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 - 나다니엘 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 김미연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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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북리뷰


 

고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 - 나다니엘 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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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84회 작성일 21-05-2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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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은 진흙탕에 구른다. 모든 일에는 선과 악이, 고귀함과 천함이 함께 붙어 있어서 언뜻 보면 구분이 힘들다. 호손의 소설 <일곱 박공의 집>에서 대를 이어 일어나는 사건도 이백년이 지난 후에야 진실이 밝혀진다.

 

 이 소설은 17세기 말에 매사추세츠 세일럼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 마녀사냥(Witchcraft)을 배경으로 한다. 16세기 유럽에서 건너온 초기 이민자들은 척박한 생활을 했지만, 얼마 후에 건너온 영국 청교도들은 항구도시 세일럼을 기점으로 돈을 벌어서 이민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기 정착민과 청교도의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자, 청교도들은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정착민들을 탄압했다. 세일럼이 두 개의 분파로 갈라지고, 정착민을 마귀로 몰아서 처형하는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집단 광기를 드러낸 이 사건은 미국의 대표적 흑역사로 간주된다. 세일럼 출신 작가 호손은 할아버지가 당시 사형 집행관으로 마녀사냥과 관련이 있었다. 호손은 그의 조상이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며, 이를 모티브로 한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 <일곱 박공의 집>은 마녀사냥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당시의 을이 갑에게 퍼부은 저주가 대를 물린다는 내용이다. 또한 중세적 사고에 갇힌 귀족층의 몰락과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인물상이 제시된다. 빛과 어둠으로 조우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신천지의 부


 17세기 말 영국의 귀족 핀천 대령은 뉴잉글랜드의 주지사로 부임되어 온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엄격히 따르는 청교도지만, 그의 신앙과 행동은 별개였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본국에서 못 이룬 탐욕을 채운다. 인디언 추장에게 땅문서를 빼앗고, 처녀지의 널린 땅을 자신의 소유로 만든다. 하지만 그는 그 많은 땅을 두고도, 초기 정착민 토마스 몰이 사는 작은 오두막에 눈독을 들인다. 몰의 뜰에 있는 천연 우물을 그의 새로 지을 저택의 정원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령보다 40년 먼저 정착한 몰이 절대로 자신의 땅을 내놓을 리 없었다. 그러자 대령은 당시 휩쓸던 마녀사냥에 몰을 마법사로 몰아서 처형한다. 대령은 몰의 집을 갈아엎고, 몰의 아들을 목수로 임명하여, 자신의 후손이 대대로 살 저택 일곱 박공의 집을 짓는다.

 

 축성식 날 이 호화로운 저택에 온 마을 사람이 초대됐지만, 정작 집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당황한 집사와 식구들이 찾아보니, 대령은 응접실의 의자에서 죽어 있었다. 주인이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저승 손님이 먼저 찾아왔다. 작은 마을이 발칵 뒤집히고 사람들은 몰이 죽으면서 대령과 그자손에게 퍼부은 저주를 기억하고 몸을 떨었다. 그 이후 몰의 후손은 자취를 감췄지만, 핀천자손은 5-6대에 걸쳐 이 집에서 살고 있다. 가문은 점점 쇠퇴하고, 지금은 퇴락한 집에 60대 독신녀 헵지바 핀천이 쓸쓸히 살고 있다. 그녀는 생시 동안만 이 집에 살 권리가 있다. 가문의 재산은 마을의 법조계에 있는 핀천 판사에게 상속되었다. 핀천 판사와 헵지바는 사촌 간이다.

 

빛이 들지 않는 집


 귀부인 출신 헵지바는 가난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사는 것이 괴롭기만 하다. 마을 사람들과 왕래도 전혀 없다. 재산을 다 가진 핀천 판사는 남의 이목이 있어서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대중 앞에서는 덕 있는 지도자 행세를 하는 판사의 위선이 싫다.   부모가 죽은 후 가족이라고는 30년째 감옥에 있는 클리퍼드 오빠뿐이다. 그는 제프리 삼촌을 죽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지만, 그녀는 착한 오빠가 누명을 썼다고 생각한다. 몰의 저주 탓인지 나쁜 일만 생기는 이 집에서, 납처럼 무거운 자신의 기도는 신께 올라가지 않는다. 곧 감옥에서 나올 오빠, 늙어서 세상 빛을 보는 오빠에게 단란한 가정을 제공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다.

 

 헵지바는 생각다 못해서 하숙도 들이고, 집 한 쪽에 작은 구멍가게도 열었다. 마을 사람들이 조롱할 것 같고 가게 일도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막상 가게를 열어보니, 아이들이 드나들고, 이웃들이 조언도 해 주고, 빛도 들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구시대의 유물인 귀족이라는 자존심을 붙들고 세상이 변한 것도 모르고 어두운 집에서 갇혀 산 그녀였다. 하지만 어두운 것은 집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녀의 두려움은 상상 속에서 형체 없는 괴물처럼 커졌다. 마음만큼 자신을 가두는 무서운 감옥은 없다.

 

 그녀는 처음에는 가게가 재앙이라고 여겼지만,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는 곳이 되었다. 시골에서 처음 보는 사촌 피비 핀천도 찾아온다. 17살 피비는 뉴잉글랜드 출신의 평민 어머니를 닮아서 생활력이 강했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 어머니가 재혼하자 숙모인 헵지바에게 보내진다. 피비가 온 날, 오빠도 집에 왔다. 귀족 도련님이었던 그는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 돌아왔다. 늙고 초라해진 누이는 집안일에 무능하여 어찌할 줄 모른다. 하지만 새처럼 명랑한 소녀 피비 사촌의 존재는 그에게 기쁨과 활기를 주었다. 맛난 아침상, 꽃 장식된 식탁, 가게 경영 등등 못 하는 것이 없다. 어둠 속의 헵지바 남매에게 피비는 빛으로 다가왔다.

