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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하숙집 딸 순자의 일생 - 이민진의 <파친코>를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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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92회 작성일 21-05-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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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일제 강점기, 날로 피폐해 가는 식민지에서 조선인들은 배가 고팠다. 가난을 피해 일본에 가지만 짐승 취급을 받고 거지로 전락한다. 이들은 해방되어도 돌아오지 못한다. 그 후예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멸시받는 식민지인 취급을 받는다. 이들은 일본 국적을 가질 수 없는, 자이니치(Zainichi, existing in Japan)라고 불린다. 사 오대를 내려오며 살아도 단지 거주자일 뿐이다. 3년에 한 번씩 지문을 찍고 허가증을 받는다. 수직적 신분 의식이 고질적으로 깊은 일본 사회에서 밑바닥 천민 부라쿠민 보다 더 천한 신분이 자이니치라고 한다.

 

  우리는 자이니치가 받는 멸시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자이니치라는 용어조차도 생소하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으로 국가가 갈라졌고, 일본 내에서 조총과 민단으로 집단이 나누어졌다. 조총의 활동이 우세한 탓에 북한이 천국이라는 선전이 조선인들 사이에서 퍼졌다. 일본에 있는 조선인들은 빨갱이라고 여긴 탓에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한국 사회에 차단되었음은 당연하다.


  자이니치에 대한 인종적 멸시의 근거는 무엇인가? 인종의 개념은 일본에 의해 허구로 만들어졌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아시아 전역으로 식민제국을 팽창하려는 일본은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할 논리가 필요했다. 아리안족 정통성을 내세워 유대인을 말살하는 독일의 행태를 그대로 모방한다. 의사들을 대거 독일로 보내어, 그들이 지어낸 인종학적 생물학적 가설을 배워온다. 일본의 고유 혈통인 야마토 인종을 만들어 가장 우월한 종족으로 일본인에게 각인시키고, 아시아 다른 민족들은 열등한 민족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고귀한 야마토 혈통의 일본인이 비열하고 잔인하고 거짓말 잘하고 짐승 같은 조선인을 가르쳐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를 국가적으로 퍼뜨린다.

 

  이 소설은 1932년 부산 영도에 살던 순자가 오사카로 건너가서 대를 내려오며 겪는 이야기다. 일본국가가 지어낸 허구적 인종 개념으로 인하여 인간의 삶이 파멸에 이른다. 직업의 스펙트럼도 제한되어, 범죄 냄새가 나는 파친코를 하거나 야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이니치들, 고국도 일본도 홀대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소설을 시작한다. '역사가 우리의 삶을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영도 하숙집 딸 순자


 부모와 함께 하숙집을 하던 17살의 순자는 피치 못할 상황으로 오사카로 간다. 아버지는 언챙이 다리병신에, 엄마는 가난한 소작인 딸이다. 이들에게는 나라가 망했건 말건 먹고 사는 일이 먼저다. 세든 방 한 칸에 하숙을 치고, 부부와 딸은 부엌 옆 헛간에서 산다. 부부가 근면하고 성실하여 손님이 넘친다. 순자 위로 오빠들이 있었지만, 불구로 태어나서 어릴 때 다 죽는다. 아버지의 사랑은 순자에게 자존감을, 엄마의 생활력은 훗날 순자가 일본에서 뿌리내릴 강인함을 심어준다.

 

 13 살에 아버지를 여읜 순자는 생전에 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시장을 보러 다닌다. 해산물 중개상인 고한수의 눈에 띈다. 제주도 출신으로 방탕한 아버지를 둔 그는 오사카의 거리에서 건달로 뼈가 굵어진다. 간사이 지방에서 가장 큰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눈에 들어 야쿠자의 데릴사위가 된다. 한수 부부는 딸만 셋 있으며, 남처럼 산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34살의 한수는 어린 순자에게 접근하고, 아버지가 늘 그리운 순자는 쉽사리 빠져든다. 밀회 시간을 위해 값비싼 은시계를 선물 받은 순자는 임신하고, 한수는 순자에게 현지처가 되라고 하지만, 그가 유부남인 줄 몰랐던 순자는 이것을 거부한다. 딸의 임신에 엄마 양진은 사태 수습이 막막하다. 이즈음에 청년 목사 백이삭이 하숙집에 찾아온다.

