 역시 산산조각이 났다. 엄마는 막내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고 여긴다. 그날, 도청문 닫으면 온다던 동호가 오지 않자, 둘째 아들을 데리고 계엄령으로 괴괴한 거리를 걸어서 도청에 갔다. 굳게 잠긴 도청문을 지키는 총을 찬 어리디 어린 시민군은 이제 곧 계엄군이 닥칠 것이며, 안에 들어가면 다 죽는다고, 절대로 못 들어간다고 했다. 잠시만 들어가서 동생을 찾겠다는 둘째와 실랑이가 벌어지자, 엄마는 이러다가 이 아들도 잃겠다 싶어, 아들의 팔을 잡아끌어 집으로 돌아온다. 동호가 죽은 후 아버지는 충격에 돌아가시고, 큰형은 그 쪼매한 것을 끌고라도 오지 못한 작은 형을 원망했다. 서먹해진 두 형제의 관계는 이십 년이 지나도록 회복되지 않는다. 혼자 사는 엄마는 요즘 꿈속에서 동호를 자주 본다. 동호는 환히 웃으며 엄마의 소매를 잡아끈다. '엄마, 어둔 데 말고, 밝은 데로 걸어가'라고 말하며 다가온다.


용서의 문제


 아직도 광주 항쟁은 한국사회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상대방을 처벌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이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무조건적인 용서는 신의 영역에 속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문제를 끄집어내 말하고 화해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철학자 데리다에 따르면 인간(집단)은 다른 인간(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죄를 짓는다고 한다. 우리는 국가가 저지른 이 죄에 대하여 공동체적으로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해야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적 의식을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다음 행위로 넘어 가야하기 때문이다.


 동호와 함께 빛 속을 걸으며 역사의 장을 넘기는 날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