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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북리뷰


 

탈조선 -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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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93회 작성일 21-05-2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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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세기 초 대한제국 말기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확보로 세계는 정신이 없었다. 개항된 조선도 외국 문물이 밀려와서 제물포항은 연일 북적거렸다. 1906 5월 제물포에서 조선인 천여 명이 영국령 일포드호를 타고 멕시코 대농장 아시엔다의 4년 계약직으로 떠난 사건이 있었다


 '는 황성신문의 광고에 떼로 몰려서 배를 탔다. 아시엔다의 환경이 열악하여 일본과 중국은 자국민의 해외송출을 금했지만, 열강에 시달리는 조선은 국민의 소규모 이주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4년 동안 겨우 목숨만 연명한 멕시코 이주자들은 계약이 끝나도 돌아갈 여비도, 한일합방으로 돌아갈 나라도 없어졌다. 그간 과도한 노동 및 감독의 매질에 죽은 자도 있었고, 마야여자와 결혼한 자들은 식솔의 막대한 몸값을 치를 돈이 없어 농노가 되거나, 여자들은 중국집에 팔려 가거나, 돈을 벌고자 멕시코, 과타멜라의 혁명에 휘말려 용병으로 죽은 자도 있었다. 유카탄반도를 떠도는 우마와 같은 조선인의 현실이 중국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정부는 뒤늦게 이민 보호법을 만들어 멕시코 이주를 법으로 금지했다. 이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멕시코에 가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작가 김영하는 백여 년 전에 조국을 떠난 한국인 다이아스포라를 역사소설 <검은 꽃>으로 엮었다. 동물적 생존이 관건인 초기 이민자들은 감성이나 내면을 돌 볼 여유가 없었다. 그들의 영혼은은 사막의 열에 타버린 듯, 작가의 어투는 건조하고 거칠고 냉소적이다. 또한 역사소설이 흔히 그렇듯이 한 사람의 인물을 부각하지도, 국가적인 정체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대문자 역사가 아닌 소문자 역사를 살았던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인 듯 균등하게 묘사한다. 그들은 신념과 이념이 있어서 나라를 떠난 것도, 종교를 선택한 것도, 남의 나라 혁명에 참여했던 것도 아니다. 어찌하여 자신 앞에 불어오는 역사의 거대한 바람에 휘말려 갔을 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내용은 작가의 고증과 답사를 거쳤다고 한다.

 

희망의 서사


 구한말에 화물선을 타고 나라를 떠날 결단을 내린 사연은 다양했다. 부쳐 먹을 손바닥만 한 땅대기가 없어서, 장가도 못 간 조장윤과 식솔들을 굶겨 죽인 박정훈은 러시아식 신식 군대가 생긴다길래, 열강의 전쟁터가 된 조국의 군대에 목숨을 내놓고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에 의해 군대가해산되니, 조장윤과 박정훈 등 40여 명의 제대 군인은 갈 곳이 없었다. 어려서는 굶기고, 철드니 때리고, 살만하니 군대를 해산하여 자신을 내친 조국, 떼놈과 로스케와 왜놈에 흔들리는 조국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가난이 이유였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밥을 굶는 황족, 고종의 사촌 이정도도 식솔을 데리고 배에 올랐다. 이상이 현실보다 큰 이 사대부는 나라가 기울자 선진국에 가서 황실을 재건하고자 했다. 중국을 오가며 돈을 번 역관의 아들 권용준은 재산을 기생집에 날리고 쫄딱 망해서 배를 탔다. 자신을 보살핀 은인의 종교를 쫓아 개종을 하고 신부가 된 박광수는 조선의 선교를 명하는 주교를 따를 수가 없다. 광포한 백성들은 오랑캐의 종교라며 교회를 부수고 신자를 잡아 죽이는 상황이다. 이곳에서 개죽음을 하는 것이 신의 뜻이 아닌 것 같은 바오로 신부는 멕시코로 갈 결심을 한다. 이 얼떠 보이는 사람에게서 은  십자가를, 그것이 뭣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훔친 제물포 좀도둑 최선길도 배에 합류했다. 무당질이 싫어 조선을 떠나려는 박수와 보부상 출신의 노비 소년도 있었다. 한 선교사가 준 커피와 머핀이 너무 맛있어서 이것을 먹을 수 있다는 미국으로 가고 싶어 멕시코행을 선택했다. 배에서 아버지 나이의 조장윤을 만나서 김이정이란 이름도 받는다.