 

  백이삭은 평양의 부잣집 막내아들이다. 목사인 큰형은 항일 운동 중에 죽었다. 형을 쫓아서 목사가 된 이삭은 둘째 형의 초청으로 오사카로 가던 중에 지병인 폐결핵이 도졌다. 객사 일보 직전에 순자네 하숙을 두드린다. 이삭은 겨우 건강을 회복하고, 생명의 은인인 양진에게 감사한다. 순자 모녀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그는 순자를 아내로 맞이한다. 몸이 약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삭은 마음을 비운 지 오래다. 자신이 하느님의 도구로 쓰이기만 바란다. 모녀는 하나님을 모르지만, 이삭 같은 훌륭한 사람의 하나님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오사카의 모진 삶

 

 형 요셉 부부는 돼지와 조선인만 산다는 빈민굴 이카이노에서 산다. 인종 차별이 더욱 심한 본토에서 요셉은 비스킷 공장의 감독 일을 한다. 요셉의 아내 경희는 평양의 양반집 딸로 교양을 갖춘 여자다. 경희는 배부른 순자를 여동생처럼 돌봐준다. 이삭은 조선인 교회 부목으로 일하고, 순자는 한수의 아들 노아를 낳고, 뒤이어 이삭의 아들 모자수도 낳는다. 자식이 없는 경희는 조카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돌본다. 남자들의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입에 겨우 풀칠하며 산다.

 

  어느 날, 고리대금업자가 집에 들이닥쳐 돈을 갚으라고 여자들을 협박한다. 동생네를 초청하는 비자 허가증을 받으려고 요셉이 빌린 돈이 이자가 불어서 두 배가 되었다. 순자는 부산에서 한수가 준 은시계를 전당포에 내다 팔아서 돈을 마련한다. 나쁜 일이 자꾸 일어난다. 이번에는 남편 이삭이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종교의 박해가 본격화되어 신사참배를 부주의했다는 죄목이다. 이삭은 모진 고문 끝에 숨을 거둔다.


  남편이 부재하니 두 아들 데리고 먹고살아야 하는 순자는 장아찌, 김치 행상을 한다. 어릴 적에 시장 사람들을 상대했던 경험이 살아나서, 장사 수완이 좋다. 김치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큰 불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김창호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경희와 순자에게 식당에 와서 밑반찬을 만들면 월급을 후하게 주겠다고 한다. 경희는 돈을 모아 장아찌 가게를 내는 것이 꿈이다. 요셉은 여자가 나가서 일하면, 남자의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다. 요셉의 눈치를 살피는 경희가 순자의 눈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1944, 전쟁이 막바지에 들자, 식량은 군인에게 보급되고, 민간인은 굶주린다. 사람들은 감자 한 자루에 집안의 가보를 내다 바꾼다. 창호네 식당의 부엌용품도 무기용으로 차출당했다. 이 무렵 고한수가 식당에 나타난다. 사실은 창수는 한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순자가 내다 판 은시계가 고한수에게 되팔렸고, 그때부터 한수는 순자를 11년 동안 추적했다. 조직 폭력배의 보스인 한수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화류계 여자들을 갈아치우면서 산다. 하지만 순자에게 여전히 미련이 있고, 아들 노아만큼은 곁에 두고 싶다. 한수는 오사카가 폭격을 받을 테니, 순자에게 식구들을 데리고 근교의 농장으로 피신하라고 한다. 한수는 폭탄을 맞아 끔찍한 화상을 입은 요셉도 찾아서 농장에 데려오고, 부산에 가서 순자의 엄마 양진도 데려온다. 혹시라도 순자가 노아를 데리고 한국으로 갈 것을 염려해서다. 한수는 계속 순자 곁을 맴돌며 아들 노아에게 접근할 기회를 본다.

