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16 신 ) - 땀과 눈물과 마음속의 찌꺼기를 고행길에 떨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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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397회 작성일 14-10-06 10:51본문
이른 아침, 검푸른 하늘에 별빛이 유난히 밝다. 실낱같은 초생달과 샛별이 맑은 대기를 꿰뚫고 거침없이 빛을 내리쏟고 있다. 오래 전 몽골의 초원에서 형용키 어렵게 밝고 큰 별들에 충격을 받고 잠을 못이룬 밤들이 있었지. 5Km정도 은근한 언덕길로 오르니 고급 주택촌으로 애워싸인 고소산(Monte Gozo) 의 정상이 나타났다. 조그만 공원으로 애워쌓인 피크에는 서거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치적이 부조된 방문 기념비가 우뚝 서서 순례자의 마지막 휴식처를 제공한다. ‘고소’란 말이 이곳 갈리시아지역의 언어로 ‘기쁨’이란다.
동판지도가 가리키는 곳에 대성당의 돔이 육안으로 보이면서 가슴이 벅차게 뛴다. 마라톤 선수가 골인지점이 보이면 이런 심리일가? 취하려던 휴식도 동댕이치고 서둘러 내리막길로 나섰지. 여기 저기 성당과 수도원, 수녀원등이 현대적 빌딩들과 혼재되어 그 거룩함을 퇴색 시키는구나. 카돌릭 사제들과 수녀들이 자주 눈에 띈다. 드디어 '산 라자로' 언덕길로 오르는데 커다란 갈색 간판에 San Lazaro Santiago 병원과 나병원이 나타난다.
아무리 바빠도 이것만은 지나칠 수 없어 오른쪽 언덕길로 숨을 고르며 오르니 양지바른 곳에 어마한 규모의 현대식 병원과 고색이 짙은 초라한 건물 둘이 서 있네. 바로 12세기에 세운 나병원과 예배당이라는 안내판 설명에, 나는 전기에 감전된 전율 비슷한 느낌과 뒤따라 경직을 느끼면서, 한없이 많은 생각이 교차됩디다. 일찌기, 그 이른 시절에 어떻게 그들 흉칙한 병자들을 감싸서 보살피고 치료하는 거룩한 마음이 생겨났을까?! 그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었나?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에서 시작된 보편적 사랑이었나..?
너무도 유명한 세르반테스 동상이 있는 광장을 건너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이 길을 오면서 수십 수백의 석상과 동상을 거쳤는데, 우리도 우러르고 기억할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현실은? 부정적 측면에만 매달려 새로 세우기는 커녕 이미 서있는 것들도 헐어내리는 망동을 저지르고 있지 않는가! 그러다보니 우리세대에는 새로운 고적이나 기념물을 세우지 못하고 물려받은 몇몇 고적에만 매달려있고, 지방분권이 시행되면서 각 지방의 향토문화나 기념물등이 졸속으로 양산되어 일류국가의 면모로 내세우기에 부끄러운 현실이다. 아마도 훗날 다시 허물고 보수하는 일들이 뻔해 보인다. 또한 후대들은 전국에 동시 다발적으로 조성된 깊은 맛이 없는 문화재나 관광지에 쉽게 식상하리라.
오브라도이로 광장( Plaza Obradoiro) 에 들어서니 마침내 대성당이 너무도 크고 높게 우뚝 서있어 일순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아침 첫 햇살을 받은 돔과 첨탑들이 찬란스레 위압적이구나.
서둘러 본당 안의 ‘산티아고’님을 찾으니 전통적으로 입맞춤하던 두 대리석발은 오랜 세월 참배객의 손과 입술의 시달림으로 마모가 되어 발가락의 굴곡이 없어진채 민밋해졌고, 더 이상 접촉을 못하게 그 앞을 굵고 검은 철책이 막고있네. 그 대신 야고보님의 등 뒤편, 아주 좁은 계단통로로 오르니 당신께서 본당을 바라보며 값진 보석류가 박힌 의식용 망토를 입고 앉아 계시더군. 어느 노인부부가 등에 볼을 대고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양보 않네. 엉거주춤 뒤에 서서 기다리는데 내 뒤로는 계단통로가 금방 인파로 차 버려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의 등을 쓰다듬어주니 그제서야 움직인다. 틈이 생기자 나도 야고보님의 등을 감싸 안고 볼을 대는데 격하게 북바치며 눈물이 흐르고 뒷골이 아파집디다.
