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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딱따구리 이야기 - 뉴욕중앙일보: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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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63회 작성일 21-05-3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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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돌아갈래?"

"아니 더 갈 거야"

주황 노랑 입고 바닥에 누운 잎들이 아직도 버티는 제 동무들을 올려보는 자갈길을 아이와 함께 걷는다. 아무리 야산이지만, 돌아가려면 한참인데, 아이가 못 간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팔다리가 나뭇가지만큼이나 삐죽한 아이를 업을 자신이 없어서다. 꾀가 떠올랐다.

 

 "우리 미로 찾기 게임할까? 어디로 가지? 곰 발바닥 좀 찾아봐."

아이는 그림을 찾으러 폴작 거리며 뛰어간다.

 "여기 있어!"

흥분해 소리친다. 발바닥이 그려진 팻말을 보던 아이는 뭐라고 쓰여있냐고 물어본다. 숲에 가면 나온다는 늑대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 같았지만, 벌레가 침범하는 헴록 나무에 대한 이야기다. 발바닥을 찾으러 아이는 또 앞서서 뛰어간다. 마녀 헤이즐(witch hazel) 나무에 둥그런 할로우가 있다. 아이는 구멍이 뭐냐고 묻는다.

 "엄마 말 안 들어서 늑대에게 먹힌 빨간 머리애 알지? 어느 날, 이 숲에 사는 아기 벌레가 엄마 말 안 듣고 저 마녀 나무에 올라갔대. 미끄럼 타면서 신나게 놀다가 껍질에 있는 조그만 구멍 안에 들어갔어. 아 그랬더니 맛있는 슈가워터가 있는 거야. 밤이 되자 엄마 벌레는 걱정하며 기다리고. 집에 가던 딱따구리가 놀고 있는 벌레들을 보고 배고픈 참에 우웅하고 다 잡아먹었대. 엄마 벌레는 너무 슬펐지. 그 후로 딱따구리들은 벌레를 찾느라고 나무에 자꾸만 구멍을 뚫었대. 그래서 저렇게 커진 거야."

 

나는 집에 가서 마녀 나무를 그려 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할 일이 많아졌다며 엄숙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요즘 아이가 주말에 오면 할 일을 찾느라고 궁리를 많이 한다.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던 장난감 가게도, 공주가 그려지는 컴퓨터가 있는 도서관도, 또래 애들을 기웃거리는 놀이터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어디? 어디에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초기에는 물어보던 아이다. TV 프로그램 호기심 딱지에서 미세 먼지에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보고는

"나 알아, 미세먼지가 바이러스야"

자신 있게 말했다. 햇빛 속에서는 크리넥스를 갈가리 찢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이게 코로나바이러스야, 여기에 있어"

흥분하곤 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다들 무섭다고 하니, 나름의 사고 체계를 세우느라 애쓰는 눈치였다. 무기력한 제 부모 역시 삼십 분만 허락하던 아이패드를 무진장 늘렸다. 집에 갇힌 두어 달 동안 아이는 유튜브를 끼고 뒹굴면서도, 머릿속은 소파에서 점프하듯 혼란스러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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