 

일본인이 되고싶은 노아


 일본이 패망했다.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군인들이 여자애들을 어디론가 데려가서 단체로 끔찍한 일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폐허가 된 오사카로 돌아온 순자네는 다시 힘들게 살아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요셉의 약값을 내고 나면 돈은 다 없어진다. 창수는 불구가 된 요셉을 극진히 돌보는 경희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창수의 마음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두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금했다. 경희는 한 지아비를 섬기라는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간다.

 

  노아와 모자 형제는 학교에 다닌다. 조선인 짐승 새끼라는 놀림에 혼자 고립되는 학교생활이 끔찍하다. 12 살 노아는 중산층 일본 아이처럼 하고 다니며, 일등을 하는 모범생이다. 8살 모자수는 형과 달랐다. 먼저 싸움을 걸지는 않지만, 인종적 차별을 받으면 흠씬 패주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일본 아이들은 모자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노아가 와세다 대학에 합격하자, 한수는 등록금과 방세를 선불로 다 지급한다. 요셉은 노아를 망치는 일이라고 극구 반대하지만, 순자는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류 교육을 시키고 싶다. 최고가 되어 적대적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이상주의자 노아는 대학에서 명문가 일본인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이 '멋진 외국인 남자'에 대한 환상임을 알게 되자 헤어진다.

 

 친부가 고한수임을 알게 된 노아는 대학을 중퇴하고 자취를 감춘다. 어리석은 엄마와 야쿠자 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자신은 저주받은 인생이다. 나고야에 가서, 반노부오라는 일본인 행세를 하며, 파친코에 취직한다. 지배인으로 승진한 노아는 몇 년에 걸쳐 고한수에게 빚진 돈을 갚으며, 집에도 돈을 보낸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여 아이들도 생겼다. 아내조차 그의 신분을 모른다. 노아는정체가 발각될 공포에 늘 시달린다.

 

  한수는 사설탐정을 풀어서 사라진 노아를 찾아낸다. 순자를 데리고 나가노로 가면서, 얼굴만 멀리서 보자고 하지만, 순자는 내 아들을 왜 못 보냐고 고집을 피운다. 파친코장 앞에서 순자는 그리던 아들을 대면하지만,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다음날 노아가 총으로 자살한 것이다. 조선인 피가 끝까지 자신을 추적함에 절망한 노아, 그의 꿈은 일본인이 되는 것이었다. 

 

파친코 인생


 모자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조선인 사장이 경영하는 파친코장에 취직한다. 조선인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한다. 아내는 모자수에게 미국에 가자고 하지만, 그는 다른 나라에 가고 싶지 않다. 멸시 구박을 받아도 그에게는 일본이 모국이기도 하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이 나라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모자수는 파친코장을 소유한 백만장자가 된다. 인생은 불확실성을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비슷하다. 정해져 있지만 희망의 여지가 있는 듯 해서 빠져든다.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을 영어를 쓰는 외국인학교에 보내고 미국 유학도 시켜서 국제적인 인물로 키운다. 외국 기업에 취직한 솔로몬은 일본인 상사가 인종적 편견이 없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용당한 후에 해고되고, 결국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어간다. 유학 중 만난 코리안 아메리칸 여학생과 결혼도 생각하지만, 미국 시민인 그녀와 자이니치 솔로몬은 조선인의 피를 가진 것 외에는 아무런 동질감이 없다.

 

  엄마 양진은 죽으면서 딸 순자에게 모진 말을 한다. 나쁜 종자 한수를 받아들임이 실수였고, 한수와 이삭 두 남자를 동시에 가슴에 품은 벌로서 노아를 잃었다고 비난한다. 순자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자신이 물처럼 들이마신 수치. 그 수치를 참고 견디는 법을 노아에게도 가르쳐야 했을까. 하숙집 할 정도의 셈만 가르친 자신의 부모와는 달리, 언감생심 와세다 대학을 꿈꾸게 한 것이 잘못일까.

 

 고약한 한수로 인해 훌륭한 남편 이삭과 결혼한 것 아닌가. 그로 인해 두 아들 노아도 모자수도, 귀한 손자 솔로몬도 있다. 시작은 꼬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삶에 행복과 사랑이 없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다. 순자는 남편의 무덤 앞에서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은 자신의 인생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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