내 몰골이 딱했던지 다음차례의 부인이 다가와 자기손에 갖고 있던 휴지뭉치를 쥐어주더군. 고맙다는 인사치례도 못하고 밀려나는 기분으로 일방통행의 계단으로 내려오며 정면 벽을 바라보니 주인되시는 예수님과 마리아님이 커다란 모습으로 서 계시네, 순서가 틀렸다는 불경스러움이 눈물을 그쳐 주더군.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를 찾으니 그 안의 사람들 모두가 거울앞에서 눈을 닦다가 거울을 통해 얼굴이 마주치면서 웃음 또는 윙크로 인사를 나누더라.
참배를 마치고 나오니 기다리는 줄이 광장까지 이어져있더군. 운 모습이 역력한, 배낭 멘 순례객들을 기다리는 전문적 사진사가 다른 일행들과 그룹을 짓게하여 기념사진을 찍는데, 내 곁의 두 여인은 계속 눈물을 닦는다. 그래, 고생이 심할수록 설음도 크겠지. 거기에다 각자의 사연들까지 한 몫 할테니.. .
순례자사무소로 가서 그동안 머문 숙소와 박물관, 성당및 유명업소 등에서 받은 스탬프가 찍힌 순례자여권을 내보이니 날자와 장소 등을 검색한 후 순례증서를 교부하는데, 여기서는 증서를 가슴에 대고 사진을 찍고 환호와 기성을 토하는 젊은이들이 마냥 사랑스럽고 기특해 보이더라. 2층의 사무소에서 아래로 내려오기까지 30명 넘게 포옹과 볼키스를 받았지.
기쁨과 흥분으로 분별력이 없어졌나보다, 고령의 나 까지도 저희들 무리로 여기며 막 대하네.
오늘저녁 만찬을 어느 식당에서 함께 하자고 약속하란다.
장하고 자랑스럽구나, 젊은이들아! 고생 끝의 환희를 마음껏 즐기거라. 그리고, 걷는 동안 나름대로 명상에 젖고 성찰한 내면의 결실을 흩뜨리지 말고, 또 단조시킨 신앙심과 어질어진 그 심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좋은 씨앗이 되어 수십 수백의 좋은 열매를 맺는 역활을 하자꾸나!
그리고 긴 여행을 큰 탈없이 끝내게끔 역사하신 하나님에게 감사하자!
또한 무자비하게 내려쬔 햇빛에 바랜 몸과 마음으로 우리의 역사를 만들고, 아침 저녁으로 달빛에 물들며 걷고 또 걷던 행보를 추억으로 만들자! 생각하면 기억으로 남고 그리워지면 추억이 된단다.
( 2013년 4월 28일, 땀과 눈물과 마음속의 찌꺼기를 고행길에 떨구고,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의 친구에게서 언제고 오라는 초청을 받고 석별의 만찬을 즐긴 후, 서울로 날아왔지오. 내게는 무려 일곱달이나 걸린 순례였지요. 지난 해 10월 초에 떠나 걷다가 고원에 일찍 닥친 한파와 눈보라로 가던 길을 중단하고 10월 28일 돌아와서도, 마음속에서 계속 걷다가 올 4월 초에, 중단했던 곳-레온-으로 떠나서, 4월 28일 마쳤으니.. . 그동안 걱정과 성원을 해주신 가족, 친지와 교우들, 특히 약품과 안내 책자 및 영상물을 지원하고 격려하신 이문휘씨 내외분과, SNS를 통해 순례길 마칠때까지 안부와 염려와 격려의 정을 베풀어준 김양배, 권영국, 이찬용, 곽선섭 학형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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