  이들은 희망의 서사를 품고 일포드호를 탔다. 화물칸 밑바닥에 천여 명이 들어갔다. 누구도 차별이 없는 공동 구역이었다. 사대부 이정도는 천 것들과 자리함이 심히 불쾌했고, 여자들은 가릴 장막 하나도 없이, 파도가 치면 남녀노소가 한군데로 엉켜 붙는 민망한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다 인간 본연의 생리적 행동을 했고 동물적 냄새를 뿜어냈다. 태생적으로 부여된 신분 계급을 무시하고 무차별적 평등을 드러내는 일포드호는 어두운 중세에서 벗어나 근대로 가는 배였다. 배에서 죽을 고비도 있었지만, 두 달 가량의 항해 끝에 멕시코의 베라크루즈 항구에 도착했다. 이들 천여 명은 농장주들 선택에 의해, 유카탄 반도에 있는 20여 개의 농장으로 흩어진다.


절망의 서사


 이름도 없이 떠돌던 16세 소년 김이정은 다양한 경험을 한다. 배에서는 주방장 요시다의 조수가 되어 그의 동성애에 시달리지만, 대가로 매일 얻어먹는 사과 한 알이 생존에 중요했다. 이성애에 눈을 떠 배에서 만난 사대부의 딸 연수와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아시엔다 농장에 도착해서는 식민회사에 속았음을 재빨리 판단한다. 대농장 아시엔다의 주인들 역시 조국을 떠난 사람의 후손들이었다. 유럽의 미미한 신분들이 한 재산을 잡으려고 신대륙으로 온 것이다. 그들은 마야인을 농노화하여 지배계급으로 군림하며 유럽 왕 못지않은 부를 구가한다. 몇 년 후 멕시코 혁명의 원인이 될 아시엔다의 구조적 대 착취에 합류된 조선인은 기아에 시달리며 체념하고 산다.

 

 하지만 이정은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하여 미국으로 갈 결심을 한다. 그러나 미국에 도달하지 못하고, 농장일군으로, 유랑자로, 군인으로 여러 정체성을 거치며, 이름 그대로 이정표 역활을 한다. 국경에서 멕시코의 장기 독재를 반대하는 혁명군과 만나 용맹한 군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한다. 민중을 착취하는 농장주와 교회계급을 타파한다는 혁명군의 주장은 타당한 듯했다. 하지만 양민을 잡아서 무차별하게 죽이는 것은 정부군과 같았고, 혁명군벌이 들끓는 멕시코는 중국의 전국시대처럼 혼란했다. 백지상태의 고아 소년이 자신에게 닥친 역사의 파도를 타면서, 국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나라가 있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없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기회주의적 변모

 

 이정과 다른 농장으로 배치된 연수와 그 가족 역시 변모한다. 뒤늦게 이정의 아이를 가졌음을 안 연수는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가족으로부터 뱃속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통역이 된 권용준의 첩으로 들어간다. 언어를 이용한 쥐꼬리만한 권력으로 조선인을 괴롭히며 부를 누리는 기회주의자 용준을 존경하는 남동생도 있었다. 통역으로 출세하고 싶은 동생은 용준의 비위를 맞추려고, 초기에 그와 누이의 만남을 주선한 적도 있다.


  현실 인식이 안 되는 인물들도 있었다. 연수의 아버지는 자신은 멕시코 이주 한인들을 다스리러 왔으니 기강을 세워야 한다며, 서책만 들척이고, 부당한 이곳에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편지를 고종에게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조선에서도 못 찾은 사대부의 위엄을 되찾으려는 그는 꼭 망해가는 제 나라를 닮았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나중에 마야인 감독에게 시집을 간다. 산산조각이 난 가족들을 더 보고 싶지도 않은 연수는 4년 후 용준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는 척하다가 도망친다. 그 과정에서 강간도 당하고, 아이를 낳아 달라는 중국 노인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중국집에 팔린다.