 

빛이 어둠을 만나

 

 피비는 헵지바 남매에게 구원적 존재가 되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 그녀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으며 살아왔다. 그녀에게 신문 기사는 진실이며, 사회적 명사는 훌륭한 사람이다. 시조 대령의 소문과 저주는 미신이며, 헵지바남매는 좋은 사람들 같고, 사촌 판사는 훌륭한 분 같다. 그런데 이 남매는 왜 그토록 어두우며, 왜 판사를 그토록 싫어하는지, 사촌 간의 불화의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피비는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세든 청년 홀그레이브는 사실은 자취를 감췄다던 몰의 마지막 후손이다. 신학문을 공부하여 합리적 사고를 하는 그는 핀천가의 죽음이 자신의 조상 저주 탓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핀천 집안에 뭔가 미심쩍은 면이 있는 듯했다. 신분을 숨기고 들어온 그는 헵지바와 클리퍼드를 관찰했지만, 그들은 불쌍할 뿐 나쁜 사람들은 아닌 듯 했다.

 

 홀그레이브와 피비는 정원에서 자주 마주친다. 그의 직업은 초창기 카메라인 데구로타입 사진사다. 귀족들은 화가를 고용해 초상화를 남겼지만, 근대에 이르자, 초상 사진으로 간단히 해결된다. 화가는 장치를 써서 인물의 단점을 감추지만, 시간이 지나면, 화가가 처음에 포착한 인물의 정수가 그림에 나타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사가 아무리 잘 찍으려 해도, 햇빛 아래 사진을 비추면 인물이 애써 감추려고 한 모습이 드러난다. 홀그레이브는 거실에 걸려 있는 대령의 오래된 초상화와 자신이 찍은 판사의 초상사진을 피비에게 보여준다. 판사의 평소의 자애로움은 간데 없고,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모습이 시조와 닮아 있었다. 피비는 자신이 알았던 진실이 반쪽 진실임을 느낀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삼십 년 전 현재의 판사는 방탕아였다. 이를 밉게 본 제프리 삼촌은 클리퍼드에게 유리한 유언장을 작성했다. 한밤중에 서재를 뒤지며 유언장을 찾는 패륜 조카를 목격한 삼촌은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판사는 삼촌에게 피를 묻혀서 살해로 꾸민 후에 클리퍼드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클리퍼드가 감옥에 가자, 재산을 상속받은 그는 돈으로 판사의 신분을 획득했다.

 

각성


 감옥을 나와서 집에 은든하고 있는 클리퍼드는 못 자란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다. 그는 세상을 직면하지 못하고, 피비의 존재를 통해서만 세상을 내다본다. 어느 날 그를 찾아온 판사가 너무 끔찍한 클리퍼드는 어린아이가 도망치듯이, 햅지바를 데리고 집을 뛰쳐나간다. 그 집도 판사의 소유니 돌려주려 했다. 

 

 클리퍼드는 기차역에서 아무 기차나 잡아탄다. 기차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공간의 자유로운 이동이야말로 근대적 라이프 스타일 아닌가. 귀족과 평민들이 같은 공간에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담소하고, 생기 가득한 동류의 인간들과 어울려 살고 싶다. 몸이 이동하니 마음도 유동적이다. 인간의 영혼은 자유로운 공기 같아서 고여있으면 안된다. 조상과 전통을 지붕처럼 이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기차에서 클리퍼드는 비로소 각성한다.


 한편 클리퍼드가 뛰쳐나간 후에 판사는 의자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홀그레이브의 증언과  전문가의 조사로 심장마비라고 밝혀졌다. 저주 탓이라던 시조의 죽음과 타살이라던 제프리 삼촌의 죽음이 다시 사회적 화제가 되었고, 노년기 유전적 질병이라는 결론이 유력해졌다. 하지만 클리퍼드는 법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감옥의 삼십 년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는데, 남의 눈에 비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판사가 죽자, 집안의 재산은 헵지바, 클리퍼드, 피비에게 상속되었다. 피비와 홀그레이브의 결혼으로 두 가문은 화해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삶은 희극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처음에는 각기 단절 상태에 있지만, 나중에 구원을 이룬다. 헵지바는 과거에 갇혀서, 클리퍼드는 감옥에 갇혀서, 핀천 대령과 판사는 이기심에 갇혀 있었다. 헵지바와 클리포드는 세상과의 소통으로 구원을 받지만, 두 세력가 핀천은 영혼이 구원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제일 무서운 것은 이기심에 의한 단절이다. 이기적 에고는 내 안에 갇혀서 돌다가 거대한 폭발력으로 자신을 자멸시킨다.

 

  어둠과 빛은 원래 한 몸으로 뒹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갈라진다. 언뜻 보면 빛이 좋고 어둠은 나쁜 것 같다. 하지만 둘은 같이 있어야 선함을 드러내며 완성된다. 어둠 속에서 삭을 대로 삭은 클리퍼드와 헵지바는 빛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피비를 통해 세상 어디나 비추는 빛을 본다. 반면에 너무 환해서 자신을 보지 못했던 피비는 어두움을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된다.

 

 삶은 항상 비극과 희극이 섞여 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세상의 유쾌함은 항상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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