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14 신 ) - 고행길이 주는 의미는 자기위안과 성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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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414회 작성일 14-10-0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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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의 이베리아 반도 대서양 연안. 라틴어 표기로 Finis Terre 라 한다. 예수님이 기독신앙을 설파하던 시절 언급하신 ‘세상 끝’이 그곳을 의미하지 않았나 싶다 - 이 가까워지며 고도가 낮아지니 안개가 더욱 짙다. 지난 한 주일 내내 연무 속을 더듬어 왔네.
이러다 허무하게 산티아고에 다달을라! 매일 아침 출발시부터 한 낮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비슷한 정황이다.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언제 다시 이곳을 밟아 주변의 풍광을 볼 수 있을까? 지난 겨울 눈 비가 많았거나 아니면 심한 추위가 머물렀나보다. 오늘도 아침부터 뽀얀 안개비를 맞으며 앞서가는 사람들의 단조로운 스틱소음을 쫓는다. 내가 내는 소리는 뒤에 오는 누군가에게 길 안내를 하고 있으리라. 찍! 쩌걱! 찍! 쩌걱! 벌써 40여분을 저 반복되는 소리를 따라 땀을 닦으며 뒤쫓고 있다. 행여 저 소리 내는 사람이 순례자가 아니라면 나는 가야 할 길에서 한참 벗어나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게다. 그런 일이 아니기를..!
이제는 더 버티기 힘든 시간이다. 이름도 안보이는 멋진 돌다리 난간에 배낭을 괴어 어깨를 파고드는 아픔을 풀고 있으려니 멀리 뒤에서 생소한 리듬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쩔꺽! 쩔꺽! 쩔꺽! 보이진 않아도 다른 소리를 압도하는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자니, 이윽고 시야에 신비롭게 나타나는 그 모습은 괴기영화 속에서나 어울릴 상상 밖의 모습! 차양테두리가 큰, 까만 모자에 까만색 망또와 역시 까만 부츠의 금발여인이 이끄는 촉촉하게 젖은 까만색 말! 등에는, 한 쪽은 말 먹이와 캔버스 구유통이, 다른 쪽에는 그녀의 짐이 얹혀진, 상상밖의 생경한 모습에 일 순 넋을 잃고 바라만 보았지.
조금 후 결례스럽게 가는 길을 막고 사진을 반복해 찍으면서 내가 먹을 토마토를 꺼내 말에게 환심도 베풀고. 어디서 출발했느가 물으니 독일의 '어디'라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내게 ‘메르켈’ 총리를 아느냐며, 그녀의 출신지역인 옛날 동독일 땅 이란다. 하도 인상적이고 shocking 하여 계속 붙들고선, 어디서 말을 재우냐고 묻자, 교외지역의 펜션 또는 B&B - bed and breakfast - 를 그날 그날 예약한다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나 물자, 프랑스 남부까지는 아버지가 차로 운반해주어 그곳에서 시작 한지 오늘로 2개월 11일 됬다네!
한동안 동행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더라. 나는 매일 매일의 호스텔 예약하는 것도, 짐 일부를 택배 발송하는 것도 빡빡하고 바쁜데, 저 큰 말과 어렵게 그러나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순례행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경의와 범접 못 할 귀티를 느끼면서 한동안 말 뒤를 쫓아 걸었지.
저 여인은 무엇을 얻으려 떠나왔을까 생각하며.. . 한 낮, 햇살이 나오면서 많은 폐허들이 눈에 띈다. 13세기에 세운 ‘사리아 성(’Fortaleza de Sarria) 의 성곽을 돌아, 14세기부터 자리 잡은 시장을 만나 간식거리를 사 넣고 언덕배기의 알몬드 농장을 지나는데 언제 나를 쫓아왔는지 한국까치가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골짜기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뻐꾸기까지 우는 소리에 우리 반도가 붙은 ‘유라시아 대륙’을 실감하며, 봄날의 풍광을 멋지게 돋구어 줍디다. 또 다시 나타나는 폐허화한 고성에 남은 우뚝 선 탑이 아침나절의 햇빛을 받으며 인상 깊게 양지와 음지를 가른다. 안내문을 보니 15세기 귀족에 대항한 소작농의 봉기 - 이르만디뇨스 - 로 아쉽게도 세개의 탑은 무너졌다네. 우리보다 앞서서 ‘동학난’이 이곳에도 있었구나.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13세기에 지어진 ‘막달레나 수도원’( Masteiro da Madalena) 이 나타나는데, 외벽의 석고 조각들이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답더라.
많은 관광버스가 도열하고 있어 꽤 유명한 곳이구나 생각하며 지나치는데 한 남자가 사진을 찍어달라네. 몇 컷을 성의 있게 찍어주자 고맙다며 어디를 가는가 묻는다. Pilgrim으로 Santiago를 가고있다 하니 눈을 크게 뜨고는 놀랜 표정으로 버스 안을 향하여 크게 소리친다, “ 여기 순례자가 있다!”고.. . 우르르 버스에서 20여명이 내려서 나를 에워싸고 질문공세다. 어느 나라에서? 얼마나 오래 걸었느냐? Catholic신자냐? 일행이 몇이냐? 묻기에 홀로 간다하니, “아호라!” 하며 내 어깨를 돌아가며 감싼다.
축복기도나 위로인가 아니면 나를 통해 위안을 얻는 것 일가? 이들은 브라질 어느 성당의 성도들로, 버스로 포르트갈을 거쳐 오는 성지순례여행중 이라네. 오렌지를 여러 개 주어 고마웠지만 무거운 짐을 더 얹어주니 원망스럽더군. 가벼운 돈을 줄 것이지.. . 그러나 고생이 깊어 갈수록 영적인 풍요로움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걸어갔다오.
봄 경치를 관상하려고? 아니면 성소가 많아서? 경쾌하고 활력있게 걷는 사람들이 많이 뜨인다. 심지어 가족단위로 즐겁게 걷는 모습도 자주 보이고. 내막을 알아보니 대부분이 ‘산티아고’까지 100여km를 남긴 4박5일의 순례길을 걸어보려는 사람들이다.
또다시 이 고행길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걸었지.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답은 자기위안과 성취감이란다. 신앙생활 속에서 어느 계기에 성령이 이끌었거나, 인류의 조상들이 더 낳은 삶의 조건을 찾아 가고 또 가던 이 길에 서린 혼령이 이끌어 냈거나, 조상이나 가족 중 또는 동료 성도와 교우들이 나름의 뜻을 지니고 떠났다가 병고나 사고로 뜻을 못 이루고 도중에 스러져간 원혼들의 부름으로 이들을 신원해 주려고 떠나왔거나,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고산준령에 서려있는 정령의 기를 받으려 왔던가, 또는 인류사의 족적과 흔적을 탐구하는 학문적 동기로 왔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걷는 저 많은 사람들!
힘들고 고생은 심해도, 서로 간에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며 서로에게 선행을 베푸는 이 정신이 내게 큰 평화와 기쁨을 줍디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온 인종도 다르고 세대도 다른 - 당연히 문화와 관습과 의식도 다른 -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아침 저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 하면서도, 큰 마찰과 긴장 그리고 탈 없이 조화를 이루며 나아감은 분명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란 확신이 듭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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