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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미연 신문칼럼


 

에로스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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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30회 작성일 24-05-13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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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요즘 좀 그래, 살맛이 안나"
포스트 팬더믹이라고 환호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의외다. 중단했던 모임을 다시 하자고 단톡에 올렸더니, 총알같이 반응했던 지인들이 답이 없다. 그들의 목소리가 밝지 않다. 그간 집에 갇혀서도 잘 지내고 있다던 사람들이 몸도 좀 아프고, 나가려니 귀찮고, 어설프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멀쩡하던 무릎이 발목을 잡는다. 만사가 시들해지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정신력'으로 버티라던 말이 언제부터인가 싫어졌다. 정신력은 뒤 끝이 있어서 반드시 반격해 온다. 정신은 형체가 없으니 잘 모르지만, 수많은 세포를 거느린 몸은 힘듦을 차곡차곡 쌓아두다가, 수위가 넘어가면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벌인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휴가 같다고 여겼다. 사람들과 대면이 없으니 신경 쓸 것도 없는 청정 생활인 줄 알았는데왜 난데없이 몸이 쿡쿡거리는가?

팬더믹이라 못 나간다고 할 때는 집중도 잘 되더니, 비행기 예약과 식당이 꽉꽉 찬다고 하니, 마음이 산란해진다. 나만 못 나가나 하는 불안감 속에서 책을 펴들었다. 수도 없이 들었던 소크라테스 선생인데,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에로스 하면 벌거벗은 비너스와 큐피드 천사가 연상되면서, 에로틱 러브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에로스 덕분에 세상이 막히지 않으며, 정신적 사랑으로 가기 위한 필요한 단계라고 한다. 인간관계의 촉매이기에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친구 간의 우정도, 예술을 향한 열정도 에로스적 감정인 줄은 미처 몰랐다.

친구를 향하는 마음이 에로스라면, 사람을 안 만나도 살만했던 지난 이 년 동안, 에로스가 결여된 나의 심장은 천천히 뛰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순환이 어딘가 막혔을 것이고... 그래서 무릎도 어깨도 아픈 것일까? 집에서도 바쁘다고 했던 친구들의 목소리는 왜 시들은 풀빵처럼 들리는지, 그것도 그런 이유일까?



 

시대가 정상으로 돌아가려 하니 이상한 조짐들도 나타났다. 자취를 감췄던 감기 바이러스가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에게 먼저 쳐들어왔다. 독한 감기 같은 크룹(croup)이라는 유행병이 마스크 벗고, 친구와 손잡은 아이들을 휩쓸고 있다.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젊은이들도 시대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친다. 맨해튼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는 난대 없는 복싱 매치가 벌어지고, 한밤중에 댄스파티에, 분수에 들어가 비누 가루를 부어대는 사람에, 동네 주민들은 아수라장이 된 공원을 쳐다보면서 한숨만 쉰다. 이상한 현상들은 여름날의 잡초처럼 하룻밤 자고 나면 쑥쑥 나타난다.

 

이 년 동안 길들여진 관성의 법칙을 깨고 나오려면, 그것도 변화인 모양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어른들이여! 이제 나가도 된다는데, 쉽게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이여! 에로스가 넘치는 젊은이들은 공원에 모여서 술과 가무의 다이오니소스 축제를 벌이는데, 우리도 상대에 대한 꺼져가는 관심을 다시 불러내어 심장이 빨리 뛰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억눌린 감정이 근육과 인대를 더 누르기 전에 나도 뛰어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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