  조장윤과 박정훈 등 군인 출신들은 건장한 남자를 선호하는 체체 농장으로 갔다. 그들은 조직력이 있었기에 부당한 처우 개선을 위한 파업도 하고 농장주와 협상도 벌인다. 4년 계약이 끝나자, 조장윤은 메리다에서 한인회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무 대신에 문을 숭상해서 망한 조국이 아니던가. 사라진 조국을 대신하여 편제를 짜서 군대를 만들고 무력을 강화하는 승무학교도 세웠다. 지구 반대쪽에 임시정부라도 세운 듯 장윤의 자존감은 넘쳤다.


 하지만 박정훈은 장윤의 승무학교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가 조용히 잠드는 것'이 소원이었다. 배라크루즈 항구에서 이발 기술을 배운 그는 혁명지도자의 이발사 및 용병으로 큰돈을 번다. 어느 날 중국집에 일하고 있는 연수를 발견하고, 그녀의 몸값은 물론, 농장에 있는 그녀 아들의 몸값도 치르고 두 사람을 데려와서 가정을 꾸린다. 연수는 남편이 죽은 후에 고리대금업자로 포주로 돌변하여 갈퀴처럼 돈을 긁어모은다. 한때 학교와 교회에 다니며, 남성의 의존을 벗어나 자립하려던 신여성이었지만, 국가의 부재 속에서 그녀는 몸을 이용해 생존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시달린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도 이념도 종교도 아닌, 오직 몸과 돈이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막대한 재산을 상속하고 죽는다.


종교의 습합


 유카탄에서 종교도 갈등을 겪었다. 유럽인의 기독교, 마야인의 토템신앙, 조선의 샤마니즘은 부딪힌다. 유럽 정복자들은 마야인의 미신을 파괴하고, 예배에 나오면 일을 쉬게 하고 임금을 올린다고 회유도 했다. 마야인은 성모마리아를 자신들 사고 체계와 비슷한 신의 어머니 토난친으로 이해하여 받아들였다. 발생지를 떠난 종교는 전파지의 무속신앙과 습합될 수밖에 없었다.


 박수무당과 좀도둑 최선길이 간 농장의 주인은 예수회 선교사의 후손으로 정통 가톨릭 전파가 그의 사명이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고유한 무속 신앙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흥이 올라 병굿을 하는 무당과 일체가 되어 춤을 추는 그들을 보고, 농장주는 사탄이라고 규정하고 박해를 한다.

 

 항상 기회를 엿보는 최선길은 농장주의 종교로 재빨리 개종한다. 그는 자신이 훔친 십자가가 개종의 계시였으며 예수라는 신이 꽤 영험하다고 생각한다. 감독으로 출세한 그는 농장주의 개가 되어 특히 마야인을 괴롭혀 미움을 산다. 훗날 멕시코 혁명이 전국으로 퍼지자, 성난 군중에게 잡혀서 주인과 함께 광장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다.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최선길은 기도를 올린다. 나는 사실 예수 당신을 잘 모르오. 그냥 주인을 따라 했을 뿐이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소? 숨을 거두는 그에게 목소리가 들린다. 너의 죄를 모르는 것이 네 죄다.

 

사라진 유토피아


 1916년경 28세의 이정이 죽기 일 년 전, 과타멜라 정글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던 중에 그는 미니 국가 신대한을 세운다. 제대 군인 40명과 함께 남을 착취하지 않는 나라, 남을 지배하지 않는 나라에서 마야인과 더불어 평화롭게 산다. 마야인의 신전이 있었던 신성한 땅에 흔적을 쌓은 신대한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일본대사관에 서신도 보낸다. 하지만 일 년 후쯤 과타멜라 정부군에게 신대한 전원은 전멸당한다.

 

 모든 색이 합치면 검은색이며, <검은 꽃>은 인종 문화 국가 종교를 초월한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이정의 신대한이 사라졌듯이, 검은 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죽음이 그냥 죽음이 아니도록, 사물이 그냥 사물이 아니도록, 망각에 묻힌 다이아스포라를 찾아서 우리의 기억을 되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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